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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마미 Sep 21. 2018

꿈꾸는 엄마의 최고 조력자는?

엄마가 되고 꿈을 꾸기 시작한 여자들의 드림메이트는 자녀다.

  아이들은 한 시간 전에 잠이 들었다. 

지금은 자정을 몇 분 앞둔 시각이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는 왠일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잠들기 전 아이들은 영화를 봤다. 엄마의 태블릿 PC를 가지고 월 9900원을 지불하면 영화시청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통해서 여가시간에 영화를 보곤 한다. 오늘의 영화, 제목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선택이었다.

  영화를 시청하기 몇 시간 전, 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축구교실을 다녀왔고, 샤워를 했고, 저녁밥을 먹은 뒤 '셀프 스터디'라고 명명한 자기만의 공부시간(사실은 시간이 아닌 몇 분)을 가졌다. 학교 숙제가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단 몇 분간 거실 탁자에 앉아서 셀프 스터디를 마친 아들은 그 후, "엄마, 나 영화봐도 되요?"하고 제안을 해왔다.

  딸도 운동을 다녀왔다. 저녁밥을 함께 먹고 샤워를 했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동생과 함께 영화를 시청했다. "엄마, 나는 오늘 셀프스터디까지 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낮에 수학학원에서 너무 힘들었거든. 글고 학교 숙제는 없어요..." 

  학원에서 너무 열심히 굴렸던 머리가 식을 시간이 필요했는지 딸은 축쳐진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셀프스터디 면제를 요청했다. 

"그래, 스스로가 열심히 했다고 인정할 정도라면 쉴 시간이 필요하겠다. 동생과 같이 영화를 보면서 쉬어야겠네."

  그렇게 아이들은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에 영화를 시청하며 잠들기 전까지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목요일.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일이다. 아이들이 운동을 다녀온 날은 저녁밥 먹는 시간이 늦어진다. 오늘도 자연스레 설거지며 주방 뒷정리는 평소보다 늦어졌고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려니 9시를 훌쩍 넘기게 되었다. 

  평소에 분리수거는 남편의 몫이었다. 그러나 몇 주전부터 그는 해외출장중이다. 이번이 네 번째인 그의 출장. 온전히 내 몫이 되어버린 가사와 그 외에 내가 하고 있는 강연 등 외부일정까지 동시에 진행하면서 나는 매순간 도전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자, 분리수거를 내다버리기 전에 영화내용 확인 겸, 곁에 잠깐 앉아있었다. 장르는 나도 좋아하는 히어로 액션. 애들 곁에 앉아서 같이 웃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잠깐 앉아서 히어로들의 애환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누고서는 몇 분 지나지 않아 홀로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원래 영웅들은 혼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들이 많아."

  "보통 사람들은 영웅들의 속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지. 그들의 입장에 되어보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영웅이 되면 외로울거야. 그치?"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말을 되새겼다. 그러고보니, 엄마라는 존재는 영웅과 다름없었다.


  엄마들은 혼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들이 많다. 엄마가 아닌 사람들은 엄마들의 입장이나 속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엄마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으니까. 엄마가 되면 외롭다. 그걸 사실이다.


그렇지만, 위안이 되는 사실도 있다. 엄마의 몸을 빌어서 세상에 태어난 생명들. 그 누구보다 엄마의 마음을 가장 잘 느끼는 사람들은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뭐라구요? 우리 애들이 제 속을 얼마나 박박 긁는줄 아세요?"

  "애들이 뭘 알겠어요. 엄마마음을..."라며 반박할 엄마들이 나올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엄마들조차 알고 있다. 엄마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도보다 아이들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도가 더 깊다는 것을. 엄마가 아이들의 의중을 눈치채는 것보다 아이들이 엄마의 속마음을 알아차리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분리수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영화의 중반부가 지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오우 예!", "우와!", "히히"하면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취임새를 넣으며 거미인간 주인공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재빨리 서재방으로 들어와서 낮에 출력해둔 인쇄물을 제본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동기부여가이자, 시크릿 영화에 출연해서 끌어당김의 법칙의 전파자로 유명한 밥 프록터가 쓴 책을 저장해둔 파일이었다. 

  엄마가 되고 꿈을 찾았고, 하나 둘씩 이루어가면서 가장 절실한 것이 동기부여와 자기확신인데, 이 책이 나에게 뜨거운 응원을 해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기면서 하루라도 빨리 파일형태에서 손에 쥐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200쪽에 달하는 A4용지를 집에 있는 제본기에다 너다섯장씩 넣고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는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제본하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문구를 잠깐 멈춰서 읽다가, 다시 제본기에 넣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보던 영화가 끝이 난 듯한 소리가 건넌방에서 들렸다.

  "누나, 이 부분 진짜 재밌지!"

  "으하하하!"

