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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Nov 21. 2018

어설픈 집사의 완벽한 사냥놀이

동체시력 최강자의 완벽한 놀이

고양이는 사냥의 귀재다. 조상대부터 원래 그래왔다. 어른 고양이는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지만, 아기 고양이들은 사냥을 하나의 놀이로 여긴다. 하지만 어른 고양이들조차 어린시절 형제들과 치고 박고, 주변 사물들을 이용한 사냥놀이의 훈련 덕분에 진정한 사냥꾼의 위용을 뽐낼 수 있다. 고양이의 사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뛰어난 시력이다. ‘호랑이 같은 눈으로, 소처럼 걸으라’는 말이 있듯이 호랑이를 비롯한 고양잇과 동물들에게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매서운 눈썰미다. 


고양이의 시각은 대뇌 후두엽에 위치한 ‘시각령’ 이라는 곳에서 많은 프로세스를 처리한다. 눈에서 감지된 신호를 받아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정지된 이미지로만 구성된 게 아니라 이미지들 사이사이의 미세한 변화까지 비교하며 입체적으로 잡아낸다. 비디오 카메라 성능과 비교를 하자면, 고양이는 각 이미지간 비교 작업을 1초에 60번이나 할 수 잇다. 즉 60프레임의 비디오로 찍은 각 프레임 하나하나 구체적인 변화를 빠짐없이 모두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선 글에도 잠깐 소개했다시피, 고양이 사냥의 매커니즘은 ‘지구력’ 이 아닌 ‘속도 경쟁력’ 에 있다. 그래서 단 한번의 사냥만으로도 최고의 효율성을 내도록 진화해 온 까닭에 사냥감의 움직임의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끔 되어 온 것이다. 이는 고양이 눈 구조에 몇 가지 영향을 끼쳤다. 이에 고양이 눈은 머리 크기와 비교할 때 매우 크다. 실제로 고양이의 눈은 인간의 눈과 맞먹을 정도인데, 머리 크기는 인간보다 훨씬 적은 걸 감안한다면, 머리 대 안구의 비율이 인간보다 훨씬 높다. 


이러한 큰 눈을 가진 덕에 고양이는 인간을 능가하는 또다른 시각적 기능들을 그들의 눈에 집합시켜 놓았다. 특히 카메라로 치면 인간과 대비해 월등히 높은 ISO를 가지고 있다. 어두운 곳에서도 미세한 빛이나마 잘 잡아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타페텀> 이라는 망막 뒤 반사판 덕분이다. 이 기관을 통해서 눈의 감도를 평소의 40퍼센트까지 증가시킨다. 고양이가 밤의 포식자가 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 눈이 뭐?!


하지만 고양이 눈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다. 많은 기능을 강화시키는 대신, 많은 기능을 포기한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첫번째는 바로 색구분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고양이는 적록색맹이다. 파란색과 노란색, 이 두가지 색깔만 볼 수 있고, 붉은색과 녹색은 회색으로 보인다. 이는 색이 이들이 살아가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심은 색깔이 아니라 오로지 움직임이었을테니 말이다. 


두번째는 포커싱 능력이다. 인간의 눈에는 수정체 모양을 바꿔주는 근육이 있어서 눈의 초점을 맞추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이런 근육이 없는 까닭에 수정체 전체를 앞뒤로 움직여야 초점이 맞추어진다. 기계식 카메라 렌즈의 포커싱과 비슷한 작동방식인데, 이는 사실 엄청나게 성가신 과정이다. 그래서 이들은 눈에 띄는 움직임이 아닌 다음에야 초점을 맞추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가끔 집고양이들은 하루종일 멍하니 가만히 앉아만 있는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이 말을 조금만 바꿔, 엄밀히 따지면 고양이에게 관심사가 딱히 없어서라는 말이다. 고양이는 흥미로운 움직임의 포착이 있어야 호기심이 발동된다. 집고양이들은 가축화의 습성탓에 집사들의 일상적인 움직임과 사물들의 평상시 움직임에 어느 정도 학습을 해 두었다. 새끼고양이때야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에 미친듯이 달려 들었을지언정, 이제 그런 움직임이 익숙한 고양이들에게는 그저 수정체를 조절해야하는 아주 귀찮은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고양이들 또한 잠재된 에너지를 풀어줘야 한다. 문제는 집고양이들은 사냥을 하지 않는데다가 그 타고난 피지컬 덕분에 에너지 발산이 힘들다는 것. 야생의 고양잇과 동물들은 이미 생존사냥을 통해 사냥과 동시에 떡실신을 경험하게 되니 상관없는 일이지만, 집고양이들은 잠재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제한적이다. 그래서 어린시절 형제들과의 몸장난을 통해 학습된 형태의 술래잡기, 사냥놀이 등으로 에너지를 발산해주어 하는데, 이게 말처럼 간단치 않다.


집사라는 인간들이 해주는 놀이라고 해봐야, 오뎅꼬치를 흔들어 상하이 트위스트를 추게 만들거나 이신바예바라도 만들 기세로 낚싯대를 흔들어댄다. 하지만 고양이의 사냥 매커니즘과 앞서 말한 시력의 특징들 때문에, 집냥이들은 끈질긴 호기심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집안의 고양이가 이제는 더 이상 웬만한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어쩌면 머리가 좋다는 의미다. 어느 사물의 움직임에 대한 학습능력이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똑같은 영화를 수백번이고 틀어주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면서도 영화의 다음 대사를 말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심심하다냥, 더 재미있는 장난감을 대령하라, 닝겐.


그래서 고양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움직임> 이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비싼 장남감이 필요가 없다. 많은 집사들이 자신의 고양이를 아끼는 마음에 펫클럽에서 2,500원~3,000원 짜리 고양이 장난감을 고르는 데 여념이 없다. 나도 그랬다. 고양이를 이해하기 전까진. 하지만 금방 그 장난감은 시들해지고 관심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뾰족하거나 삼키기 쉽고, 독성이 없는 집안의 어떤 물건이라도 고양이 장난감이 될 수 있다. 변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일직선이나 포물선으로 날아가는 물건들보다 불규칙 바운스를 만들어 내는 물건들이면 고양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 물건에서 독특한 소리가 난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고양이들은 특히 <스르륵> 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날카롭게 뻗치는 소리보다 <스르륵, 사르륵> 이런식으로 무언가가 마찰되는 소리를 좋아한다. (이런 소리를 한글로 표현할 수 있다니, 세종대왕님은 정말 위대하다) 그래서 고양이들이 미친듯이 비닐에 달려드는 이유도 바로 소리에 있다. 


우리 보리의 경우는 구긴 종이뭉치, 빨대를 엄청 좋아한다. 종이뭉치는 바닥에 튕길때 불규칙 바운스를 만들어내고, 앞발로 툭툭 칠때마다 스르륵 소리가 나며 잘 굴러다닌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거의 ‘메시’급의 발재간을 부리기도 하는데 요즘은 많이 시들해진 상태다. 


빨대는 바닥에 긁어 소리를 낸 다음 던지게 되면 미친듯이 좋아한다. 빨대가 날아갈때는 사람인 우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가는데, 보리에게 그것은 늘 새로운 움직임이다. 그리고 가끔 장난감 숨바꼭질 놀이를 하기도 한다. 고양이들의 항상 장난감이나 사냥감을 구석과 같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 습성이 있는데서 착안한 놀이다. 카페트나 이불 밑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살짝 보이게 숨겨 놓으면 아주 놀라운 포식자의 본능을 발견할 수 있다. 


음원출처 : Dickey F & Friends - Hunting 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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