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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Jun 14. 2023

불행한 열심 vs 고요한 열심

: 고통을 동반한 성장 vs 매일을 동반한 성장

5개월 동안 매주 2번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을 시작했던 이유는 불안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이유 없는 불안. 막연한 불안은 자꾸만 누군가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성장하려면 나보다 먼저 더 크게 성장한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무수한 자기 계발서에 발맞추어 팔로우를 하고 그들의 업적(?)을 스크롤한다. 비교가 시작되고 불안은 우울이 된다. 내가 했던 일과 하는 일과 하려던 일이 어쩐지 초라하게 느껴진다. 불안과 우울을 동반한 무기력이 찾아왔다. 결국 어떤 것도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니다. 한 가지 행동은 꾸준하게 했다. 누군가를 들여다 보기는 멈추지 않았다. 단, 5분이라도 강제적으로 접속을 차단할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다.

_#로마수영일지_1화.휴대폰 중독 재활 중에서


나라는 사람이 불안을 멈추어야 한다고 인지를 했다는 것은 돌이켜보면 아주 의아한 일이다. 나는 걱정거리가 생기면 끌어안고 사라질 때까지 품었다. 걱정이 사라지면 다음 걱정을 품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할 때까지 되뇌었다.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 걱정을 되뇌었다. 걱정도 문제도 언제나 나와 하나였다. 걱정을 풀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기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나갔다. 더 큰 성취를 위해서 나를 둘러싼 많은 문제 중에 가장 힘든 문제를 선택했고 해야 할 걱정 중에 가장 큰 문제를 선택했다. 그래야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정말 그렇게 성장했다.


그래서 나의 열심은 늘 극단적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의 기준에선 열심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 곁의 사람들에게 열심을 강요했다. 그들의 열심이 내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열심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열심을 강요한 근간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한 서러움과 나만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다는 억울함이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열심은 동기부여가 아닌 불편이 되어 주변을 찔러댔다.


불안을 원동력으로 한 열심은 건강하지 않았다. 끌어당김의 기적은 불안에도 어김없이 작용했다. 불안은 불안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나에게 쌓인 불안의 덩어리가 감당이 안 될 수준이 되었을 땐, 열심도 절정에 달했다. 불안을 해소하려 열심의 강도를 더할수록 아이러니하게 불안을 더욱 커져갔고 내 열심에 내가 치여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열심을 그만두어야 불안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수영을 시작하고 첫 달은 물을 먹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두 달째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나보다 더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세 달째에는 수영이 꽤 익숙해졌는데 처음의 간절함이 사라져서인지 자꾸만 수영을 빠질 핑계를 만들고 싶다는 유혹에 빠졌다. 네 번째 달이 되었을 땐 나와 엄청난 기량 차이를 가진 듯 보이는 이들이 나와 겨우 두세 달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참으로 신기한 앎이었다. 이렇게 꾸준히 해 나간다면 몇 달 뒤면 나도 그들의 수준에 닿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세계를 밖에서 바라볼 땐 모두 대단해 보이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 차이가 달리 보이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섯 달이 되었을 땐 수영을 가기 귀찮다는 생각도 다른 수강생과의 비교도 사라졌다. 수영은 습관이 되었고 수영을 하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 행복했다.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땐, 아무 생각 없이 수영만 했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내가 수영을 통해 얻은 참된 값어치였다.


무엇보다 마음이 건강해졌음을 느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꼈다. 수영의 이유가 더 이상 불안이 아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음이 고요해지자 오히려 발버둥 치던 때보다 훌쩍 수영 실력이 성장한 나를 발견했다. 야릇했다. 지금까지 괴롭지 않으면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괴롭지 않았던 순간의 노력 또한 최선이었고 괴로운 최선보다 부족함이 없었다.


