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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Nov 10. 2018

불법의 경계에서, 소리바다

    지금은 거의 고인급이 되어버린 소리바다. 지금이야 멜론, 벅스, 지니의 음원3파전이 대세지만, 15여년 전만해도 유료음원의 개념이 전무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지만, 당시는 음원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거의 쌈싸먹던 시절이라, 음원관계자를 제외하고 '소리바다'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매국노 취급을 받던 때였다.


    소리바다는 2000년경부터 서비스가 시작된 음원 P2P 사이트다. 한국판 '냅스터' 라고 불린 '소리바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무제한 무료 공유' 라는 점이었다. 지금의 토렌토 시스템과 비슷한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음원을 뿌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다운받아, 또 뿌린다.


    소리바다의 흥행은 독일 프라운 호퍼사가 개발한 오디오 코덱 MP3 덕분이었는데, 이는 그야말로 가히 음원계의 '센세이션' 이었다. 4-5Mb 수준의 적은 용량에 비해, 무척이나 깔끔한 음질을 자랑했던 MP3 파일은 소리바다의 흥행뿐만 아니라 MP3 플레이어라는 또다른 문명을 낳는 주인공이기도 했다. 


    소리바다는 검색창에 키워드를 치면 그와 관련된 노래들이 등장한다. 파일명과 함께 음질 카테고리가 따로 있었는데 128Kbps 음원이 가장 기본이었다. 경우에 따라 192Kbps, 320Kbps 까지 음질이 나누어져 있었고, 물론 Kbps가 높을수록 용량은 커졌다. 음질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당연 고음질 음원을 다운받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을 것. 하지만 320Kbpsd의 고음질이라고 하더라도, 10분을 넘기는 Led Zepplin의 "Stairway to heaven" 정도를 제외하곤 10M 안이었으니, 당시 64M 용량의 플레이어에 씨디 두장 분량 정도의 곡들을 넣고 다니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추억돋는 소리바다 화면


    나는 소리바다를 통해 음원들을 신나게 모아댔다. 그 중, X-Japan을 위시한 일본 락밴드들을 음원을 줄기차게 모아댔다. 지금이야 유튜브나 음원사이트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본 락 밴드들의 노래지만, 당시엔 일본문화개방이 된지 얼마되지 않은 탓에 정식발매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다양한 희귀음악들을 마치 우표 모으듯 모아댔다. 그 파일들의 용량만 4기가는 족히 되었다. 


    MP3 파일이 많아질수록, 파일관리에 더 힘써야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파일관리법이 존재했고, 폴더별로 카테고리를 달리했다. 컴퓨터 바탕화면 정리는 개판치면서도, 음원들의 폴더관리와 제목관리는 내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만큼 음악을 통해 세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음악에 가장 영향을 받는 고등학생 시절에서 대학 초기시절까지 내 음악은, 소리바다를 통해 7할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소리바다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내내, 저작권 문제에서만큼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었다. 소리바다에 대한 지적들은 서비스 초기부터 내내 꼬리표처럼 달려 있었다. 오죽했으면 마왕 신해철까지 나서서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대놓고 소리바다를 깠을까. (엄밀히 따지면, 소리바다를 깐게 아니라 MP3 공유방식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것, 그 중 소리바다가 가장 대표적인 플랫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작문시간 수행평가로 자유주제로 논술을 써내는 것이 있었다. 나는 소리바다와 음원저작권 문제를 가지고 논리를 전개했는데, 마왕 신해철이 고스트스테이션에서 했던 논리적 구조와 화법을 거의 다 베껴썼던 기억이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도 나 스스로 참 모순되다 생각했는데, 그 누구보다 소리바다를 가장 잘 애용하고 소리바다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했던 사람 중에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왕의 논리가 워낙 탄탄했고 스스로도 고개를 끄덕였기에 그의 주장을 거의 베끼다시피 했지만, 나는 가장 최하점을 받았다. 표절이 문제가 아니라, '천민자본주의', '거지근성' 등의 꽤나 강도 높은 단어들 때문이었다.


소리바다 자체 플레이어 '파도' 당시엔 파도 외에도 Winamp 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음원사이트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는 음원공유의 불법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으로는 음원사이트를 이용하는 편이, 이제는 훨씬 더 편리하다. 파일관리를 할 필요도 없고, 인기차트가 존재하며, 내게 맞는 음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물론 인기차트 조작, 음원수익분배문제 등의 또다른 문제가 발생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최소한 파일공유문제에 있어서는 숨을 돌릴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된 듯 하다. 소리바다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음악을 무료로 즐겨왔던 나는 다른 문제와는 달리 예전이 그립진 않다. 나도 어느새, 정당하고 정의로운 문화에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제 값주고 듣는 음악이 훨씬 마음이 편해지는 정신적 성숙도 이루었다.


    소리바다는 아직도 서비스를 운영중이다. 이제는 합법이라는 테두리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소리바다는 이제 없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음원공유의 시대, 불법의 경계에서 성장기를 보낸 나, 그때의 소리바다는 잊혀지지만, 그 시절 듣던 음악을 그리워할 수 있게 해준데에 대해 따뜻한 감사의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겐 일탈적인 친구였던 그것, 그것이 아니었다면 내 기억 속에 잠든 음악적 경험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 



당신에게 '소리바다'는 어떤 기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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