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려들도록.
철학자
제 눈에 이 책은 철학자를 지켜보던 한 사람이 철학자보다 더한 철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의 기록입니다. 아내는 '철학'이라는 단어에 거부감대신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했습니다. 제가 세상을 향해 "철학이란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에 대한 궁극적인 탐구다."라고 아무리 힘주어 외쳐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자, 아내가 그것을 일상의 언어로 바꾸고 자신의 상황에 접목시켜 철학하는 사람이 무엇인지를 즐거운 방식으로 보여 줬어요. 사람들이 말려들도록.
_책 [행복한 철학자] 인터뷰 중에서
2023년, 우리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로마가족의 유럽살이]라는 제목의 학습만화 시리즈가 출간되었고 유튜브 그 독자는 만 명을 넘었다. 올리브유 사업은 갓 3년 차가 되었고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000명, 브런치 구독자는 1000명을 넘었다. 어떻게 보면 큰, 어떻게 보면 작은 성과의 결괏값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족이라는 선택을 하기엔 애매하여 되려 성장에 더 목마르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욕망의 모습이다.
• 로마가족이 유명해지면 좋겠다. -> 유튜브 구독자가 많아지면 좋겠다. -> 로마가족 만화책이 많이 팔리면 좋겠다. ->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많아지면 좋겠다. -> 올리브유가 많이 팔리면 좋겠다. ->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
욕망에 따라 선택될 수 있는 방법은 이러했다.
• 로마가족이 유명해지면 좋겠다 -> 유명해지기 위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찾아라 -> 이탈리아의 멋진 여행지, 맛집 -> 유튜브에 여행지와 맛집 영상을 올리자 -> 노출이 될만한 자극적이고 궁금증 유발의 섬네일이 중요해
•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어나면 좋겠다. ->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찾아라 -> 해외 살이가 부러워 보이는 사진 영상 -> 인플루언서가 이런 피드를 스토리에 올려주면 더 빠르게 성장하겠지? -> 인플루언서를 어떻게 만나?
• 올리브유가 많이 팔리면 좋겠다. -> 식품을 팔려면 예쁜 사진, 요리하는 릴스 필요하다. -> 예쁘게 세팅해서 찍어보자. -> 인플루언서가 이런 피드를 스토리에 올려주면 더 빠르게 성장하겠지? -> 인플루언서를 어떻게 만나?
누구나가 효과가 있다고 했고 다들 효과를 봤다는 위 방법들은 나에게만 그런가 놀라우리만큼 효과가 없었다. 들인 품과 시간에 비해 성과가 없으니 실망도 컸고 일의 피로감은 높아져만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방법이 남들 다 생각하는 방법이고 누구나 하고 있는 방식이다 보니 여기저기 비슷한 형태의 콘텐츠를 마주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효과가 있어도 그렇게 유입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유입시킨 콘텐츠 분야이니 조금이라도 방향이 달라지면 즉시 이탈되었다. 이는 경쟁과 비교를 부추겼고 누구보다 신속하게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돌아왔다. 매일 무언가 열심히 하고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이미 내가 가능한 속도를 벗어났고 내가 담을 정보의 양을 넘쳤음에도 더 속도를 내고 더 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도대체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한 수순으로 무기력이 왔다. 하지만 그만두면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마저 허물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놓지도 못하는 무한 굴레에서 맴돌고 있었다. 혼자서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이 불가능했기에 사고를 전환시킬 사람들이 있는 환경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것이 앤드엔이라는 커뮤니티였다. 그러나 앤드엔을 처음 시작하고 4개월이 지난 2023년 4월까지도 나의 욕망은 여전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뿐이었고 진짜 속내에는 내가 알지 못한 유명해지고 돈을 버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과 커뮤니티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를 언급하고 우리 만화책과 올리브유를 노출시켜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돌이켜보면 불과 1년 전, 내가 마케팅에서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 딱 인플루언서 노출 정도였던 것이다.
그렇게 매일 2시간의 공부가 쌓이는 동안, 커뮤니티 안에서 나를 드러내고 어떻게든 상품을 언급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비지니스 모델을 공부하던 날이었다. 스스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비지니스 모델을 그려보는 시간이었는데
나의 비지니스 모델을 올리브유를 판매로 그려나가는데 그림이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유튜브, 로마가족 만화책 판매로 그려보았지만 역시 실패였다. 아무리 해도 생각을 확장시켜도 다음 스탭이 보이지 않았다.