그림 instagram @post_it_diary_


수영을 시작하면서 함께 시작한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앤드엔이라는 커뮤니티에서 함께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앤드엔 클럽은 자신의 일을 1.0에서 2.0으로 성장시키고 빠른 성장이 아닌 지속되는 성장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였다. 매주 두 시간 함께 비즈니스에 관한 공부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영을 배우기 전, 나는 물에 뜰 줄은 알았지만 나아가는 법을 몰랐다. 나아가기 위해선 방법을 아는 사람을 찾아가야 했다. 돌이켜 보면 대학교 졸업 후 (이탈리아에서 살기 위해 언어 수업을 들은 것을 제외하고) 나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수업을 찾고 배움을 꾸준하게 이어나간 것이 처음이었다. 수영 선생님은 자유형, 평영, 배영 등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어떤 방법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맞는 영법은 분명히 존재했다.


앤드엔 클럽에 문을 두드린 것도 같은 이유였다.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지만 거기까지였다. 몰라서 무엇이든 시도했고 감사하게도 성장도 따라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무엇이든 했던 지난 3년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초심자의 행운으로 안을 수 있는 성장에 한계가 왔음을 느꼈다. 


반드시 더 성장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나아가고 싶다고 마음이 움직였던 이유는 사업이라는 것을 해 나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즐거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불같은 나의 열심에 매력을 느껴 다가오던 사람들은 가까워질수록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런데 나와 닮은 열심의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세계 속에 있었다. 나는 어쩐지 나 혼자만 유난하고 유별난 것 같아 외로웠다.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모르던 세상에 발을 내딛고 알았다. 나 같은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런 세상을, 그런 사람들을. 그것이 내가 더 성장하고 싶은 이유였다.


다음으로 가기 위해선 다음으로 가본 사람들 다음으로 가는 법을 알려줄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난 지금 머물고 있는 바운더리 밖으로 향해있는 문을 열고 나갔다. 내가 사는 일상 속에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선 일상의 균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영은 그 마음 가짐을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앤드엔 클럽을 처음시작한 첫 달은 의기양양했다. 내가 지난 시간 이루었던 일들이 꽤나 대단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름 팬데믹의 시류를 탔고 꽤나 시장을 보는 눈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가 두 달째가 되니 압도되었다. 나의 성과는 나름 높은 성취였지만 객관적인 지표로 보니 사업의 세계에선 아주 낮은 수치였다. 다른 사람들의 프로젝트 규모부터 완성도까지 입이 떡 벌어졌다. 나 혼자서 해 나가는 일들은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공부한 지 세 달째가 되었고 나의 삶을 시간열로 정리 정돈하는 시간이 있었다.


시간열로 길게 정리한 글을 정돈하고,

정돈한 글을 인덱스를 붙여 다시 정리하고,

그 글을 다시 정돈하고,

이 과정을 반복을 해 나가면 나의 시간열을 완성해 나갔다.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매번 3년 차에 마음의 파도가 휘몰아쳤고
7년 차에 성장을 했다.

모든 시작엔 불안이 있었고
성과에 닿은 것은 항복을 하던 순간이었다.

포기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에도 열심은 지속했기 때문이다.

항복.

그래 항복이 맞다.


어떠한 결과를 바라는 마음을 놓아버렸던 순간, 나는 즐겼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간절히 바라던 순간에는 닿지 않더니 그 마음을 놓자 어이없이 예상 못한 성과가 나에게 다가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렇게 된다고?

이게 된다고?


가이드를 하던 마지막 해에 남편과  위기를 겪으며 서로를 놓기 직전, 이탈리아를 떠날 각오를 하고 잠시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났다. 그와 인연이 끊어져도  이탈리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로마로 돌아왔다. 다시 투어에 복귀한  동료 가이드가 노래를 하나 들려주었다.


김도향의 시간이었다.


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난 어디로 돌아갈까
그대를 처음 만난 날
아님 모두 나를
축하하던 날
꿈의 시작은
너무나도 멋졌어
그 모든 걸 이뤘다면
난 정말 행복했을까
아님 또 다른 고민에
밤을 지샐까
모두 내겐
소중했던 시절들
단 한순간을 택하기엔
추억이 많아
가슴 한켠
숨어있는 후회도
내가 흘러갈 세월이
가려 주겠지
김도향 _ 시간


그날 이루 매일 남편과 위기를 겪기 전으로 돌려달라고 하던 기도가 달라졌다. 돌아가지 않겠다. 받아들이겠다. 그 이후 다시 바라본 가이드업은 감사했다. 무너질 것 같던 순간마다 여행의 설렘으로 빛나는 사람들 앞에서 마음을 다 잡았다. 일이 귀중해졌다. 다른 가이드와 경쟁해서 더 많은 후기와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내 일이 귀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 해 난 가장 많은 후기를 받았고 그때의 나는 빛났다. 나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남편을 다시 돌아볼 생각의 그릇이 넓혀졌고 우린 많은 길을 돌아 다시 함께라는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우리는 부부에서 가족이 되었다.

