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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Sep 12. 2017

# 0. 프롤로그
- 어쩌다가 그런짓을

그녀는 어쩌다가 상하이에 갔나




 친구와 작게 사업을 하고 있던 나는 창업을 시작면서부터 줄곧 중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중국에서 뭐든 해서 갑부가 되겠다는 터무니없는 차이나드림은 아니었다. 


나 중국 가고 싶어

 바로 다음 달 직원 월급.. 그리고 우리 월급을 걱정해야 했던 시기. 오랜만에 여유 시간이 생겨 신길동에 작게 오픈했던 카페 겸 사무실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친구와 그네를 타며 말했다. 친구는 목표 의식이 정확한 아이여서 항상 미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 어떻게 살 것 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반면 나는 장기적인 계획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하며 발전을 추구하는 편이었는데 친구의 구체적인 계획은 내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친구가 직접 찍은 와이탄인거 실화냐


 20대가 되고 우연히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면서 IT 에 관심이 많아졌던 내게 중국은 꿈의 나라다.


 어렸을 때부터 난 신기한 것을 보면 항상 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장 난 프린터기를 고치고, 아빠 문서 편집을 도와주며 칭찬 듣는 걸 좋아했다.(물론 어린아이 수준에서 잘했겠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인포 메일 발행을 시작했고 소설을 연재하며 3만 명의 구독자를 모으곤 즐거워하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면 특별나지는 않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일에 찌들어 어찌저찌 삶을 유지하던 어느 날부터인가 중국의 급격한 성장이 뉴스를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나오기 시작했다. 


아 지금.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다.


사회적 나이 서른,
한국 나이 스물아홉,
글로벌 나이 스물여덟.

마음은 이미 마흔이 된 이번 여름,
나는 상해에 왔다.

 창업 3년 차였던 내게 상해행은 인생에 아주 큰 결정이었다. 모두가 예상하듯 부모님은 나를 걱정했지만, 이미 제멋대로 취업하고 사업하고, 아주 '망둥이'처럼 날뛰던 딸이 공부를 다시 하겠다는 걸 말릴 수는 없었겠지.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다더니 서른이 다되어서 해외에서 공부를 하게 될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 눈 감았다 뜨면 서른이었으면 좋겠다!"


 중고등학교 때에 친구들에게 매일 같이 하던 말이었다. 서른이면 직장, 집, 남자(?) 등등 모든 것이 안정돼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개뿔 안정된 건 하나도 없다. 중학교 때의 나는 내 인생이 이렇게나 파란만장할 줄 알고 있었을까?


 워부쯔따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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