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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Oct 12. 2023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자퇴하겠다는 말은 들은 후 3번째 일기

'자퇴라는 단어가 왜  인생에 끼어들었을까'라는 생각. 그 '생각'을 먹고 체한 것처럼 써 한 달째 이 거북했다. 소화제를 찾듯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책 속으로 도망이라도 쳐야 살 것처럼.

우연히 집어든 고(故) 박완서 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에세이를 보다가 위로받았다. 위로받으려고 고른 책은 분명 아니었다. 모래알같은 위로나 공허한 공감이 아닌, 바늘 같은 말로 손끝을 따준 듯했다.

고(故) 박완서 작가님은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죽었다는 사실을 이겨내지 못했을 때, 어떤 예비수녀의 말 한마디 적절한 가르침 고 했다. 그 말은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이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꼭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네~ 내가 뭐라고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왜  자식은 공부도 잘하고 사춘기도 별 탈 없이 무난하게 넘어갈 거라 믿었을까. 그 '별 탈 없이 무난하게'란, 그저 내 기준에서 내 마음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투정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속 좁은 마음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이 잘못된 신념이 내 안에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자퇴니, 꼴찌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굳은 믿음은 대관절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내가 뭐라고. 내 편협함과 오만함을 들킨 것 같았다.


만일 아들이 꼴찌 대신 1등을, 자퇴 대신 학생회장쯤 하고 있었다면 나는 내가 잘 키워서라고 자만했을 거다. 겉으로는 애가 잘한 거지 나야 뭐 거들어줬을 뿐이라며 겸손한 척도 했겠지. 으스대는 쾌감을 느끼며 목에 깁스한 사람처럼 돌아다녔을 거다. 그러고도 남았을 성정이다. 나란 인간은.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꽤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역겹게 굴었겠지. 내가 엄마로서 어떤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달라며 나, 이렇게 대단한 엄마라고 한참 떠들어댔을 거다.


나란 인간이 그런 인간이라서 '자퇴하고 싶다며 방황하는 아들'을 망치 삼아 '그런 나'를 깨뜨려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우려는 세상 뜻이 아니었을까. 감히 세상의 이치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퇴라는 단어가 어느 정도 소화되고 있는 듯하다. 아들이 한번 더 자퇴하겠다는 말을 한다면, '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아들을 응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한 79% 정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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