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어쩌다가 상하이에 갔나
친구와 작게 사업을 하고 있던 나는 창업을 시작면서부터 줄곧 중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중국에서 뭐든 해서 갑부가 되겠다는 터무니없는 차이나드림은 아니었다.
나 중국 가고 싶어
바로 다음 달 직원 월급.. 그리고 우리 월급을 걱정해야 했던 시기. 오랜만에 여유 시간이 생겨 신길동에 작게 오픈했던 카페 겸 사무실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친구와 그네를 타며 말했다. 친구는 목표 의식이 정확한 아이여서 항상 미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 어떻게 살 것 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반면 나는 장기적인 계획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하며 발전을 추구하는 편이었는데 친구의 구체적인 계획은 내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20대가 되고 우연히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면서 IT 에 관심이 많아졌던 내게 중국은 꿈의 나라다.
어렸을 때부터 난 신기한 것을 보면 항상 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장 난 프린터기를 고치고, 아빠 문서 편집을 도와주며 칭찬 듣는 걸 좋아했다.(물론 어린아이 수준에서 잘했겠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인포 메일 발행을 시작했고 소설을 연재하며 3만 명의 구독자를 모으곤 즐거워하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면 특별나지는 않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일에 찌들어 어찌저찌 삶을 유지하던 어느 날부터인가 중국의 급격한 성장이 뉴스를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나오기 시작했다.
아 지금.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다.
사회적 나이 서른,
한국 나이 스물아홉,
글로벌 나이 스물여덟.
마음은 이미 마흔이 된 이번 여름,
나는 상해에 왔다.
창업 3년 차였던 내게 상해행은 인생에 아주 큰 결정이었다. 모두가 예상하듯 부모님은 나를 걱정했지만, 이미 제멋대로 취업하고 사업하고, 아주 '망둥이'처럼 날뛰던 딸이 공부를 다시 하겠다는 걸 말릴 수는 없었겠지.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다더니 서른이 다되어서 해외에서 공부를 하게 될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 눈 감았다 뜨면 서른이었으면 좋겠다!"
중고등학교 때에 친구들에게 매일 같이 하던 말이었다. 서른이면 직장, 집, 남자(?) 등등 모든 것이 안정돼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개뿔 안정된 건 하나도 없다. 중학교 때의 나는 내 인생이 이렇게나 파란만장할 줄 알고 있었을까?
워부쯔따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