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주간
한 해 중 두 번. 여름과 겨울 각각 일주일씩 '광야의 주간(Week of wilderness)'을 갖는다.
여기서 광야는 유대광야(Judean Desert)를 의미하는데 마실 물도, 먹을 것도 없는 척박한 환경을 의미한다.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일상적인 일, 관계, 생각, 환경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들어가는 시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無)'라고 하기보다는, 크리스천인 나에겐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집중해보는 시간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모세, 다윗, 엘리야 등...)이 그랬듯이. 이 황량한 광야에서 나의 일상적인 삶은 멈추지만, 내 영혼과 믿음은 좀 더 밀도있게 성장한다.
지난해(2021)말 광야의 주간에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해를 준비하면서 머릿속에 강하게 떠올랐던 키워드는 2가지이다.
1. 마지막때
2.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
1. 마지막때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현재 '마지막때'를 살고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마지막때'는 예수님이 이 땅에 초림하신 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를 의미한다. 크리스천이 아닌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더 자세히, 그러나 간략히 요약해서 이야기 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는데,
그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이자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리는 죄를 저질렀고,
그 원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의 긴밀한 연합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부러져 나간 모양에 비유할 수 있겠다. 부러진 가지는 물과 양분을 공급받을 수 없다.)
한편,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본인의 가장 중요한 성품 2가지는 '공의'와 '사랑'인데,
공의로운 성품으로 인해 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해야하시지만,
동시에, 본인이 손수 지으신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가지고 계셔서 그들을 그 심판에서 구하고자 하신다.
(참고로 여기서 '죄'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피조물을 섬기는 일을 의미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시려고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처음으로 보내셔서 (그리스도의 초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게 놔두심으로 인간의 원죄를 대속하셨다. (대신 해결하셨다)
이후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인간이라는 존재가 언제나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인 '사망'을 이겼고,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할 모든 권한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
예수님이 초림하셨을 때, 이 땅에 본인이 다시 강림하실 것(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때가 이 세상이 최종 심판을 받는 날이며, 완전히 세상이 끝나는 날이라고 계시하셨다.
최종 심판에서는
인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가 임하며 몸과 영혼이 지옥에 던져진다고 하며,
인침을 받은 자들은 몸과 영혼이 영원한 생명 속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고 한다.
아직 그리스도는 재림하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는 현재 초림과 재림 사이의 어느 시간 즉, '마지막때'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재림하시는가? 궁금해질 수 있겠다.
성경에서는 그 재림의 시기와 때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32)
그리고 그 심판의 날은 아주 은밀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고 성경은 말한다. 마치 도둑같이.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10)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6:15)
아니 잠깐...누구도 알지 못하면, 도대체 어떻게 준비하란 말인가?
성경에 있는 단서는 일단 이것이 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데살로니가전서 5:4)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그 때를 준비하며 어떻게 심판을 피하는가...?
이 주제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을 모두 설명해야하는 주제라 이야기가 쉽지 않지만
광야의 주간의 두 번째 키워드와 아주 관련이 깊다.
그래서 두 번째 키워드로 한 번 넘어가 이야기해 보겠다.
2.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
이번 광야의 주간에 조금 더 명확하게 깨달은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사실 나도 꽤 오랫동안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마지막날 심판에서 천국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있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유튜브로 듣게 된 한 설교영상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깨닫게 된 것 같아서 이를 정리해본다. (기본적으로 결론에 대한 모든 논리의 근거는 성경말씀에서 찾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내가 이전에 알고있던 것은 위의 말씀을 토대로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왔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대속되었다는 사실을 잘 믿고 있으면 된다.'에 좀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이렇게 알고있다보니,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의 내용들이나, 복음서 중간중간에 있는 예수님의 비유들이 의미하는 바가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처럼 느껴질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광야의 주간을 지내면서 다음의 말씀 구절을 주목하게 되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위의 구절을 통해 예수님 스스로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그럼 1.주님을 믿는 것과 2.주님 뜻대로 행하는 것은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믿는것 = 행하는 것)이다. 즉, 사람은 자신이 믿는대로 행한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면 그 말씀대로 행동을 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현실적인 예를 들자면,
'내가 어떤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진짜 믿는다면, 그 알고리즘대로 풀베팅해서 트레이딩을 실행해야한다.'는 사실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알고리즘대로 풀베팅 할 수 없다면 조금의 의심이라도 남아있는 것이니 '진짜 믿는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런 의미로 볼때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풀베팅으로 진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게 진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니까.
이 사실이 이번 광야의 주간에 확 깨닫게 된 내용이다.
그리고 이 중심 결론과 관련하여 복음서에 적힌 비유의 의미를 더 확실히 깨닫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22:2-14)
이 비유에서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것'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시인하는 것'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것'
이렇게 대응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크리스천이라도 그냥 믿는다고 시인만하고 지속적으로 그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믿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14절에서 말하듯 택함을 입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천국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좁은 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짜로 주의 말씀을 항상 들으며, 그 말씀을 진짜 믿어 그대로 행하는자가 매우 적기때문에...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는데...
이번 광야의 주간을 통해 내린 결론은 그래서
'주의 말씀대로 반드시 행하는 자'가 되자! 이다.
새로 시작하는 한 해, 그리고 이후에 평생토록
주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그 말씀대로 풀베팅하여 행하는 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Judean Desert : Photo by Amit Lahav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