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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y 31. 2019

 길에서 두 아이와 울고 싶던 날의 위로

주저앉던 마음이 자세를 다잡는다

아이는 주저앉았다. 막무가내였다. 비는 더욱 거세졌다. 젠장, 5월인데!! 길에 서있기만 해도 행복해진다는 로마의 5월에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온다. 

비키니 언니가 생각하여도 날씨가 너무 했죠?

혼자서 두 아이를 빗속에서 등하교를 시키기 위에선 단단한 마음가짐을 요한다. 다짐을 보여주는 심정으로 장화 비옷 그리고 우산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달랐다. 아인 비옷도 우산도 겉옷도 던져버리고 장화를 신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까짓 거 한번 뛰어봐라 할 수 있다.


비록 비 한 방울만 맞아도 큰일 나는 줄 아는 이탈리아에서 이들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본다 한들 저 들 나라에선 그런가 보다 하겠지. 그러나 그날은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러기엔 추웠다.


면티 한 장만 걸치고 아이가 이 빗속에서 즐기다간 사달이 날 거다. 아이에게 억지로 겉옷을 입혔다. 아이는 주저앉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냐는 듯 마치 내가 큰 잘못이라고 한 듯 분에 차 울부짖었다.


그럴 거면 계속 비 맞아!!! 소리 질렀다. 아이의 눈물이 뚝 그쳤다. 눈이 반짝였다. 정말? 그게 내가 원하는 거잖아!! 원하는 대로 해도 돼? 아이의 눈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아이는 뭐든 스스로 해나가려 한다.

오히려 나의 눈이 당혹감에 흔들렸다. 첫째는 그렇게 소리치면 미안해하며 안겼다. 둘째는 모든 것에서 나의 예상을 비켜갔다.


첫째의 픽업에는 진작에 늦었다. 귀신 들린 듯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는 아이에게 억지로 옷을 입히고 아이를 둘러업고 비를 해치며 겨우 유치원에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해. 이도가 울어서..... 큰 아이는 날 보자마자 가방을 던졌다. 왜 늦은 거야!!!! 왜!! 두 아이가 날 둘러싸고 운다.


하나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하나는 날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는 학부모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난 별일 아니에요 눈으로 답했다.


아니, 별일 아닌 게 아니었다. 울고 싶었다. 남편에게 전화해 너무 힘들어. 애들이 우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울부짖고 싶었다. 생중계를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날 좀 보라고!! 너무 힘에 부친다고!!


그러나 할 수 없었다. 5월의 봄날을 기대하고 여행을 떠나온 이들에게 춥고 비 오는 이탈리아의 남부를 보여줘야만 하는 그도 나처럼 울고 싶을 테니....

동생이 우는 것은 보이지 않는지 아이는 왜 늦었냐 다그쳤다.


_안토니오가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단 말이야!! 

_너네 둘이 이야기한 거잖아. 안토니오 엄마는 아무 말 없었어. 그리고 이렇게 비가 오는데 놀러 오라고 해도 엄마가 못가. 비가 오는데 거기까지 갔다가 어떻게 집에 돌아가. 어짜피 못가. 늦은 건 미안해. 이도가 길에서 너무 울어서.... 이안, 이안? 이안!!! 보라고!!! 이도가 울잖아!!! 엄마가 어떡하라고?! 보라고! 엄마를 보라고! 다 젖었어!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떡해?! 엄마 혼자서 어쩌라는 거야? 

순간 아이를 때리고 말았다.
아이가 놀라서 쳐다봤다.
둘째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아이는 조용히 비옷을 입었다.
빗길에 아이 둘과 엄마 하나가 초라하게 걸었다.


4시에 집을 나서 왕복 10분도 걸리지 않는 유치원을 다녀오니 6시가 넘었다. 침묵 속에 저녁을 준비했다. 밥이 되는 동안 아이에게 다가갔다.


_미안해. 두 번 다시 때리지 않을게. 엄마가 너무 잘못했어.
-벌주면 나도 벌준다. 엄마가 때리면 나도 때릴 거야.
_미안해. 
-응, 나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아이가 먼저 사랑을 말하고 내가 따라 했다.

둘째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눈을 하고 손가락으로 입속을 가리키며 밥! 했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둘이 힘든 게 아니다.


