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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하루만 Oct 15. 2023

교보문고 직원에게 고마웠다.

어차피 안 될 텐데 뭐 하러~

"주차하셨어요?"

"네~ ***9요"

"주차 등록해 드렸어요. 어! 근데 2분밖에 안 남으셨네요. 빨리 해드릴게요"


그 말을 들어서였을까? 직원의 손이 분주해 보였다. 포스기 화면을 빠르게 터치하는 것 같았고, 책 바코드 찍는 속도가 평소보다 1.5배속쯤 돼보였다. 분주해진 직원의 손놀림을 보고 내가 건넨 말은,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가 아니었다. 3층부터 지하 2층까지 2분 안에 간다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 빌딩에서? 어림도 없었다. 난 100% 확신했다. 당연히 2분 안에 못 갈 거란 확신 때문에 직원들이 빨리 처리를 해준다 한들, 난 뛸 생각이 아예 없었다. 계산하는 데만 2분이 걸릴 수도 있을텐데. 포인트도 적립해야하구. 시큰둥했지만 바빠보이는 직원을 배려해 주는 척하며 말했다.

 

"어차피 2분 안에 못 가요 천천히 해주셔도 돼요~ "

그 말을 들은 직원 2명은,


직원 A : "그래도 돈이 너무 아깝잖아요. 얼른 해드릴게요"

직원 B"혹시 모르니까 일단 빨리 해드릴게요"


그 순간 안 될 거란 내 확신은 말끔히 사라졌다. 마음이 움직였다. 1명도 아닌 2명이나 같은 마음으로 말해주니까 그 마음을 믿어보자 싶었나 보다.

'그래. 두 명이나 마음을 모아줬는데 나도 달려보자' 싶었다. 바통 터치하고 뛰는 육상 선수처럼 계산이 끝난 물건을 받아 들고, 계산대에서 엘리베이터까지 후다닥 뛰었다. 웬일이지?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엘리베이터 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열리는 중이었다. 난 멈출 필요도 없이, 공이 골대에 빨려 들어가듯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타자마자 지하 2층 버튼을 평소보다 2배속으로 눌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건물은 워낙 사람도 많아서 엘리베이터를 안 기다리고 탄 적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시간대도 일요일 오후 4시라 한가할 때는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지하 2층에 왔다. 한 층도 멈추지 않았다! 

'뭐지? 기적인가? 3층에서 지하 2층까지 한 번도 서지 않고 다이렉트! 한 층도 안 섰다고? 와~' 


문이 열렸다. 내리자마자 차로 뛰었다. 바로 시동 걸고 엑셀을 밞으면서도 내심 '1분은 넘었을 것 같구. 2분이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혹시 몰라서 카드를 꺼내 손에 쥐고 있었다. 출구에 잠시 대기하니까 차단기가 열렸다. 안 늦은 모양이었다. 정산할 게 없다는 멘트와 함께 차단기가 열렸다. 차단기가 부드럽게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와! 대박'이 아니라,


'하아아~ 거 참. 감사합니다! '


감사한데 기막히기도 했으니까.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기다리던 택배를 받을 때보다 좋았다. 그 직원분들은 무료 주차시간이 2분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어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려줬다. 그리고 날 뛰게 했다. 내가 건넨 '어차피'란 단어에 굴복하지 않고 혹시 모르니 빨리 해드리겠다는 말을 전해준 두 사람 마음. 그게 기적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두 분의 교보문고 직원 덕분에 내가 한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어차피? 어차피! 어차피..

'어차피'라는 말은 결과를 예측하고 그렇게 될 테니까 지금부터 포기하겠다는 거다.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상상하면서. '어차피 망한 인생, 술이나 먹자. 어차피 늦을 거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안될 거 뭐 하 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결과든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애초에 사람의 것이 아닌 세상이 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아닌 결과를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예상한다. 난 어차피 안될거란 생각으로 직원들의 손놀림을 시큰둥한 눈으로 봤다. 내가 예상한 결과가 맞을거라면서. 


어차피란 단어는, 자신이 짐작한 대로 될 테니까 미리 포기하고, 할 수 있는 도 안 하게 만드는 묘한 주문같다. 안 하고 주저앉아도 된다는 허락 같다. 꽤나 그럴싸한 근거처럼 내세우게 되는 '어차피'. 옛 선조들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감히 그 조언을 무시하고 있었다.


교보문고 직원분들은 내가 건넨 '어차피'라는 말에 '뭐, 렇겠네요'라는 대답을 하고 천천히 처리했을 수도 있다. 나보다 20살은 어려 보이는 분들이었다. 난 그 나이 때 상대의 시간과 돈을 생각할 줄 아는 여유가 없었다. 잠시 부러웠고 존경스럽고 참 고마웠다. 아, 이름이라도 봐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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