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 김작가 Mar 11. 2024

로마 김대표 뉴욕 10일 살기

압도의 숲

로마김대표 뉴욕 10일 살기
[압도의 세계]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작디작은 무대다. 고작  먼지만  창백한 푸른  위에 존재한다.

 _  세이건 

뉴욕에서 10일을 머무는 매 순간 민주가 느낀 감정은 딱 두 글자였다.


압도


자본, 탁월, 거대..  단어들을 향해 민주가 정의했던 모습 자본력, 탁월함, 거대함을 향해 민주가 그릴  있는 상상의 한계를 느꼈다. 고각 3차선 도로의 간격을 두고 양측으로 90층에 육박하는 빌딩들이 빈틈없이  있었다. 스트리트와 애비뉴가 완벽한 직각으로 교차하는 일직선의  위에  있으니 질서와 계획 위에 세워진 도시가 주는 묘한 쾌감과   없는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속의 활자로만 접했던 '빌딩숲' 속에서 기가 막힌 헛웃음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민주가 올리브유를 셀 수 없이 팔아도 여기 빌딩의 벽돌하나 올릴 수 있을까?

민주의 생을 그야말로 불태운다 해도 브로드웨이의 배우가 보여주는 경지의 탁월함에 이를 수 있을까?

빌딩숲 앞에서 자신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다.


민주가   있는 세계 안에서의 질투와 경쟁과 비교가 허탈했다. 민주의 눈높이에선  없이 높아 보이던 것들이  도시에 서니 하등 차이가 없었다. 민주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라고 소리치던 것이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달라고 외치던 열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하게 느껴졌다.


눈을 치켜뜨는 것으로도 부족해 목을 꺾어 허리를 크게 휘어야지만 겨우 끝에 시선이 닿을  있는 빌딩 꼭대기에 오른 날이 있었다. 압도적이던 빌딩들이 발아래 펼쳐졌다. 빌딩 사이로 희고  공간이 보였다. 휴대폰으로 확대하자   안에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원을 그리는 까만 점들이 보였다. 아이스링크  속의 사람들이었다.

마치 우주 한가운데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는 은하계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민주가 이토록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마주하는 순간, 놀랍게도 홀가분했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자유로웠다.


내가 너무나 대단하게 바라보던 것들이 그만큼이 아니었고

내가 가지고 싶어 안달했던 것들이 그만큼의 가치가 아니었다.

유난스럽다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릴 필요도 없었다.

내 유난은 유난도 아니었다.

돈을 밝힌다는 말에 상처받을 이유도 없었다.

돈을 밝혀 본 적도 없는 수준이었다.

열심히 산다고 자부할 필요도 없었다.

내 최대치의 열심을 불태워도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 있다.

멋대로 상상하고 허구맹랑한 꿈을 꾸어도 괜찮다.

내 상상의 세계가 아무리 거대해도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세상이 현실에 존재한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민주의 마음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토록 보잘것없는 나이니
그냥 내가 뜻하는 바대로 살자.


이렇게 보잘것없는 내가 이런 엄청난 세상 속에서 성취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대견하고

이렇게 보잘것없는 내가 이런 거대한 세상 속에서 누리는 것들이 너무 소중해졌다.


민주는 뉴욕 도서관에서 작은 파우치를 샀다.

파우치에는 기원전, 로마의 정치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이 새겨져 있었다.

Se hai un giardino e una biblioteca hai tutto ciò di cui hai bisogno.
If you have a garden and a library, you have everything you need.
정원과 도서관이 있다면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것이다.

_키케로
뉴욕 도서관에서

민주는 이미 자신 안에 정원과 도서관을 가지고 있으니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정원과 도서관을 갖고 있다.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씨앗들이 뿌려지고 죽고 살아날 것이다.

도서관의 시즌마다 추천도서가 변하고 어떤 책은 잃어버리고 어떤 책은 새로 꽂힐 것이다.

10일 동안 머문 뉴욕에서 민주가 가져온 것은 자유로움과 질문이다.


나의 정원과 나의 도서관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우리는 즐겁게 올바로 나아가자꾸나.
고통을 즐길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시인이란다.
바람과 빛 속에서 나를 잊고
세상이 나의 정원이 되어
은하계 전체가 한 사람의 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즐겁지 않겠니?
두려워 마라.
너희는 이 세계를 뒤덮는 크나큰 덕성에 비하면
태양빛 아래 엉겅퀴 가시 끝에 달린 작은 물방울에 불과하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_미야자와 겐지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 열흘살이를 앞두고 묻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