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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규 Nov 27. 2020

싸움의 기술 2

2. 반격을 두려워 마라.     


주먹싸움 좀 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싸움에서 제일 중요한게 뭐냐고. 기술이나 속도보다는 힘이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기세'란다.

그렇지 기세, 다른 말로 깡다구, 근성, 투지.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랄까 내 팔다리가 잘려나가면 기어가서라도 한 방을 치겠다는 오기 같은 기질이 있어야 싸움이 된다.     


사법농단 적폐판사들 명단을 정리하고, 취합하다가 문득 전 국민에게 이 자들 면면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한참 홍보실 당직자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 주변 몇 명이 우려를 표명했다.

"명단발표는 신중해야 합니다. 명예훼손 소송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뭐 소송 걸어오면 우리야 좋지! 당 이름도 널리 알리고."

그러자 좀 더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밝힌다.

"소송에서 지면 그 돈은 어떻게 감당합니까? 당에 커다란 부담이 될텐데요."

좀 어이가 없어 쐐기를 박았다.

"벌금 나오면 국민모금 해야지. 싸움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거야. 그게 우리 방식 아니야."

아직까지는 소송을 거는 적폐판사는 없었다. 당시 민중당은 거침없이 사법농단 척결투쟁을 이어갔다.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소문으로 이런 말들이 돌았다.

'적폐판사 전국지도 포스터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은 일반 국민이 아니고 판사들이야. 자기가 그 명단에 올랐는지 다들 궁금해하더라구'

'사법농단 수사하는 검찰들이 민중당 집회에 환호를 보냈다는거야. 수사에 동력이 실렸다고.'

20대부터 데모하면서 맨날 경찰, 검찰에게 쫓겨다니고 얻어터지기는 했어도 잘 했다고 박수받기는 처음이었다.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싸움을 걸 수도 없고, 버틸 수도 없다. 성동격서 같은 작전을 쓴다거나, 여러 가지 투쟁 전술을 짜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우리의 싸움이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닐진대 내가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입거나, 진흙탕이 튀거나 욕을 들어먹어도 상관없다.     


고 노회찬 의원은 삼성과 검찰이라는 한국사회 최강 권력 둘을 한꺼번에 상대해서 싸웠고, 의원직을 빼앗겼다. 그러나 19대 총선에 당선되어 화려하게 재기했다.

모든 야당들이 뒤걸음 칠 때 통합진보당은 박근혜의 심장을 겨누어 싸웠다. 대선에서 이정희 대표는 박정희의 친일경력을 만천하에 밝혔고, 대선 이후에도 정권의 정통성을 날려버릴 국정원 댓글공작, 국정원-군부와 수상한 연계가 있는 세월호 사건 진상파악, 미래창조과학부 김종훈 내정자의 미국 CIA 경력 폭로 등 주요 길목마다 박근혜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박근혜의 반격은 꽤 펀치가 셌다. 제2 야당을 강제해산한다는 발상은 박정희도 못했던 것이니 유신 이래로 쌓이고 쌓여 강력해진 극우진영의 총집결 작전이라 할 만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지시한 내용을 빼곡히 적어놓은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수첩에는 그 작전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김기춘은 통합진보당, 전교조, 민주노총을 압살하라고, 묻어버리라고 임기 내내 강조하고 지시하고 실행결과를 점검했다. 

헌재 판결 이틀 전인 2014년 12일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헌법재판소가 당해산과 비례의원직 상실은 확정했는데 지역구 의원직 상실은 이견이 있어서 오늘 중에 박한철 헌재소장과 의견 조율하고 조율이 끝나면 19일 또는 22일에 선고하겠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판결 하루 전 18일 회의에서는 내일 헌재 선고가 있을 것이라며 헌정사 중요 모멘텸, 초유의 사건, 파란 예상이라고 상황예측을 하고는 1. 경비  2. 관계부처 후속조치를 지시한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독자적 법리판단이 아니라 철저하게 청와대, 법무부, 공안검찰과의 내통 아래 이루어진 조작이었던 셈이다.

사법농단을 겪으며 판사들이 판사로 보이지 않았는데, 당해산을 겪은 후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헌법수호자가 아니라 권력가에겐 한없이 비굴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시정잡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에서 8:1로 당해산이 인용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당해산과 의원직 박탈 결정서를 읽어내리는 헌법재판소장 박한철의 목소리와 재판장 풍경이 지금도 아련한 꿈결처럼 뿌옇다. 부당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분노가 치솟았지만 동시에 다가올 2차 탄압을 대비해야 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통합진보당 직책을 갖고 있던 당간부들은 물론, 평당원들도 모두 구속을 각오했을 정도였으니 당시 분위기는 대학살의 전초전이었다. 


반격이란 이런 것이다. 그냥 두들겨 맞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 각오를 해야 했고 실제 우리는 죽었다. 

삼족을 멸해 씨를 말리는 봉건왕조의 무자비한 폭압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모든 정당들이 찬성당론으로 표결한 이후 대한민국 헌정 운동장은 급격히 기울었다. 




통합진보당 비례경선 사태로 주홍글씨가 들씌워지고, 내란사건 당해산을 거치며 당의 토대가 허물어진 것을 넘어 진보층, 중도층이 모두 위축되어 버렸다.      

사건의 한 가운데서 뭇매를 맞았던 당사자로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살점이 터지고 고통이 쓰라렸지만 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죽을지언정 물러서거나 타협할 수는 없었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었다.

박근혜의 반격에 우리가 크게 한 방 맞았지만 정작 날라간 세력은 기고만장하던 박근혜와 새누리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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