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살신성인에 조직의 명운이 걸린 체제
상지대신문이 당장 없어져도 누가 신경이나 쓸까?
마감하느라 밤을 꼬박 새울 때면 늘 이런 생각을 했다. 대학원관 5층 창문 너머 일출로 붉게 물든 치악산이 보이고, 사무실엔 서늘한 새벽 찬 기운이 으스스 맴돈다. 기분 나쁜 외로움이 왈칵 몰려와 피로에 찌든 머릴 어지럽힌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 누가 이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신문이 잘 나오든 못 나오든, 우리 말고는 관심도 없을 텐데. 당장 돌아오는 월요일에 신문이 안 나와도, 아니, 아예 상지대신문 자체가 없어져도 누가 신경이나 쓸까? 아, 또 쓸데없는 생각 하네. 마음을 다잡고 마감에 집중한다. 그러다 다시 또 멍. 요컨대, 내게 학보사는 ‘현타’와의 싸움이었다.
학보사는 내 대학 생활 전부였다. 학보사를 하고자 대학을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업보다 취재가, 과제보다 기사가 우선이었다. 늘 취잿거리를 찾고, 편집 방향을 궁리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신문을, 그리고 지속 가능한 학보사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언제나 고민했다. 내가 없으면 학보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나만이 상지대신문을 살리고 더 나은 길로 이끌 수 있다는 자부심이 마음 한구석 있었다. 대단히 오만하고 자의식과잉이지만, 한 줌 안 되는 그 자부심이라도 없었으면 학보사 생활 못 버텼을 거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런저런 실수는 피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다. 부끄럽지 않게, 내 모든 역량을 쏟았다.
상지대신문은 그렇게 유지된 조직이다. 어떤 체계적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제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고, 헌신과 희생을 얘기하긴 낯부끄럽지만 하여간 각자가 모든 걸 갈아 넣어 간신히 지탱해온 조직이다. 학생사회 쇠퇴, 학보사 위기, 대학본부 지원 감축…. 뭐 이유를 들라면 할 말이야 많겠지. 여하튼 언제부턴가 그랬다. 개인의 살신성인에 조직의 명운이 걸리기 시작했달까. 그런 조직에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순 없었다. 우리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기자교육에 꽤 많은 품을 들이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공들였다. 주먹구구식 운영에 원칙을 만들고, 명문화한 매뉴얼을 정립했다. 결과적으로, 내 능력이 부족해 원하던 수준의 시스템을 만들진 못했다. 떠나면서 아쉬움이 컸다.
올해 다시 편집장으로 돌아온 건, 어쩌면 그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두 명만 남은 학보사는 존폐 위기였다. 이번에야말로 학보사 시스템을 제대로 세우고 싶었다. 뉴미디어 중심 보도 체제를 골자로 한 혁신안을 만들고, 인력을 대거 충원해 최소한의 기반을 닦고자 노력했다. 원래 하던 일이 있고,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 학보사 일을 병행하는 게 대단히 무리였다. 그럼에도 학보사 일에 꽤 많은 역량을 쏟았다. 한 학기가 지나니 기본적 체계가 잡혔다. 그 옛날 편집장 하던 때 만큼의 시스템은 세워진 듯했다. 더 나아가고 싶었지만, 한계였다. 더는 학보사 일을 병행하기 어려웠다. 사직 뜻을 담은 공문을 내고, 마음을 정리했다.
대학본부 입장에선 좀 갑작스러웠나 보다. 사직을 반려하더라. 솔직히 뜻밖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최근 편집장 세 명이 잇따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직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고, 후임자가 편집장을 이어받기엔 학년이 낮다는 논리였다. 그 말에 난 버튼이 눌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일었지만 억눌렀다. 대학본부가 학보사에 관심이 1도 없다는 걸 그 말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상황에서 학보가 꼬박꼬박 별 탈 없이 나오는 걸 당연한 줄 안다. 학보사 개혁을 운운하지만, 솔직히 학보가 나오든 못 나오든 없어지든 별 상관도 안 하리라. 이제껏 쌓인 감정이 속에서 끓었다.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더욱더 굳혔다.
편집장들이 왜 임기를 못 채우고 잇따라 그만두겠나? 그걸 정말 개개인이 책임감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나? 임기를 채우려야 채울 수 없는 구조가 만연해서 아닌가. 개인의 살신성인에 조직의 명운이 걸리는 체제를 이제껏 방관했으면서, 그 개인이 못 버티고 나간다고 할 때나 겨우 잠깐 관심을 기울이고 책임감 같은 소릴 지껄인다. 대학원관 5층을 한 번이라도 와서 기자단 마감하는 걸 지켜봤으면 그런 말 못 한다. 그 개인들이 이렇게는 못 한다고, 더는 못 버틴다고, 시스템을 얘기하고 지원을 촉구할 때, 대학본부는 어디서 뭘 했는지 내가 구태여 지적하고 싶진 않다. 비리재단 체제를 거치며 시스템이 무너진 학보사를, 소위 대학 민주화 이후 재건할 기회가 왔을 때, 대학본부가 어디서 뭘 했는지도 역시 구태여 지적하고 싶진 않다.