유튜브 운영, 올리브유 판매, 만화책 출간 이 모두는 결괏값이지 그렇다면 출발은 무엇에서부터였을까?
모든 것의 시작은 2013년이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다. 육아로 가이드 업의 경력이 단절되고 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고 2017년 브런치를 통해 본격적인 기록을 시작했다. 아들이 말을 시작하고 둘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던 해다.
나는 그 누구보다 성공에 집착한다. 그 누구보다 욕심이 많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 누구보다 불안감이 높고, 돈에 연연하며 조바심과 시기가 많다. 설상가상으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도 높다.
그런 나의 타고난 성향과 성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난 질문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실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나의 성격에 갇혀 상황을 해석할 때 성향이 부정적으로 튀어나와 본질을 흐리게 될 때면 아들에게 질문했다. 아들의 대답은 나 스스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이라서 가능한 대답이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학교를 다니고 이탈리아 사람들 속에서 일상을 채우며 자연스럽게 스며든 이탈리아의 정서에 뿌리가 닿아있었다.
성격과 성향을 고치는 일은 수면에 튀어나온 기둥의 방향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억지로 당기거나 밀다가는 기둥이 부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가짐을 바꾸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땅에 밖인 기둥의 뿌리를 조금만 틀면 되기 때문이다. 기둥뿌리의 방향이 바뀌면 나머지 기둥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기둥뿌리, 즉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_이나모리 가즈오 [ 왜 리더인가]
나는 튀어나온 기둥의 방향을 바꾸려 했다.
애초에 바뀔 수 없는 것은 바꾸려 했으니 도출되는 결과는 지쳐 나가떨어지거나 부러지는 것뿐이었다. 이안의 말이 나의 기둥뿌리의 방향을 바꾸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그런 아이의 말을 만나면 기록했다. 말을 통해 내가 어떻게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타고난 성격으로는 절대 생각해 낼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어떻게 삶의 방향이 바뀌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이의 말속에 나를 바꾼 이탈리아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탈리아를 좋아한다.
나는 이탈리아가 좋아서 사람들도 이탈리아를 좋아하길 바랐다. 그래서 10년이란 시간 동안 이탈리아의 일상을 글로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 바이브가 고스란히 담긴 올리브유를 팔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빠르고 멀리 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나는 거야.
언젠가 남편이 아들에게 해준 말이다. 난 이 문장이 내가 만난 이탈리아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비지니스 모델을 그려보자.
내가 하는 일은 이것이다.
아름답게 날기 위한
생각의 전환을 돕기 위해
이탈리아를 보여주는 일
이탈리아를 통해 삶의 자세가 바뀌었다 -> 나를 변화시킨 이탈리아를 나누고 싶다. -> 나누기 위해선 먼저 사람들이 궁금해야 한다. -> 궁금하려면 자신과 관련이 되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 궁금하면 관심이 생긴다. -> 관심이 생기면 좋아진다. -> 좋아하고 유익한 것은 나누고 싶어 한다. -> 인스타 팔로우/ 유튜브 구독/ 올리브유 판매 / 책 판매 등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괏값
2023년 여름, 나는 나의 업을 이렇게 정리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뉴스래터 주말랭이 대표 엄지님의 연락을 받았다. 2019년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 발행했던 이탈리아의 여름방학 숙제 글을 주말랭이를 통해 소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주말랭이 뉴스레터의 주 구독층은 20대다. 난 두 아이의 엄마이고 나의 팔로워도 대부분 엄마들이었기에 우리의 주 고객층을 엄마들로 국한하고 있었다. 나의 세계만큼이 내 시장이었던 것이다. 주말랭이를 통해 글이 공유되고 2,30대가 나의 글에 공감을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느꼈다.
내가 도출한 비지니스 모델이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구나. 내가 아들의 말을 통해 느낀 위로와 이탈리아를 통해 배운 삶의 방식이 나뿐 아니라 세대를 어우르며 울림을 주겠구나.
