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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Feb 04. 2024

장수풍뎅이 애벌레

언젠가 어른이 될 서로에게

우리집에는 지금,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살고 있다. 

집에 애벌레를 들이게 될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었다.

 

첫째가 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생명과학을 듣게 되었는데 

그 시간 수업 내용이 장수풍뎅이 관찰, 생태에 대해 알아보고

직접 애벌레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장수풍뎅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집에 오자마자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녀석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용감하게 집어드는 딸 아이를 보고는 사실 흠칫 놀랐다. 

이렇게나 이 녀석이 겁이 없던 녀석이었나.


어쨋든 첫째는 녀석의 이름을 장(수)풍(뎅이)이라고 이름지었다. 장풍이. 


분명 하루 이틀, 열심히 쳐다보고 신경쓰다가 나중에는 쳐다도 안보겠지 싶었는데 

예상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첫재에게 생명을 가진 존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를

알려주고 싶어 최대한 건들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그러자니 장풍이가 걱정이 된다. 


한 번씩 흙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뿌려주어야 하는데, 

흙 윗부분에 주어야 하고 직접 물이 닿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따금씩 배설물도 치워줘야 한다. 

한 번은 녀석이 잘 챙겼겠지 싶어 두었다가 살펴보니, 흙은 절반 정도로 줄어있고, 

흙을 들여다 보니 까맣게 커다란 쌀 알처럼 생긴 배설물들이 흙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말 이건 똥밭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라다! 

비위가 강하지도 못 하고, 또 정말 만지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죽게 둘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녀석의 배설물을 한가득 나무젓가락으로 건져올렸다.

나중에 첫째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까지 야무지게 찍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흙에 바로 물이 스며들지 않자 자꾸자꾸 물을 주다 보니, 나중엔 흙 위로 물이 흘러넘칠 정도로 

물을 과도하게 넣어버린 것이다. 

분명 직접적으로 물에 닿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순간 비상모드에 돌입한 나는, 

황급히 물을 따라 버리고, 

또 이미 물이 흥건한 그 흙도 파 올렸다.

물론, 그 안에 있는 애벌레도 살려야 겠다는 절박함만 있었다. 

아... 물에 축축히 젖은 애벌레가 살짝 움찔 거린다. 

살아있는 것일까,  죽기 전의 마지막 발악일까. 

속으로 너무나 긴장됐다. 

이대로 못 보내...!!


부디 살아만 있어라... 

라고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며 

너무 많이 축축해져 버린 흙의 절반 이상을 버리고 

새로운 흙을 다시 담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란 조치는 다 취하고 

'그래 이제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라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녀석이 원래 있던 자리에 잘 놓아주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다 했다. 


그렇게...

녀석은 

오늘도 잘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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