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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Aug 27. 2019

나이 서른, 첫 기숙사

당신의 서른 살, 어디에 계세요?

  나이 서른, 첫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다.


  나는 1990년 생으로 올해 한국나이 30살이다. 더 이상 어리지도 그렇다고 완전한 어른은 아닌 나이 30. 

이 즈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참으로 다양한 삶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적어도 3명의 절친한 친구들이 결혼을 했으며 몇몇은 출산을 하고 초보 엄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사원이던 친구들은 주임이, 대리가 되었고 독립을 하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그 사이에 내게 일어난 변화는 무엇인가?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기숙사에 들어왔다. 나이 30에 첫 기숙사 생활이다. 


큰 길가에 위치한 싱그러운 초록과 따뜻한 노랑이 어우러지는 입구. 나는 처음 도착했을때 이 문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은 각 층마다 있고, 샤워실은 대부분이 남녀 공용이야. 공동 부엌은 1층에 있고 세탁실은 지하 1층에 있어. 근처에 관광지가 많은데 혹시 추천을 원하면 말해줘. 여기 관광지 추천 리스트도 준비 해놓고 있거든. 하우스키핑은 매주 목요일 마다 올거야.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다면 방문앞에 써놓아줘.”


  한 달에 적어도 한화 150만원 가량하는 이 기숙사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찾을 수 있는 곳 중 가장 저렴하고 깨끗한 곳 중에 하나였다. 딱딱한 싱글배드 1개, 작은 책상과 의자 하나, 옷장 하나와 한국에선 찾아보기도 힘들 화질의 벽걸이 TV한 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냉장고 하나. 연고 하나 없는 도시에 내 몸 하나 간신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불평할 순 없다. 이곳은 전세계에서도 집세 비싸기로 소문난 도시가 아닌가. 


  문 닫으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점. 세탁기와 드라이기가 건물 안에 있어 굳이 세탁물과 세제를 바리바리 싸서 세탁방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 아무리 작아도 우유를 보관할 수는 있을 성능의 냉장고가 있어 씨리얼을 먹을 수 있다는 점 등. 적응만 하고 나면 나름 장점이 많은 곳이었다. 


나는 이 기숙사에서 10개월 가량을 지내며 방을 3번 바꾸었다. 


  첫번째 방에는 벙크 배드가 있었다. 1층이 없는 2층 침대 였는데 그 밑에는 작은 책상이 있었고 나는 사다리를 타고 침대로 올라가야했다. 술을 좋아하는 내가 그 침대를 봤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술마시고 너무 취하면 저 침대를 어떻게 올라가야하지?’ 였다. 내 걱정을 들은 친구는 ‘그렇게 취하지 않으면 될일이 아니야?’ 라고 했고 나는 그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방은 나름 아늑했다. 어찌되었건 첫 번째 보금자리라는 생각에 제법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밤에 터졌다. 이 기숙사에는 2개층에 총 90여개의 방이 있는데 각 방이 디자인이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내 옆 방 역시 벙크배드 였던 모양인지 밤만 되면 옆방 세입자의 애정행각으로 벙크배드가 흔들려 내방에 닿아있는 벽에 쿵쿵 부딪혔던 것이다. 그것도 꼭 새벽 2시에! 아 정말 힘든 시기였다.


  다음 방은 정말 더욱 크고 아늑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그 방에서 나오면서 내게 양도를 해준 방이었는데 그 건물에서 가장 좋은 방 중 하나라고 했다. 정말 마음에 꼭 들었는데 런던으로 한달 넘게 다녀와야 해서 눈물을 머금고 기브업하고 말았다.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집 앞의 아이스크림 맛집. 타지 생활 중 우울할 때 들리면 영혼을 위로하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지금 세번째 방으로 들어올 때 건물 매니저는 나를 보고 “이제는 설명도 필요없지? 너 정도면 이 기숙사 베테랑이니까 말이야 하하” 라며 호탕하게 웃고는 키를 건내주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정말 다양한 사람을 지나치며 이곳은 정거장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근처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니거나, 여행을 와서 저렴한 가격에 지내다가고는 했다. 그렇게 스치는 사람들에게서 나와는 다른 인생의 형태를 종종 본다. 취업, 결혼, 육아의 암묵적인 순서를 거부하고 서른 후반에도 학교를 다니며 꿈에 도전하는 사람, 40대에 작은 기숙사에서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 예술학교에 다니면서 매일 방에서 색소폰 연습을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언어도 많이 들었다. 유럽, 중동, 아시아 모든 대륙 사람들이 한명쯤은 거쳐가는 듯 싶었다.


해질녘 방에 붙여둔 엽서. 삐뚤빼뚤한게 이상하게 마음에 위로가 되어서 그대로 두었다.


  특히나 요즘같은 여름의 끝무렵, 다양한 사람들이 짐을 싸서 인생의 다음 챕터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나도 곧 이곳을 떠나야지 하면서도 여기에 머무른지 곧 1년이 다 되어간다. 다음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나는 떠나는 사람들의 뒷 모습을 보면 항상 마음이 조급하다. 하지만 오늘도 내게 힘을 주는 문구를 읊조린다.

 



'If we don't know where life is taking us, we are never lost.'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 당신의 서른 살, 어디에서 보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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