이후 주말랭이 황엄지대표와 줌으로 미팅을 한 적이 있다. 사업적인 조언이 필요해 요청한 미팅에서 그녀는 주말랭이라는 무료 뉴스레터에서 경험상점이라는 수익구조로 발전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공유하였다. 수년간 쌓인 뉴스레터의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하고 그에 기반해 기획을 하고 다음으로 나가는 내용은 큰 인사이트였다. 사업의 선을 높인다는 것은 이런 말이었다. 높은 선에서 사업을 하는 선배를 만남으로 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단계 나의 계단을 높이게 된다. 내가 가장 오래 기록했던 것은 브런치를 통한 글과 인스타그램 피드이다. 그동안 브런치의 글과 인스타그램 피드를 데이터화하여 가장 크게 공감을 얻고 공유되었던 내용 찾아보니, 이안의 말이 담긴 콘텐츠라는 결과가 압도적이었다. 이안의 말의 울림은 누구에게나 파장을 만들었다.
세븐일레븐을 인수하며 일본에서 장사의 신으로 불리는 '스즈키 도시요미'
"장사라는 것은 '변화 대응업'이다."
우리는 '장사는 보통 감이나 경험으로 한다.'라고 생각하잖아요? 스즈키 도시요미는 "아니야, 감이나 경험으로 하는 건 옛날 구멍가게지. 현대의 장사는 숫자(데이터)로 하는 거야. 즉, 변화에 잘 대응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이를 숫자와 데이터로 검증하면서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 이게 지금 시대의 장사입니다."
인스타그램@somewon_co
내가 만들고 싶은, 내가 감으로 느끼기에 좋아할 것 같은 콘텐츠가 아니라 데이터가 보여주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을 하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제작하자.
•콘텐츠 규칙
1) 자극적이지 않을 것
2) 평생 프로젝트
3) 아래 질문에 모두 yes라는 답이 나와야 함
•질문
1) 숏폼의 경우 분량은 1분이지만 적어도 10분 이상 생각에 잠기게 할 수 있나?
2) 글과 영상 모두 하루 한 번 이상 다시 떠올릴 수 있나?
3) 내가 애정하는 이에게 나누고 싶을 만큼 울림을 주는가?
4) 이탈리아가 궁금해질 것인가?
5) 상품의 경우 반드시 이탈리아의 정서 ( 느림, 여유, 시간)을 담고 있는가?
6) 글, 영상, 상품 모두 '중요한 것은 아름답게 나는 것'이라는 본질과 이어지는가?
7) 평생 해도 재미있겠는가?
마케팅이 시작을 흔들던 잘풍 노도의 50년을 지나 다시 본질의 시대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제대로 된 본질이 없다면 그 무엇도 도움은 소용이 없게 되어버렸다. 뒤집어 말하면 본질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잘 만들어 가면 별다른 도움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_이근상 [당신의 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닐 수 있다.] 2023, 몽스북
여름이 끝나고 9월이 되었고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그리고 나는 매일 8시 단골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점심 손님을 받는 12시 전까지 앉아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었다. 유튜브 구독자는 만 명이지만 영상을 업로드하면 조회수는 매번 200 뷰를 밑돌았다. 예전 같으면 전전긍긍했겠지만 분명 누군가에겐 닿으리라 믿으며 내가 세운 규칙을 지키며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었다.
올리브유는 더 팔기보다 이미 올리브유를 경험한 고객들에게 집중했다. 이 올리브 농장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올리브가 어떻게 재배되고 어떤 과정을 통해 고객과 만나게 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공유했다. 이 올리브유를 만난 사람들 마음에 아주 작게라도 언젠가 이 올리브를 가꾸는 이탈리아 농장으로 떠나보고 싶다는 소망이 심기길 바랐다.
2024년이 되고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올린 영상하나가 알고리즘의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2 주전 한 영상이 수없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지난 3년간 만 3천 명에서 단 한 번도 변동이 없었던 유튜브 구독자가 만 4천 명이 되었다.
올리브유는 자정에 오픈하고 40분 만에 판매완료 되었다.
인그타그램 팔로워 3000명에서 1000명이 더 늘어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것도 고민고민하고 애쓰고 이것도 저것도 다 시도하고서 얻은 결과였다. 그런데 오늘 2주 만에 팔로워가 만 명이 되었다.
성장이란 매일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년 동안 같은 곳에 머물다 2주 만에 3년 치 성장이 이뤄지는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불과 1년 전이라 너무 들떠서 난리가 났을 것 같은데 이상하리 만큼 잔잔하다. 그저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단골 카페로 향한다. 어제와 같이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크게 실망하지도 크게 흥분하지도 않으며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한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것만큼은 아주 크게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