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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규 Dec 08. 2020

싸움의 기술 4

4. 싸움의 진미는 패싸움이다.     


중학교 시절에 고등학교 형들이 툭하면 밴드부, 야간반으로 나뉘어 운동장에서 패싸움을 했다. 그땐 무시무시했다.

80년 민주화의 봄 시절에 집 근처에 고려대가 있어서 매일 데모를 보며 등하교를 하였다. 하루는 고대생들이 정문이 막히자 옆 담을 허물고는 청량리로 나가는데 정말 멋졌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전경들과 진압차량은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고, 이런 기억들이 학익진, 장사진 같은 병법서 도폭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싸움은 역시 패싸움이 최고다.


개인기에 의존하는 일대일 싸움이 아닌 여러 명이 하는 싸움, 그것도 영역별로 역할을 맡아 유기적 연계하에 치고 빠지고, 산전 수전 육전 택전을 배합하여 상대를 몰아붙이는 조직전이야말로 최고봉이 아닐 수 없다.

민중당 시절 조직전을 펼친 주요 현안이 사법적폐 청산투쟁이었다면, 통합진보당 원내활동에서는 국정원 댓글공작의 전모를 파헤치는 활동이었다.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를 무너뜨리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청문위원에는 내가 선정되었지만, 대응은 이상규 의원실이 아닌 전체 의원실을 총괄하는 편재승 원내실장이 맡아서 기획팀을 구성했다.

127시간, 꼬박 6일 분량의 사이버분석실 동영상을 원내 보좌진들과 중앙당 상근자에게 분배하여 단 하루만에 초본 녹취록을 만들어냈다.

국정원 댓글공작을 추적해 온 탐사기자들, 시민단체, 전문가들과의 연계와 협업도 기획팀 지휘로 이루어졌다.

국정원의 게시글과 댓글을 발견하면, 글을 올린 ID와 연계된 다른 ID들을 고구마 줄기 엮듯 끄집어내고 ID 가입자를 알아내는 작업들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체 역량으로 진행했다.



댓글 관련 국회 토론회, 기자회견을 연이어 조직하는 한편 대한문 앞 박근혜 퇴진 촛불에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원내 청문 활동과 원외 촛불집회를 최대로 결합시켰다. 당조직, 원내 역량, 언론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입체전으로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을 종심 깊숙이 압박해 들어갔다.

'지금 댓글이 나오는데 잠이 와요, 잠이!'

이 장면이 그날 9시 뉴스와 다음 날 아침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민주당 홍보물에 우리가 찾아낸 동영상 사진과 함께 '이상규 의원실' 제공 문구가 들어갈 정도였다.     

         


2012년 가을 국정감사, 2013년 초 인사청문회, 여름 국정원 청문회를 거치며 확실해졌다. 민주당 의원들 몇 트럭이 와도 통합진보당 6명 의원에게 쨉이 안된다는 사실이. 

집단의 힘에 의거하고 조직전을 펼치는 진보당과 주로 개인기 또는 사적 인맥에 의존하는 민주당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팀플레이의 경험과 노하우가 몇 달 후 사이버사령부 댓글을 찾아낼 때도 진가를 발휘했다.

우리 방에 달랑 2명의 이름만 제보가 들어왔지만 이틀 만에 이들이 대선 시기 여론공작에 사용한 각종 게시글, 댓글을 찾아냈다. 그리고 2명과 공동작전한 ID, 가입자들을 차례차례 추적해갔다.

처음엔 이들이 제2의 김하영 팀, 국정원 조직인 줄 알았는데 사이버사령부 군무원 특채 합격공고에 이들 이름이 올라와 있는게 아닌가!

국정원만이 아니라 군부대까지 동원해서 대통령 선거를 조작했다는 결정적 단서를 잡아내는 순간이었다.  

 

영화 300, 글래디에이터에도 집단의 힘, 조직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집단의 힘이 하나의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있다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정치영역이든 군사영역이든 가장 강력한 세력은 그렇게 탄생하는 법이다. 우리는 그 방향으로 뚜벅뚜벅 가고 있다. 깨지고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났고 이제 달려나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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