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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Apr 04. 2019

육아 휴직인 줄 알았는데  경단녀였다

나만 돌아서면 된다는 것이.....

니콜라이 교회에서 베를린 돔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졸랐다. 동생의 유모차에 오르고 싶었다. 유모차를 졸업한 5살은 유모차를 타고 싶어 하고 유모차를 타 주면 고마운 2살은 아빠 어깨에 올라탔다.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유모차는 낡았다. 첫째부터 둘째까지 6년을 어지간하다 싶을 정도로 끌고 다녔다. 당장 박살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이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은 아니길 바랬다. 몇 번을 안된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여행의 막바지였고 감정 소모에 지쳐있었다. 아이는 끝끝내 동생의 유모차에 올랐다. 두 번의 신호를 지났다. 한 번의 신호만 더 지나면 베를린 돔이다.


하지만 닿지 못했다. 신호는 초록색으로 바뀌었지만 건너지 못했다. 유모차는 고꾸라졌다. 두 동강이 났다. 망연자실한 날 지나쳐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타지 말라고 했지! 아이에게 원망을 쏟았다. 종일 진행될 베를린 시내투어는 포기해야 했다. 화가 났다. 유모차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애당초 투어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편은 회사 세미나 일정으로 진행되는 투어니 남아야 한다. 단념은 나만 하면 된다. 그게 화가 났다. 나만 돌아서면 된다는 것이.

남편의 회사는 나의 회사이기도 했다. 6년 전 임신과 동시에 휴직이 시작됐다. 마음만 먹으면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작에 불가능함을 느끼고 있었다. 매년 참여하는 세미나에서 나의 위치는 현직 가이드에서 육아휴직 중인 가이드 그리고 가이드 가족으로 바뀌었다.  바뀌었다는 것을 나만 인정을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도 가족이 매년 함께하는 모습이 좋아 보일 줄 알았다. 날 씩씩한 엄마로 보아줄 줄 알았다. 그런데 박살난 유모차, 칭얼거리는 두 아이를 데리고 서서 우리의 유모차가 박살난 줄은 꿈에도 모른 체 베를린 돔 설명에 집중한 일행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의 착각이고 욕심일지도. 그 누구의 배려나 도움 없이 일정을 소화해낼 자신이 없다면 참여하지 말아야 했음을 문제가 발생하면 알아서 빠져줘야 한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텅 빈 듯 서늘했다.

일정 초반의 며칠을 씩씩하게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잘 다녔다. 남편이 회의를 하고 조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나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동물원,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어린이 박물관으로 아이들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부서진 유모차 앞에서 서늘해진 마음은 의욕을 앗아갔다. 호텔에 돌아와 몇 시간이 지났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둘째는 나가고 싶다고 난리를 쳤다. 유튜브에 빠진 첫째는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래저래 뭐가 되든 나가는 게 속 편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첫째가 요지부동이다.


"그냥 좀 나가면 안 돼? 동생이 나가자고 하잖아. 잠깐 나갔다 오는 게 머가 힘들어?" (이렇게 된 게 다 너 때문인 거 몰라?) 동생 핑계를 댔지만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억울한 듯 날 바라보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어른은 좋겠다.
안 혼나잖아.


순간 제어를 못하고 소리 질렀다.


"안 혼난다고? 안 혼난다고? 엄마는 이게 혼나는 거야! 엄마는 호텔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 사람들과 밖에 있고 싶었어. 밖을 봐 벌써 깜깜해. 아침부터 지금까지 호텔에 있었다고! 엄마가 왜 그래야 해? 엄마는 이게 혼나는 거야!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못하고 여기 호텔방에 있어야 하는 게 혼나는 거야! 나가고 싶지만 유모차가 없는데 둘을 데리고 어떻게 나가? 그래도 이도가 나가자고 하니까 힘을 내보는데 왜 안 도와주는 거야?"


아이가 조용히 태블릿을 껐다.


"엄마, 나가. 나가자."


그 말에 제정신이 돌아왔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미안하고 민망했다. 아이는 내 마음을 읽은 듯 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나 화난 거 아니야.
우리 나가자.


밤거리로 나섰다.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로마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물었다. 베를린에서 가장 좋았던 게 뭐야? 하마!(베를린 동물원에서 보았다.) 슬펐던 건 없어? 슬픈 순간은 없었어. 모두 다 좋았어.


호텔방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 혼나는 거라고 소리쳤던 것이 기억에 남지 않았기를.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고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가족이 모두 함께 베를린이 있었다. 그것 만으로 감사할 일이잖아?


슬픈 생각은 하지 말자. 그래도 마음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이번 여행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육아휴직인 줄 알았는데 난 경단녀였다.




후에 동료 가이드가 전해주었다. 아이들과 호텔에 있었던 베를린의 마지막 밤. 세미나를 마치며 최고참으로 남편이 소감을 말하는 자리가 있었단다. 그는 그 누구보다 세미나를 기다리고 참여하고 싶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사람들에게 전했다한다. 그리고 그는 호텔방에 홀로 아이들과 있을 날 위해 마지막 만찬을 뒤로하고 우리에게 왔다.


숙소 근처의 작은 한식당에서 가족 넷이 소박하게 식사를 하고 밤거리를 걸었다.


슬프지만 또 슬프지 않았다.

모두가 이해해 주어도 내편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장 슬플 일이다.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다 해도 상관없다. 내 편 하나가 어루만져준 마음에 슬픔이 가라앉았다.


슬픔이 가라앉자 보였다.

내 앞에 두 아이와 걸어가는 저 남자 역시 많은 것을 놓아두고 우리와 함께 여기 있음을.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매주 1회 원고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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