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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20. 2019

내가 국적을 받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거예요.

우리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 말 덕분이었다

매주 2번 집 근처의 이민자 센터에서 이탈리아 언어 수업을 받는다. 우연히 길을 걷다 발견한 이 곳을 통해 로마에는 무료로 언어 수업을 해주는 기관이 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들은 이 기관을 거의 알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러시아 남미 인도 등 각지에서 온 이들에겐 정보가 공유되어 있는지 참 다양하고 많은 이들이 수업을 받는다. 아침 수업에도 말도 안 되는 외곽에 거주하면서도 매일 찾아온다. 그 열기는 대단하다. 언어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생존의 에너지다. 

이탈리아는 2010년부터 이민법이 바뀌어 carta di soggiorno (일명 만료기간이 없는 장기 비자, 영구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A2레벨의 언어 능력 / cittadinanza (국적)을 받기 위해서는 B1레벨 레벨 이상의 언어능력을 증명할 문서를 요구한다.


자신의 언어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곳에서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수조건으로 언어 증명이 필요하다.


이민자 센터에서 만난 이들 모두 말을 아주 잘한다. 삶의 현장에서 배운 이 들이다. 대부분 하루도 쉬지 않고 하나 이상의 일을 한다. 일을 하며 로마 외곽에서 거주를 하며 이른 아침 이민자 센터로 언어를 배우기 위해 온다.


하루는 가정법을 배우는 시간에 쿠바에서 온 호세 아저씨가 문장을 만들었다.


내가 국적을 받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거예요.


이 짧은 문장에 입술을 깨물었다.


호세 아저씨의 목소리는 아주 경쾌했고 모두가 즐거운 순간이었다. 내가 눈시울을 붉히면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순간, 내가 보였다.
처음 이 곳에 들어선 이유는 언어능력을 위해서 심지어 무료 수업이 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니 나 역시 생존을 위해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가 비자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우리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과정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해외에서의 삶, 우리가 짊어진 무게가 무겁게 내려앉으며 실감이 났다.

이탈리아의 삶은 반짝이는 꽃나무와 예상치 못한 공사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산다는 것은 한 달 살기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류의 달콤함이 아니다.


물론, 달콤함이 도처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를 달콤하게 즐기기 위해서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체류다. 끊임없는 체류를 위한 서류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그 치열한 현장의 에너지가 매주 수업을 들을 때마다 느껴진다. 여기가 아니면 돌아가면 되지 뭐. 의 마음이 아니다. 절대 돌아갈 순 없어.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나의 아이들을 위해.


내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건 호세 아저씨가 짠해서가 아니다. 여기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공감이었다.

로마에는 유적만 있지 않다. 이런 낙서들도 혼재한다.

지난주 영구 비자를 받기 위해 정부에서 주관하는 언어 시험을 쳤다. 시험을 기다리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아마 길에서 만났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듯한 아니, 가방을 다시 움켜쥐게 만들지도 몰랐을 이들도 있었다. 우린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몇 년을 살았고 시험은 어떨 것 같냐 등등. 우리 모두 로마에 살고 있는 그리고 계속 살고 싶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다.


시험이 시작했다. 몇몇은 이름을 적을 줄 몰랐다. 몇몇은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말은 그렇게 잘하면서 말이다.


한 인도 여학생은 엄마와 오빠와 왔다. 엄마와 오빠는 이탈리아 말을 아예 못 했다. 이탈리아 감독관이 말했다.


“이 시험을 통해 누군가는 비자를 받고 누군가는 일을 하기 위한 서류를 받게 될 거예요. 모두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이름도 적을 줄 모르면 우리가 도와줄 수가 없어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출석 체크를 하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호명하고 간단 한 인터뷰가 있었다. 어떤 일을 하냐? 이탈리아에는 몇 년 살았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엄마가 되면서 지금은 일을 하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다고 하자 흥미로워하며 감독관은 언젠가 이탈리아어로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의 몸에 세배 정도로 보이는 인도 여학생은 자리를 다섯 번 이상을 바꾸며 엄마와 오빠에게 자신의 답을 보여줬다. 경고를 수차례 받았다. 글을 읽지 못하는 흑인 아저씨에게는 선생님이 시험지를 읽어 주었다.


치열한 생존의 현장인데 제일 뒤에 앉아 문제를 풀며 그 모습을 보는데 좀 웃기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아이러니했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서는데 감독관이 불렀다. 나의 서류 한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나 이 학교에서 근무해.
나중에 이탈리아에도 너의 책이 나오면 날 찾아와 줘.
어떤 이야기를 적었을지 너무 궁금해.
꼭, 찾아와야 해!

시험을 치르고 두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하기 위해 지하철로 뛰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자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몇 달을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풀리며 허기가 졌다. 졸음이 쏟아졌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었다.

언젠가 아이에게 물었다.

_이안, 모두가 행복할 수 있어?
_아니.
_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는 거야?
_그럴 순 없어. 슬픈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줘야 해. 죽은 사람이 있으면 눈물을 흘려야 해.
_무슨 말이야? 기분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슬픈 사람도 있다는 거야? 그러면 행복한 사람이 슬픈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줘야 해? 울어주고?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는 거야?
_응, 그리고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가 안 좋은 일이 생겨. 그러면 화도 나고 슬프잖아. 계속 기분이 좋지는 않아.

삶이 그렇다.

계속 좋지도 계속 나쁘지도 않다.


로마에서의 삶도 그렇다.

매일 행복하지도 매일 불행하지도 않다.

역경의 연속이지만 따뜻함과 유머가 언제나 함께한다.


이방인의 삶이 그렇다.

항상 평온한 것도 아니지만 계속 팍팍하지만도 않다.


이방인이어서 이방인을 알게 되고 이방인이어서 각양각색의 이탈리아를 만나게 된다. 

한국의 초코파이, 아르헨티나의 마테차 그리고 쿠바의 하바나 클럽

지난 수업에는 호세 아저씨가 모히토를 만드는 술이라며 하바나 클럽을 가져왔다. 500미리 페트병에 담아온 하바나 클럽에 내가 가져간 초코파이로 안주를 했다. 디저트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카를리나가 가져온 마떼 차였다.


아침 10시였다. 인도 수녀님이 우릴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쾌했다. 우린 사소한 것에도 웃었다. 나이도 얼굴색도 삶의 모습도 다른 우리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 말 덕분이었다.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매주 1회 원고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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