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사고 당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광주로 내려갔다. 현지 당원이 나와 진도 팽목항으로 가는 도중에 목포 서해해경청에서 범정부 대책회의를 한다는 연락이 와서 서해해경청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도착할 때, 정홍원 총리도 막 건물로 들어섰다. 해경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총리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난 정부 회의에 들어갈 마음이 내키지 않아 옆 사무실, 해경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곳 한 켠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이야기.
해경 직원1 : 살리는 건 불가능해. 바닷물이 차가워서 익사하기 전에 심장마비로 죽을 거야.
해경 직원2 : 잠수사가 들어갔다가 죽을 뻔 했잖아. 흙탕물이 새까맣게 일어나 앞이 보이지도 않고, 물살이 얼마나 빠른지 그냥 쓸려갔다잖아. 밧줄 없었으면 죽었대. 거기서 무슨 구조활동을 해, 잠수사가 죽을 판인데.
해경 직원3 : 우리만 죽어난 거야. 구조를 하든 못하든 해경은 욕만 먹고, 책임도 뒤집어쓰겠지.
해경 직원4 : 학부모들이 밤에라도 구조 활동을 하라고 하도 성화를 하니까 조명탄 쏘고 조명등 비추고 하는데, 실제 구조활동은 못해.
몇 시간 후 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들은 이야기는 야간구조 활동을 한다는 해경의 공식설명이 있었다고 했으나 처음부터 팽목항은 이렇게 거짓과 은폐로 얼룩졌다. 구조 활동하는 척, 보여주기식 겉치레였고 해경조직 보존을 먼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는 중에 '에어 컴프레셔' 이야기가 나왔다. 전복된 선체 유지를 위해 공기주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날 밤 해경 직원들 사이에서 '에어포켓'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터이니 굳이 에어포켓을 떠올리거나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겠지.
민간인 복장의 어떤 사람이 들어오며 해경 직원들과 인사를 하는데, 해경 누군가가 에어 컴프레셔를 당장 구할 수 없냐고 다그쳤다. 민간인은 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으며 그래도 몇 군데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하는 말,
"아니 우리가 무슨 컴프레셔 공장도 아니고 이 밤중에 당장 어떻게 구해? 그리고 배를 띄울 정도로 큰게 대한민국에 몇 대나 있겠어. 아무튼 이 사람들 뭐 일을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처음 본 해경의 모습은 해상 사고에 대해 준비도 안되어 있고, 의지도 없는 무기력 그 자체였다. 아니 바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려 있었다.
서해해경청에서 범정부 대책회의가 끝나자 총리 일행은 진도 체육관으로 옮긴다고 하여 우리도 같이 나섰다.
체육관은 어수선하면서도 싸한 긴장감이 흘렀다. 중앙정부, 전남도, 진도군 등 각 정부기관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곳곳에 가족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도 나누고, 멍한 표정인 분도 계시고, 술에 취한 분도 보였다.
그런데 정홍원 총리가 들어오자 체육관 분위기는 완전 달라졌다. 우선 수많은 공무원들과 경호원들이 총리를 의전하는데 우리가 봐도 가족들을 자극하는 위험하고 몰지각한 행위였다. 거기다가 가족들 위로한다며 다가가 말을 건네려고 하는데 주변에 카메라 플래시는 터지지,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간벽을 쌓지, 아이들 살려내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피가 마르는 가족들이 그 꼴을 그냥 보겠냐고!
처음엔 외면, 다음엔 분노의 눈길, 다음엔 항의와 고성, 그리고는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던지고 몰려들며 그렇게 박근혜 정권은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는, 스스로 무너져갔다.
결국 대한민국 총리는 봉변을 당하고 쫓겨났다. 무릎꿇고 사죄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의전과 경호를 진하게 하며 난리부르스를 쳤으니, 일선에서 뛰는 해경부터 최고위직 총리까지 사태파악 민심파악 못하고 첫날부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렇게 첫날밤을 보내고 새벽에 팽목항으로 나갔다.
아! 체육관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팽목항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엄마 아빠들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부슬부슬 비는 오고 바닷바람이 겨울처럼 매섭게 살을 파고드는 중에 담요를 두르고, 1회용 비옷을 입기도 하고,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어디든 몰려갔다.
해경 배가 한 척 들어왔는데 아빠들 몇 분이 바로 배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빨리 배를 사고 해역으로 띄우라고 해경에게 외친다. 부두에 있는 다른 엄마 아빠들에게는 모두 뛰어내려 배에 타라 하고, 민간 잠수사들도 같이 가자고 외친다. 아니 그건 울부짖음이었다. 주변에 있던 엄마 아빠들이, 기자들이, 민간 잠수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해경 직원은 감히 제지할 생각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아이들 생각에 애간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엄마 아빠들을 누군들 막을까!
현장에서 해경은 상황을 장악하고 구조활동을 지휘하기는커녕 가족들이 물어보는 정보조차 모르고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게다가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하니 팽목항 곳곳에서 해경을 만나는 족족 참다못한 아빠들은 주먹과 싸대기가 나가고, 엄마들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다가 쓰러지거나 실신을 했다. 아! 1분 1초라도 빨리 구조작업에 투입해달라는 애절함 처절함, 작동하지 않는 재난구조체계를 눈 앞에 보면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절망이 맺히고 맺혀 피울음이 진동했다. 바다도 울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당시 팽목항에는 이용욱 해경 정보수사국장이 나와서 가족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경국장의 답변은 초라하고 궁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구조상황이든 앞으로 계획이든, 뭔가 가족들 궁금함이나 요구사항에 응대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잘 모른다." "청장님에게 보고하겠다." "아직 지침 내려온 게 없다." 알맹이 없는 말을 반복하니 가족들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눈에 보이는 안행부 직원들에게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이 자리에는 최소한 장관이나 차관급 공무원이 나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의 있는 답변도 할 수 있고, 실제 구조상황을 총괄하며 가족들 의견도 반영하고 정부 측 의도도 알려줄 수 있다. 잘못하면 여기서 박근혜 정권 무너진다."
그러나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고, 우리 충고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체육관에서 라면을 쳐드시고,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난 일부 고위 관리들의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능한 데다 국민들 안위에는 관심조차 없는 가진 자들의 뼈 속 진심이 그대로 드러났을 뿐이다.
나중에야 세월호 사고 때 국무회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것도 못하더라, 내가 봐도 한심할 정도였다, 그 많은 장관들이 모여서 어떤 대책도 못 내놨다, 박근혜 정부에서 재난부처는 없었다."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한 게 아니라 그들 모두는 권력에 흠뻑 빠져 그저 즐긴 것이다. 이 통치구조를 떠받치며 서민들의 피고름을 짜내는 놈들의 떵떵거리는 성벽을 허물지 않고 어찌 인간세상을 만들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