  영화 말미에 거미인간의 숙모가 재미난 대사를 한 모양이었다. 실은, 재미보다는 자극적인 대사였다. 아이들은 돌려서 그 장면을 세 네번 보는 듯했다. 한 번은 남자주인공의 얼굴표정이 웃기다고 보고, 한 번은 숙모의 대사가 웃기다고 보고, 다른 한 번은 거미인간의 수트가 멋지다고 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재밌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웃음포인트를.

  "엄마, 여기에 마지막 대사가 있는데, 진짜 웃겨. '왓 더 ㅍ'라고 해."

  영어로 된 외국영화를 볼 때마다 아이들의 귀에 남는 영어 속어였다. 몇 일 전에도 외화를 보다가 짚어준 적이 있었다. 그 때 영화는 진지한 내용이어서 '평소에 이런 영어표현을 하면 싸움이 날 수도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랐을 때 감탄사 비슷하게(?) 사용되어서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듯했다. 굳이 나도 영어표현에 대해서 짚어줄 필요는 없을 듯했다.

  기분 좋게 영화가 끝이 났다. 내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은 웃는 얼굴로 잠자리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앱을 종료하기 전에 다음번에 볼 영화를 몇 개 찜해두겠다면서 몇 분간 만지다가 전원을 껐다.

  "잘 자. 울애기들. 많이 사랑해."

  "엄마는 안 자요?"

  "응. 엄마는 책 좀 읽다가 잘 게."

  "네. 아...진짜 재미있었어."

  아이들과 굿나잍 인사를 나누고 제본한 책을 들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이 글을 몇 분째 쓰고 있다.

 

    평소 같으면 뒹굴뒹굴 하다가 잠들 터인데, 오늘은 두 아이 모두 운동을 하고 와서인지 재미난 영화를 보며 엔돌핀을 팍팍 놀린 덕분인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온집안이 고요해졌다.

  '녀석들, 엄마가 글쓰라고, 공부하다가 자라고 도와주는구나.'

  새삼 아이들이 많이 고마웠다.

  남편이 해외출장을 처음으로 떠나던 날, 아이들은 "아빠가 보고싶어"하다가 울컥해서 울기도 하고, 카톡으로 통화를 하겠다며 내 휴대폰 비번을 풀어달라고 졸랐다. 두 번째 출장에도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했다. 그러다가 아예 우리 셋이서 외로움을 달래며 한 방에서 자기로 결정을 한 이후부터는 점점 아빠를 찾는 횟수가 줄어갔다. 자기들 나름대로 살(?) 방도를 찾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빠가 안 계신 동안에 엄마를 어떻게 다루어야할지도 터득한 것 같았다. 큰아이는 어느 날, "엄마, 오늘 저녁 설거지는 내가 할게요."했다. 둘째아이는 "엄마, 우리가 운동 다녀와서 저녁을 늦게 먹게 되는 거에요."라면서 주방에서 늦게까지 퇴근을 못해서 툴툴거리는 나를 달래주었다.

  나는 엄마가 되고 꿈을 꾸기 시작한 여자다.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고 시작한 책읽기가 나를 성장시켰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기확신을 가지고 내 인생을 챙겨주기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하고 이루어가야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르렀다.

  그 중 가장 감사한 것은, 엄마인 내 꿈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아직은 초딩 냄새 폴폴 나는 6학년과 4학년 남매이지만, 가끔 아이들이 나를 배려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엄마, 카페에서 일하다가 오세요." 

  외부에 일정이 있어서 아이들 하교할 시간을 조금 넘길 때 둘째가 이렇게 말해준다.(물론, 집에서 자유시간을 누리고 싶은 녀석의 욕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엄마, 걱정 마세요. 우리 둘이서 간식 잘 챙겨먹고 있을게요."

  큰아이에게 동생을 돌보라는 강요를 하지 않아도 딸은 엄마의 마음을 짐작하고 이렇게 말해주기도 한다.(물론, 동생을 골려먹거나 누나로서의 권력남용을 가끔 한다는 것도 내 모르는 바는 아니다.)

  네 번째 맞는 남편의 해외출장에도, 연이어 이틀동안 지방 강연 일정이 있는 동안에도 나는 마음 한 구석이 든든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 덕분이었다. 엄마 뱃 속에 있다가 태어났다고 해서 엄마가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알수는 없다. 오히려 엄마의 뱃 속에 있다가 나왔기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자신이 스스로를 아는 것보다 엄마를 더 훤히 꿰뚫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엄마여서 참으로 감사하다. 내가 엄마가 되고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아이들에게도 고맙다. 내가 엄마로서 베푸는 사랑보다 아이들이 나보다 더 큰 사랑으로 나를 감싸 안아준다고 생각이 들 때는 이 세상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감사함과 사랑을 느낀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느라 한참 힘든 엄마들은 이런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육아라는 현실을-그것이 독박육아든, 헬육아든 그 무엇이든간에- 나 스스로가 선택한 길임을 인정하고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매순간순간을 진정성있게 살아기로 결심한다면 머지않아 인생에서 가장 든든한 드림메이트를 선물받게 될 것이다. 

  꿈꾸는 엄마의 최대 조력자는 다름 아닌, 그녀의 분신 바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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