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른이 될 서로에게
1학년이 된 첫째가, 나에게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건넨다. 다양한 색깔의 펜으로 색칠한 너의 끼적임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예쁜 그림 안에 적어 온 것들인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동생이랑 싸워서 죄송해요.'
'앞으로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했던 녀석의 속마음이라고 생각하니, 싸울 때마다 큰 소리로 너희를 말리고, 발로 차고 손으로 밀며 육탄전이 벌어질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라며 말리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멀찍이 떨어져 생각해 보면, 자매 둘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고, 또 어찌 어른처럼 이성적으로 싸우기만 할 수가 있을까. 때론 손이 먼저, 발이 먼저 올라가기도 하지만 폭력은 어떤 경우에서든 안 되는 것이라 가르쳐야 하기에 엄마인 나는 또 한 번 잔소리를 시전 한다. 그리고는 '그래 첫째인 너도, 둘째인 너도 나름 힘들겠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속으로만 그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 아이들 하나하나에겐 그저 가르침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너의 글귀 하나하나를 보니 반성이 되고야 만다.
오래오래 건강하라는 말도 그래서 그냥 넘어가지질 않는다. 늘 아이들이 싸울 때마다 들리는 고성을 참아내기 힘들어 귀를 막고, 또 아이들에게는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전해주기도 했다. 스트레스받아서 힘들다고도 했고, 지쳐 쓰러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말 힘든 어느 날엔가는 청개구리 이야기를 전하며 겁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겐 그 말이 얼마나 두려운 말이었을지 싶어 오래오래 건강하라는 말과 함께 뒤섞여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네가 건넨 그림 속 유리병에는 하트에 너무나 소중한 말들이 하나하나 적혀있다.
'힘내세요.'
'파이팅.'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곁에 있어서 고마워요.'
'항상 행복하세요.'
어쩌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너희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그래, 난 너희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난 내 일을 쉬면서까지 너희 곁에 있는 편을 택했지. 그런데 지금 내 입으로 너희에게 전하는 말은 이런 따뜻한 엄마의 온도가 적힌 말이 아닌, 그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말들 뿐이었다니.
내가 그동안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너희를 내가 키우고 있다는 착각.
내가 너희 옆에 있어주지 않는다면
부족할 거라는 착각.
늘 가까이서 지켜보고,
잘못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는 착각.
사실 너희는 하루하루 엄마가 어떻게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고,
또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인데.
실은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유연하게,
너희를 믿고 세상에서 즐겁게 뛰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한참을 많은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럽게 일을 하게 되었던 작년,
그리고 첫째의 1학년을 맞이하며 아이들 옆에
더 가까이하고 있는 올해.
난 그냥 '가까이 있어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이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너희를 내 시간을 온전히 써서 키우고 있다고
혼자 착각했던 건 아니었나.
관성을 거스르긴 어렵지만, 너희를 위해 엄마는 또다시 조금 더 변하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고맙고 그리운 존재가 되기 위해. 지지하고, 사랑하고, 응원하고. 또 힘들 땐 기댈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어볼게.
(덧붙임. 네가 준 쿠폰의 유효기간이 2023년 7월 30일이네. 꼭 그전까지 다 쓸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