2023년 올해가 가이드 업을 그만 둔지 딱 10년이 되는 해이다. 신기하게도 올해만 몇 번이나 예전 투어를 했던 손님들을 만났다. 로마를 방문해 여행 중 귀한 일정에 나와의 만남을 넣어주셨다. 10년이 지났으니 모두 이안도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이 되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내가 일을 가장 귀하게 여기던 그 해에 만났던 이들이었다.


2010년의 손님을 가족으로 다시 만났다.


일의 즐거움이 절정이던 때 임신과 함께 가이드를 그만두었다. 비록 경력은 단절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쓰임이 있다고 처음 하는 해외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나를 좀 봐 달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다. 글을 쓰다 보니 욕심이 생겨났고 책 출간도 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매주 글을 썼다. 그렇게 매주 글을 쓴 지 7년이 되던 해에 출간 제의가 왔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출간에 대한 욕심보다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만난 인연들과 응원으로 이미 어떤 결과물이 없어도 기록을 지속하는 의미를 찾은 때였다.


그리고 펜데믹, 유튜브, 사업 새로운 일이 시작되었다.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시작해 적은 수입이라도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같은 시기 유튜브를 시작해 앞서 나가는 이들을 시기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애끊는 시간이 어김없이 반복됐다. 뭔가 더 해야 해. 나아가기 위해선 불안이 필요해. 시간열을 정리하다 보니 지금이 유튜브와 사업을 시작한 지 딱 3년 차다.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또 이렇게 같은 성장의 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선택을 했다. 불안을 끌어당기는 대신, 배움을 찾아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앤드엔 클럽까지 왔고 어느덧 함께 공부한 지 4개월이 되었다. 다른 이의 성취에 압도되던 파도가 잦아들고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속도가 점점 명확해졌다.


사업을 성장시키는 법을 배우고 싶어 매일의 두 시간 공부를 시작했는데, 내가 지난 4개월 동안 배운 것은 내 일을 지속하는 법이었다. 빨리 멀리가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성장하는 법에 대해 우린 고민하고 공유하고 서로에게 배워나갔다.


앤드엔 클럽의 소정님


그들은 성장을 사랑이라고 읽고 성장의 조건을 명랑과 밝음이라고 썼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선 분명히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새로운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두 시간을 공부하며 지난 시간을 다시 밟아보며 알았다.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열심이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_마태 9, 16-17


나는 여전히 열심이다.

난 그냥 그런 사람이다.

열심을 멈출 줄 모르는 사람이다.

다만, 이제는 열심에 임하는 마음이 몰아치지 않는다.


2023년 6월의 열심은 고요하다.



하지만 시간은 단 한 가지를 위해 필요하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을 때 그걸 깨닫는 데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이제 수영이라면 자신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다. 책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다. 어느 날 오후, 아빠가 깊은 바다 한가운데로 나를 데리고 가서 끝이 안 보이는 파란 물 속으로 나를 던졌고 혼자서 허우적대다가 수면 위로 떠올라 살아남았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최근 몇 달간 내가 배운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결국은 이런식으로 마구잡이로 뛰어들어서 혼자 그리고 아빠를 위해 배운 것이었다. 이상한 건, 내가 뭔가를 배우려 할 때 꼭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기대하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할 때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늘 아빠가 하시던 얘기다.

"네 물고기는 말이야, 파비오, 아무도 잡아가지 않아."

_파비오 제노베시 [물이 깊은 바다] 현대문학, 2020


난 이제 나 스스로에게 상을 선물한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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