나는 학보사가 이 지경이 된 걸 두고 대학본부 탓을 하고 싶지 않다. 학보사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위기란 말이 나왔고, 지금 상지대와 비슷한 지방대에선 폐간을 면치 못하는 처지다. 그래도 폐간 안 하고 조금이라도 예산 배정해주는 게 어디야. 가뜩이나 대학 재정 상황도 어려운데. 다만, 내가 열 받는 건 그들이 말하는 논리다. 종이신문에서 벗어나 온라인 발행으로 나아가자면서, 거기에 걸맞은 어떠한 행정 체계 개혁과 지원 없이, 발행 예산 덜컥 삭감하고 온라인 홈페이지 탁 개설하고 끝이다. 온라인 발행 체제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숱하게 요구했음에도 결국 답은 “나중에”다. 실상 아무도 관심 없는 거지. 우리 업무는 여기서 더 늘어나는 셈인데, 일단 하자는 거다. 그걸 하면 정말 나중에 지원이 뒤따를까? 시스템이 만들어질까? 개인의 살신성인에 조직의 명운이 걸리는 이 음울한 상황만 더 강화하지 않을까.
우리가 더 좋은 저널리즘을 선보이고 대학 구성원에게 인정받으면 자연히 지원이 늘 거라는 말도 듣는다. 나는 우리 독자들은 당연히 그런 말을 할 수 있고 그건 우리가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지만, 대학본부는 그런 말 자격 없다고 생각한다. 염치가 있어야 한다. 학보사가 어떤 저널리즘을 선보이든 대학본부는 지원을 줄여왔다. 지원을 줄이니 학보사 근무 환경은 더 열악해진다. 현직 기자가 버티지 못해 나가고, 그 귀한 수습기자는 더 희귀해진다. 좋은 저널리즘을 선보이기 당연히 어려워진다. 이 악순환이 반복돼 온 걸 대학본부는 정말 모르나? 먼저 지원을 늘리고 좋은 저널리즘을 선보이라 말해도 모자랄 판에, 되도 않는 조건을 내걸고 훈계와 흥정을 한다. 누군가는 학보사 기자들이 왜 이리 많은 활동비를 받느냐고 뭐라 한다는 데, 야 진짜 그럴 거면 그냥 상지대신문 없애자 싶다. 그게 그냥 모두에게 나을 거 같다.
예전이라면 어떻게든 버텨서 시스템을 만들고, 필요하면 싸웠을 거 같은데, 이젠 나도 지쳤다. 더는 학보사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 기자단이 모든 걸 갈아 넣는 체제를 당연한 듯 여기는 대학본부에 당장은 어떤 기대도 희망도 품지 않는다. 상지영서대와 통합하고 돈이 좀 생기면 달라지려나? 평소 대학본부가 얼마나 학보사를 걱정했다고 내가 무책임하고 급하게 사직을 결정했다고 느끼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웃긴다. 아무렴 내가 그들보다 고민과 걱정 없이 결정을 내렸겠나? 4년 가까운 시간 학보사를 이끌면서 나는 늘 이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골몰했다. 설마 내가 편집장을 그냥 아무에게나 넘기고 인수인계했으리라 생각하나? 편집장을 맡기에 낮은 학년이 어디 있나? 능력 있으면 하는 거지. 지금까진 아무 말도 없었으면서, 언제부터 시스템을 그렇게 걱정하셨다고. 하여간 난 그 논리를 참 비웃고 싶은 것이다.
징징거림이 길었다. 어쨌든,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이제야 나는 상지대신문을 그만둔다. 약속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떠나는 데 독자들과 신문사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 왠지 안 좋은 얘기만 잔뜩 쓴 거 같은데, 실은 나는 학보사에서 배운 게 너무나 많다. 보다 넓은 관점과 공정한 균형감각을 익히고, 지역 활동의 가치와 필요성을 이해하고, 조직을 관리하고 동기부여 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덜 분노하게 된 거 같다. 무엇보다 평생 함께하고픈 좋은 친구이자 동료를 여럿 만났다. 상지대신문과 함께 한 나날을 계속 간직하고 싶다. 학보사에서 스쳐 간 모든 인연에 감사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상지대신문이 당장 없어지면 누군가는 분명 신경 쓸 거라 굳게 믿는다. 두서없는 잡글,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