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Feb 16. 2024

압력의 세계

채워지는 내력만큼 강해지는 외력이 존재하는 세계

40대가 되어 제대로 수영을 배웠다. 수영장 바닥의 동전을 줍는 조차 아주  도전으로 느껴지던 내가 반년의 수영 수업  어느 여름날 지중해 한가운데 멈춘  위에서 바다로 뛰어들면서 깨달았다. 수영을 배우는 일은   놀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술과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더 안전하게
 더 신나게
더 제대로
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논다는 것 이상의 깊이가 존재한다.

그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기술과 경험에 각오가 더해져야한다.


잠수부를 생각하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작가 이슬아의 아버지 웅이다.

그는 산업 잠수부다.

산업 잠수부는 국가 및 각종 수중 건설업체에 많이 투입되고 부두 및 방파제, 유조선 터미널,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 냉각시설 수중암석 파쇄, 수중 콘크리트 유지보수, 해저 사진촬영 등의 작업을 한다.


이슬아는 그녀의 글에 산업 잠수부는 물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외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잠수부라고 하면 산호초 사이에서 투명한 바닷속 돌고래와 형형 색색의 물고기와 조화를 이루는 낭만의 세계를 떠올렸다. 하지만 산업 잠수부가 이야기하는 바닷속은 탁하고 어둡고 춥다.

[일간 이슬아] 중에서

그녀의 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슬아가 그녀의 아버지인 웅에게 다시 물 위로 올라갈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 순간이다.


웅이 답한다.


"너무너무 빨리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그렇지만 마음처럼 빨리 올라가면 안 돼.
참으면서 올라가야 해.


압력차 때문이다.

잠수사의 작업이 끝난 후 머물렀던 수심을 확인해 정해진 속도로 올라가야 한다. 어느 수심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에 따라 물속에서 멈춰있어야 하는 시간이 달라진다. 글 속에는 너무너무 빨리 올라가고 싶지만 초당 15cm의 속도로 상승하는 웅이 그려진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삶이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수영장에서 동전을 줍고 바닷속의 전복을 따고,


하지만 더 깊은 바닷속으로 나아가는 일은
압력의 세계로 넘어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채워지는 내력만큼
강해지는 외력이 존재하는 세계다.


바다 아래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숨을 쉬기 위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얕은 수심 아래로 쉽게 내려가는 만큼 빨리 수심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깊은 수심 아래로 어렵게 내려가는 만큼 천천히 수심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림 출처 : @hong_0gram


마치 업의 궤도를 넓혀나가는 모습 같다.

잠수부를 딥다이브하며 빨리 더 크고 넓게 궤도를 높여나가고 싶다는 조바심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깊이깊이 내려가고 싶지만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압력의 크기를 생각해 본다.

빨리빨리 올라가고 싶지만 지금의 나에게 정해진 속도를 확인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행한 열심 vs 고요한 열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