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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Nov 30. 2018

고양이는 똥으로 말한다.

집사관찰일기 #1

     

이 글은 일묘칭(一猫稱) 고양이 시점입니다.  



    안녕, 난 보리라고 해. 나는 엄마, 그리고 덜떨어진 집사 한명과 같이 살고 있어. 영화에 나오는 집사들을 보면 다들 한결같이 똑똑하고 깔끔한데,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선지 몰라도 왜 이런 놈을 만났는지. 그 왜 있잖아. 배트맨의 알프레드나 스타크의 쟈비스 같은 뭐 그 정도, 근데 내가 그 정도까지 원하는 것도 아니야. 근데도 우리집 집사새끼는 어딘가 좀 한참 모자란거 같고 드러워 죽겠단 말이지.


    집사놈이 나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는 싱글이었지. 그때만해도 엄마가 멀리 있어서 상태가 지금보다 더 개차반이었어(미안해, 강아지 친구들을 놀리려는 말은 아니야). 어쨌든 어느 정도였는지 아니? 이 새끼가 화장실 치울 줄을 몰라. 난 첨에 이 닝겐놈 코가 없는 줄 알았다니까. 다들 알잖아. 내 똥오줌 냄새가 얼마나 코를 찌르는지. 나도 양심이 있다구. 그래서 매일같이 잘 덮어놓잖아. 그럼 치워야 될 거 아냐. 근데 집사놈은 후각 신경계가 끊어졌는지 뭐 어쨌는지, 한번에 모아서 치우더라고. 미친 놈인 줄 알았어. 하얗고 기품있고, 고풍스러운 내 긴털들을 똥밭에 구르게 하다니 말이야. 


    그래서 내가 한번은 일부러 똥을 밟아봤어. 그리고선 온 동네방네 다 찍고 다녔지. 진짜 '이 색히 한번 ㅈ돼바라' 는 심정으로 책상에도, 침대 커버에도, 방바닥에도, 내 모든 동선에다가 똥발자국을 찍어놨지. 헤헤. 닝겐들이 하는 말 중에 '벽에 다가 똥칠한다' 그러잖아. 그 짓까지도 해볼까 했는데, 앞발을 더럽히긴 싫어 뒷발로만 찍어댔지. 그래도 어쨌든 작전은 성공이었어.


    집사놈이 '돈'이란 걸 벌러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자마 눈이 휘둥그레 지더군. 캬캬. 저녁 늦게 들어왔던 탓에 집에 불이 켜져 있지 않았어. 나는 똥발자국을 요리조리 잘 피해다닐 수 있지만, 미개한 집사놈은 불을 켜러 가기까지 내 똥칠을 다 밟고 가더라고. 온 집안이 내 똥냄새로 가득했지. 집사가 불을 켜고 나를 바라봤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아주 차분하게 타일렀어. 절대 화내지 않았어. 아주 차분하게. 아주 귀엽게. '야옹'


야옹이다, 이 색히야


    집사가 한숨을 쉬더군. 순간 나는 내가 좀 너무했나 싶었어. 그래서 집사의 발가락을 조금 핥아줬지. 근데 이 등신이 내 말귀를 못알아듣는거야. '양말 벗어 이 등신아'. 집사놈은 내가 찍어놓은 똥발자국을 닦아내는 내내 양말을 신고 있더군. '에효, 저 등신.'


    결국 그 날 집사는 지가 찍고 다닌 내 똥발자국 때문에 대청소를 2번이나 했지. 크크. 지금 생각해도 통쾌하네. 근데 청소를 다 마친 후 욕실로 들어간 집사가 그날따라 평소보다 더 오래있었어. 샤워기 소리인지, 우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더군. 아마 조금 울기도 했을까? 현관문을 열때 조금 힘들어 보이긴 했거든. 내가 좀 너무한 것 같아 선물을 줘야겠다 생각했어. 그래서 집사 책상 위에 올라가 집사 노트북 키보드를 두개를 뜯어 땅바닥에 흘려놨지. 히히. 


    집사가 나오자마자 내게 소리르더군. 엄청 감동받았나봐. 에효, 이런 집사라도 내가 끌어안고 살아야지 뭐 어쩌겠어. 


이런 개쉑. 이런 굴욕으로 내게 복수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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