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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Z Jul 28. 2024

안녕, 개굴

언젠가 어른이 될 서로에게

오늘도 개구리가 운다. 


아파트 단지 치고는 큰 편인 우리 단지는 입주 4년 차가 되는 아파트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아파트 단지에서는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는 노랫말처럼 

개구리들의 단체 합창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밤이 되면 더 커지는데 한 녀석이 선창을 하면 다른 모든 아이들이 화답하듯 

합창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계속된다. 

늘 궁금했다. ‘이 많은 개구리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그 많은 녀석들이 단체로 서식지 이동을 하듯 

아파트 석가산에 찾아왔을 리도 없고, 그런 모습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없다. 

그래, 개구리는 개구리기이기 이전에 올챙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올챙이가 많이 서식할 만한 웅덩이 같은 건 많지 않은데? 

있다고 한다면 물이 담겨있는 석가산. 그런데 누가 풀어놓지 않고서는 

이렇게 아파트가 떠내려 가도록 많은 녀석들이 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문은 꽤나 오래 풀리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런데 그 의문은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그 의문은 풀려가는 듯하다.

첫째는 참 많은 새로운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며 배우고자 한다. 

때로는 그 관심이 길게 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녀석의 호기심은 방과후 생명 과학 시간에도 이어졌다. 

무엇인가 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던 녀석은, 그날도 개구리에 대해서 배우고, 

올챙이 두 마리를 선생님께 받아 가져왔다. 귀여운 올챙이였다. 


이름도 지어주었다. ‘개굴’


손톱보다도 작은 녀석을 구경하는 건 나에게도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생전 처음 보는, 하지만 책에선 많이 만난 적 있던 녀석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 건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노랫가사처럼 올챙이었던 녀석의 몸에서 

뒷다리가 쏙, 나오고 또 앞다리가 쏙, 나오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과 같지 않은 조그마한 생명들도, 결국 크든 작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세상 모든 생명체들의 귀함을 몸소 느꼈다. 


귀여운 초소형 개구리를 구경하게 되자, 

징그러울 것만 같았던 개구리에 대한 편견도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녀석이 개구리가 된 뒤에는 올챙이적 주었던 사료에 입도 대지 않는 것이다. 

늘 채집통을 살펴보면 허공만 멍 때리고 쳐다보고 있는 듯 했다. 

검색해 보니, 개굴이는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된 뒤에는 살아있는 날파리나, 밀웜 등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아, 몰랐구나. 이제 개굴이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신과 같은 개구리들과 함께 무리지어 

먹이를 잡아 먹으며 야생에 적응토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째와 함께 개굴이를 아파트 단지 석가산에 풀어 주었다. 

하필 비가 오는 날이었다. 녀석이 우릴 매몰차다고 야속해 할 것도 같았지만,

녀석에게 더 중요한 것은 먹이활동이라는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들이 많으니 분명 잘 적응할 것이라며 걱정하는 첫째와 나 자신을 다독였다. 

우산을 썼지만 녀석을 내려주다 보니 우리도 비에 젖었다. 


처음 내려놓으니 움직이지 않고 있던 녀석이 폴짝, 풀 숲으로 한 뜀박질을 했다. 

그래, 너도 이제 자유의 몸이구나! 하지만 생각보다 야생에서의 삶은 쉽지 않겠지, 

하지만 때가 되면 그러한 시간을 너에게 허하는 것이 더 너를 위한 길일 거야. 

우물 안 개구리처럼 채집통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은 너의 선택이 아닌 우리의 선택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풀 숲으로 사라지는 녀석을 한참 바라보았다.

'안녕, 개굴아!'


녀석을 놓아준 뒤 첫째는 ‘개구리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에게는 개구리가 자신이 데려와 키운 생명체 중에 

가장 성공적으로 성체까지 만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장수풍뎅이 애벌레는 성체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 

이렇게 많은 개구리가 울고 있는 이유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매 학기 생명과학 수업을 들은 아이들이 올챙이를 데려와 키우고, 

성체가 된 녀석들을 우리처럼 석가산에 놓아준 거야, 

그리고 개구리들은 그렇게 서로 번식을 하고, 석가산에 터를 잡고 살아갔나봐.

그래 바로 그거였어!  


지금도 첫째는 개굴이와 헤어질 때 찍어둔 녀석의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 두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개구리가 울면, 개굴이를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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