둘째가 힘든 거다. 첫째도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호소하면 공감했고 윽박지르면 두려워해 줬다. 그게 꼭 아이의 마음이 동해서가 아니라 날 생각해줘서 그렇게 따라와 준거다. 감성적인 아이다. 감정적으로 나에게 공감해주었다.


이탈리아에서 아이와 모든 처음을 함께했다. 어쩌면 남편보다도 더 많은 부분을 같이 헤쳐나간 존재이다. 우린 모자동지간이다.


둘째는 상대적으로 둘만의 시간이 적어서 일까? 아니, 그보다 이 아이는 본능적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본능이 우선이다. 마음이 움직여야지만 행동이 따라온다. 호소해도 듣지 않고 윽박질러도 미동이 없다.


하루는 남편 말은 잘 듣기에 남편만큼 나도 강하다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강도를 높여 윽박질렀다. 먹히는 듯했지만 후회했다.


바로 다음 날, 첫째가 똑같이 둘째에게 소릴 지르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날엔 내가 둘째에게 소리를 지르려하자 첫째가 나의 손목을 굳게 꽉 잡고 말했다.


엄마 하지 마.


갈피를 못 잡고 휘청대는 시간이 이어졌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이 아이에게 맞는 훈육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겁이 없고 스스로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가짐일지도.


그 마음은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두 살인데 아이는 내리막길을 킥보드를 타고 질주한다. 도움은 거부한다. 위험을 막아서는 것을 포기하고 같이 뛰기 시작했다.


하루는 답답한 마음에 첫째에게 답을 구한다.

-이안, 이도는 왜 엄마 말을 안 들을까?
_그건 엄마가 잘 안 해줘서 그렇지.
_이안이도 엄마가 잘해주는 거 같지는 않은데 왜 엄마 말 듣는 거야?
_난 혼날까 봐 그렇지.
_이도도 엄마가 혼내는데?
_아~ 그냥 해달라는 거 다 해줘. 그럼 돼.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운 거 알아? 그리고 정말 그러면 되는 거 확실해?




여전히 아이 둘을 데리러 가는 오후에는 불안함이 엄습한다. 또 아이가 길에서 주저앉고 떼를 쓰면 어떡하지? 비 오는 날을 절정으로 하굣길의 신경전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니라 다를까 둘째와 실랑이를 하다 첫째의 픽업이 어김없이 늦어졌다. 조급한 마음으로 발버둥 치는 아이를 들고 모퉁이를 도는데 안토니오의 아빠, 마씨모가 보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_오늘 이안이를 우리 집에 데려가도 될까? 우리 아이가 그렇지 않으면 나와 말을 안 하겠다는데? 내가 다 놀면 집에 데려다줄게.

이안이에게 소식을 알리자 세상을 다 얻은 표정으로 계단을 한걸음에 뛰어내려 안토니오와 얼싸안았다. 친구와 손을 잡고 사라지는 아이를 보는데 어느새 동동거리던 마음이 잔잔해져 있었다. 둘째와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해가 지고 집에 돌아왔다. 안토니오의 엄마에게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며 사실, 이번 주는 좀 힘들었어.라고 덧붙였다. 그녀가 답했다. <<어제 이안이를 초대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행히 오늘은 좋아졌어. 고맙긴, 이안이는 안토니오의 형제나 다름없는걸. >>그녀의 위로에 목이매였다.


매일 하굣길에 함께하는 안토니오의 가족은 두 아이에 버거워하는 일상의 산증인이다. 안토니오는 세 남매 중 막내다. 그리고 그의 아빠는 암 투병 중이다. 난 그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는 거다. 

마씨모와 이도

이도가 안아달라고 조르던 날, 내가 이도를 안고 이안이가 자기와 동생의 킥보드 두 개를 끌며 집으로 돌아가던 날. 마씨모는 목발을 내려놓고 마스크를 내리고 이안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이안, 넌 정말 대단해.
멋져.
이렇게 엄마를 도와주다니,
넌 이미 아주 큰 사람이야.


그는 뒤돌아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다시 목발을 집고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언제 또 아이의 울음에 갈피를 못 잡고, 어느날 또 하굣길이 버거워 길에서 울고 싶은 심정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 날의 위로를 생각하면 주저앉던 마음이 자세를 다잡는다.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주 1회 원고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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