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른이 될 서로에게
태풍이 오니까 오늘은 안 갈래!!
지난주까지 방학으로 유치원에 가지 않은 다섯 살 둘째가, 어제 하루 유치원을 가더니 오늘 아침 갑자기 ‘오늘만 유치원 안 갈래!!’를 선언한다.
이제야 두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 등원으로 인한 자유를 만끽하나 했더니만, 청천벽력 같은 그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방학 동안 육아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인 탓일 터. 하필이면 신랑도 태풍으로 인한 재택근무를 신청하여 집에 있으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빠도 안 가는데 내가 왜?’ 하는 마음이 들었을 법도 같다.
아이들 등원시키기에 아빠의 재택근무는 결코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다.
우리 집 상황은 이런데 아직 태풍은 우리 동네 가까이 오지도 않은 것 같이 바깥은 비만 조금씩 내릴 뿐 너무나 평온하다.
9시 15분, 아이가 차를 타야 하는 시간 바깥을 내다보니 함께 타는 친구들이 어김없이 우산을 들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 가고 싶지 않은 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개학 이틀 만에 갑자기 ‘안 가겠다!’라고 선언하는 이 아이에게
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부모의 자세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 너도 가고 싶지 않은 그런 날 있겠지…
그래 하며 마음은 읽어주되, 그래도 유치원에는 가야 하는 것임을 차분히 설득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응 방법인 듯한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아이에게 설명한들 ’ 오늘만~오늘만~~‘ 하며 억지를 부리고, 제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드러눕기를 시전 한다.
이럴 땐 내가 마음을 비우는 편이 나을 수 있으나, 그렇게 늘 이 아이의 떼를 들어주다 보면 내가 늘 아이에게 휘둘리는 그런 육아를 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도 한 편으론 드는 것이다.
잠시 나와 첫째 아이의 학원버스를 태워주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를 지금까지 데리고 있는 상황,
그 와중에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마치 이 상황을 전혀 난 못 보고 있다는 듯 본 체 만 체하는 남편에게 괜한 마음의 불똥이 튄다. 결국 똥줄 타는 건 나뿐이구나~ 하는 마음.
괜스레 쌓여 있는, 남편 몫의 쓰레기 분리수거를 보며 왜 안 하냐고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려다, 그 잔소리마저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아이들에게 매일 잔소리하는 것도 지겨운데 남편에게까지 잔소리를 해야 해?
그냥 내가 그 쓰레기 분리수거라도 치우며 마음의 스트레스를 다스려보겠다고 현관으로 그 분리수거 가방을 들고 나선다.
‘내가 요즘 분리수거 엄청 많이 하는 거 알고 있지?’ 하고 경고에 가까운 한 마디를 건넸는데, 눈치는 없는 건지 남편은 웃으며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그 대답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들었다가는 화가 더 많이 났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았을 뿐인데, 예정과 다른 행보로 인해 꼬이게 된 나의 하루 스케줄 때문에 내 마음속 태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다.
어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생각해 둔 나의 앞으로에 대한 고민과 계획은 오늘도 또 한 번 무력감에 빠진다.
늘 변수투성이인 육아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늘 롤러코스터를 탄다.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는 데도 내려놓기란 쉽지 않구나.
내 마음의 태풍이 액땜을 했으니, 진짜 태풍 카눈은 조용히 우리나라를 스치고 지나기를.
엄마, 오늘만 유치원 안 가게 해주면 내가 엄마 커피 만들어 줄 거야.
커피머신으로 커피 내리고 얼음을 넣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주는 역할에 재미를 붙인 녀석이 협박조로 얘기하던 말,
아깐 화가 나서 커피 안 얻어먹으려고 했는데, 억울해서 그 커피 한 잔이라도 얻어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