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가족이지만 혼밥 합니다
우리 집만 그런가~
한 밥상에 가족이 모두 모여 앉은자리. 할아버지가 먼저 숟가락을 드시고 아빠도 숟가락을 드셨는지 확인한 다음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가끔 할아버지가 안 계신 날엔 아빠의 숟가락만 확인하면 됐다. 왜 엄마나 할머니는 아니고 꼭 아빠와 할아버지여야만 했는지 물어본 기억은 없다.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밥 먹는 풍경이다. 어른이 물으면 답을 하는 정도였고, 먼저 말을 하면 안 되는 시간이었다. 계집애가 밥상머리에서 떠들면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 때문에. 서로 얼굴 보며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얘기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콩을 골라내 밥그릇 뒤에 몰래(?) 안 보이게 숨겨놔도 혼났고 골고루 먹으라는 잔소리를 들었던 시간. 마음 편히 먹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반드시 다 모여서 '같은 시간'에 먹어야 했다는 건 기억난다.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 먹을 수 있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지금 우리 가족은 따로 먹는다. 먹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 다른 식구를 기다렸다가 먹기엔 시간이 안 맞고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첫째는 6시쯤 저녁 먹고, 남편은 회식이 자주 있어서 집에서 저녁 먹는 시간이 들쑥날쑥이다. 둘째는 학원 가기 전에 먹으면 졸리다고 꼭 학원 끝나고 나서 먹는다. 그러면 밤 10시에 먹게 되고. 각자 다른 시간에 혼밥 한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처음엔 화가 났다. 다 같이 모여야 하는데, 이게 무슨 콩가루 집안인가!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만 밥을 줘 볼까? 그러면 같은 시간에 모여서 먹으려나? 내 속엔 답이 없는데 계속 내 생각 속에서 답을 찾으려다 보니 머리만 뜨끈해졌다. 음.. 이런 게 콩가루 집안인 건 맞나? 다른 시각의 질문을 내게 했고,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눈 감고 돌아보는 수밖에. 눈을 감았다. 무슨 마음 때문에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돌아봤다.
40년 전엔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게 당연했고 그때 그 시절의 '내 경험대로 되어야만 하는 게' 정답인 줄 알았다. 그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거란 관념이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었다. 제대로 된 엄마노릇이라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식구들을 다 같이 모아놓고 먹게 하는 게 올바른 식사문화라는 틀, 그걸 못해낸 난 등신 같은 엄마라는 자책, 왜 이런 것까지 나 혼자 짊어지고 고민해야 되냐며 스스로 만든 부담감. 남편은 이런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 단정 짓고 원망까지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돌아본 마음을 빼기하고 나서 '요즘 애들' 공부를 좀 했다. 지금 시대의 가족의 역할, 변해가는 트렌드, 식문화 등. 시대가 바뀌었고, 바뀐 세상에 맞게 식사의 풍경도 바뀐 것뿐이었다. 40년 전엔 10대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집뿐이었다. 학교에선 엄마가 도시락과 간식을 싸주지 않으면 먹을 게 없었다.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모두 모여야만 하는 시간대였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숟가락을 먼저 잡을 수도 없었다. 그 외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에 싫어도 따라야 했다. 엄마가 밥을 주지 않으면 어디 가서 먹을 수 없는 게 당연했던 시절.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 정도뿐이었지. '음식을 줄 수 있는' 권력은 오롯이 엄마한테 있었다.
며칠 전 아들이 친구들이랑 밥 먹고 오겠다며 나갔다.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맛있는 거 뭐 먹었어?' 물어보니 '어 갈비 구워 먹었어! 저기 00동에 무한갈빗집 있어서 거기 갔다 왔어'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뭐 갈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내가 더 당황했다. 분식집이나 돈가스집 정도 갔겠거니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떡볶이집에 있던 내 10대 모습과 갈비 구워 먹는 아들의 모습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영화장면 같았다.
갈빗집은 아무리 돈이 있어도 17살끼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갈빗집은 부모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이다. 내 관념 속에서는. 더구나 17살 내 친구들과의 외식은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만두가 전부였다. 친구들끼리만 가서 먹을 수 있는 곳은 갈빗집이 아닌 학교 앞 분식집이 전부였다고. 근데 아들은 갈빗집을 갔다니.
지금의 17살에게 엄마란, 음식을 주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GS도 있고, 씨유도 있다. 배민도 있다. 권력이 무너졌다. 음식을 해먹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더 이상 엄마가 아니다. 엄마란 무엇인지, 어떤 엄마로 있어야 할지를 스스로 정의해두지 않으면 아들의 말에 황당한 표정만 짓는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송길영 님도 말했다. 핵개인의 시대라고. 핵개인의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가족의 가치관이라고 했다. 앞으로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소소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대세가 된다며. 그럼 4인 가족이 각자의 취향과 시간에 맞게 집에서 따로 혼밥 하는 건, 핵개인의 시대에 맞는 삶을 연습한다고 보면 너무 비약이 심할까? (물론 연습하느라 그러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합리화에 가깝긴 하다) 17살, 15살 아이들이 핵개인의 시대에 맞게 자신의 취향대로 사는 법을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공부하고 그 판을 만들어주는 쪽으로 고민하는 게 어쩌면 이 시대 부모의 역할은 아닐지.
아이들과 남편이 1년 전 코로나에 걸렸고, 한 달 반 가량 집에서 혼자 밥 먹는 시간이 서로에게 주어졌다. 아마도 아이들은 유튜브를 보면서 먹었을 테지. 콩을 골라내란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고. 가끔 부모의 투닥거리는 대화 때문에 눈치 보면서 먹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경험했을거다. 코로나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혼밥했던 시간이 훨씬 좋았겠구나~ 추측을 해본다. 나도 가끔 혼자 밥 먹을 때 홀가분함을 만끽하듯이. 애들도 그럴 뿐이란 생각이 든다. 혼밥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20~30대에게만 적용되는 건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게 뭐 나쁜 걸까. 콩가루 집안의 기준은 아니겠지 싶다. 가끔 보드게임하며 놀고 치킨 먹으며 얘기도 하니까. 집에서 혼밥 하는 게 뭐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 않을까.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다. 별일 아니라고. 그냥 이렇게 나이만 다른 사람끼리 모여 다정하고 넉넉하게 실없이 웃고, 때론 응원해주며 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일히 다 말하진 못해도 각자의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느라 힘겨웠겠지. 그저 집에서 밥 먹는 시간에라도 편하게 있겠다는데, 방해받지 않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 듣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밥 먹으며 갖겠다는데 뭐 그게 잘못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