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는 내력만큼 강해지는 외력이 존재하는 세계
40대가 되어 제대로 수영을 배웠다. 수영장 바닥의 동전을 줍는 일조차 아주 큰 도전으로 느껴지던 내가 반년의 수영 수업 후 어느 여름날 지중해 한가운데 멈춘 배 위에서 바다로 뛰어들면서 깨달았다. 수영을 배우는 일은 더 잘 놀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술과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더 안전하게
더 신나게
더 제대로
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논다는 것 이상의 깊이가 존재한다.
그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기술과 경험에 각오가 더해져야한다.
잠수부를 생각하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작가 이슬아의 아버지 웅이다.
그는 산업 잠수부다.
산업 잠수부는 국가 및 각종 수중 건설업체에 많이 투입되고 부두 및 방파제, 유조선 터미널,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 냉각시설 수중암석 파쇄, 수중 콘크리트 유지보수, 해저 사진촬영 등의 작업을 한다.
이슬아는 그녀의 글에 산업 잠수부는 물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외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잠수부라고 하면 산호초 사이에서 투명한 바닷속 돌고래와 형형 색색의 물고기와 조화를 이루는 낭만의 세계를 떠올렸다. 하지만 산업 잠수부가 이야기하는 바닷속은 탁하고 어둡고 춥다.
그녀의 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슬아가 그녀의 아버지인 웅에게 다시 물 위로 올라갈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 순간이다.
웅이 답한다.
"너무너무 빨리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그렇지만 마음처럼 빨리 올라가면 안 돼.
참으면서 올라가야 해.
압력차 때문이다.
잠수사의 작업이 끝난 후 머물렀던 수심을 확인해 정해진 속도로 올라가야 한다. 어느 수심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에 따라 물속에서 멈춰있어야 하는 시간이 달라진다. 글 속에는 너무너무 빨리 올라가고 싶지만 초당 15cm의 속도로 상승하는 웅이 그려진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삶이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수영장에서 동전을 줍고 바닷속의 전복을 따고,
하지만 더 깊은 바닷속으로 나아가는 일은
압력의 세계로 넘어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채워지는 내력만큼
강해지는 외력이 존재하는 세계다.
바다 아래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숨을 쉬기 위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얕은 수심 아래로 쉽게 내려가는 만큼 빨리 수심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깊은 수심 아래로 어렵게 내려가는 만큼 천천히 수심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마치 업의 궤도를 넓혀나가는 모습 같다.
잠수부를 딥다이브하며 빨리 더 크고 넓게 궤도를 높여나가고 싶다는 조바심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깊이깊이 내려가고 싶지만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압력의 크기를 생각해 본다.
빨리빨리 올라가고 싶지만 지금의 나에게 정해진 속도를 확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