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라는 단어가 왜내인생에 끼어들었을까'라는 생각. 그 '생각'을 먹고체한 것처럼벌써 한 달째 속이 거북했다. 소화제를 찾듯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책 속으로 도망이라도 쳐야 살 것처럼.
우연히 집어든 고(故) 박완서 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에세이를 보다가 위로받았다. 위로받으려고 고른 책은 분명 아니었다. 모래알같은 위로나 공허한 공감이 아닌, 바늘 같은 말로 손끝을 따준 듯했다.
고(故) 박완서 작가님은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죽었다는 사실을 이겨내지못했을때, 어떤 예비수녀의 말 한마디가적절한 가르침이됐다고 했다. 그 말은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이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꼭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네~ 내가 뭐라고 나한테 이런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왜내자식은 공부도 잘하고 사춘기도 별 탈 없이 무난하게 넘어갈 거라 믿었을까. 그 '별 탈 없이 무난하게'란, 그저 내 기준에서 내 마음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투정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속 좁은 마음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이잘못된 신념이 내안에 있었음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자퇴니, 꼴찌니, 그런 일은 절대없을 거라는 굳은 믿음은대관절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내가 뭐라고. 내 편협함과 오만함을 들킨 것 같았다.
만일 아들이 꼴찌 대신 1등을, 자퇴대신 학생회장쯤 하고 있었다면 나는 내가 잘키워서라고 자만했을 거다. 겉으로는 애가 잘한 거지 나야 뭐 거들어줬을 뿐이라며 겸손한 척도 했겠지. 으스대는 쾌감을 느끼며 목에 깁스한 사람처럼 돌아다녔을 거다.그러고도 남았을 성정이다. 나란 인간은.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꽤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역겹게 굴었겠지. 내가 엄마로서 어떤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달라며 나, 이렇게 대단한 엄마라고 한참 떠들어댔을 거다.
나란 인간이 그런 인간이라서 '자퇴하고 싶다며 방황하는 아들'을 망치 삼아 '그런 나'를 깨뜨려 더 큰 자유를 얻을수 있도록 도우려는 세상뜻이 아니었을까. 감히 세상의 이치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퇴라는 단어가 어느 정도 소화되고 있는 듯하다. 아들이 한번 더 자퇴하겠다는 말을 한다면, '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아들을 응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한 79% 정도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