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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Dec 03. 2023

알고 계세요? 허리가 일자예요.

알고 보니 제 마음도 일자네요.

운동 코칭을 받던 첫날, PT샘한테 들은 말이다.

"알고 계세요? 허리 일자고 흉추도 일자예요. 목도 그렇네~ 이러면 당연히 허리 아프죠."


알고는 있었지만 척추 곡선까지 신경 쓸 생각은 안 했다. 당장 처리해야 될 업무, 이번 달 안에 해내야 될 OKR, 이번 주에 챙겨야 할 시댁행사, 친정부모님 안부, 안 하면 티 나는 집안일,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역할. 그것들을 하며 하루하루 생을 이어나가는 데 '내 척추 곡선'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물론 계기는 있었다. 5년 전 디스크가 터져서 입원했으니까. 하지만 그때도 당장 통증만 가라앉으면 됐지, 곡선까지는. 아무리 입원할 정도여도 아픈 게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것에 마음 쓰게 된다. 눈앞엔 항상 할 일이 있었고. 엄마로서, 직장인으로, 며느리 아내로서의 할 일은 늘 차고 넘쳤으니까.


그러다 올봄부터 허리가 다시 아팠다. 앉아서 밥도 못 먹고 일하지도 못할 지경이 됐다. 생존에 문제가 생기니까 그제야 부랴부랴 병원 가고 재활 PT도 받고 서서 일할 수 있는 스탠딩 책상도 샀다. 운동도 하고 이제서 약간의 곡선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허리의 곡선이 있어야 척추 사이에 있는 디스크에 힘이 덜 간다. 앉을 때 통증도 덜하고. 당연히 허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 흉추도 마찬가지다. 흉추에 곡선이 없으면 그 부하는 경추와 요추가 대신한다. 경추도 일자고 허리도 온전치 못한 데다 흉추의 그것까지 대신하려니 더 버거웠을 거다. 사람도 1인분의 일을 못하면 주변 사람이 피곤해지듯이. 1자로 돼버린 게 요추 먼저인지 흉추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자 요추'때문에 흉추도 부담이 컸을 거고, 경추도 '일자인 요추와 흉추'때문에 더 힘겨웠을 테지.


일자로 곧게 펴져있는 허리는 앉아서 밥 먹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 PT샘이 내 척추가 일자인  알고 있냐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며 중얼거렸다. '내 마음도 비슷하네'라고.



마음에도 곡선이 필요하다. 곡선이 없는 마음엔 직선만이 그득해진다. 남과 나를 가르는 선. 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기준선. 내 말이 맞으니까 내가 정해준 대로 따라오라는 자기만의 가이드라인. 직선이 많은 마음은 겉으로 보기엔 올바르고 성실하게 자기 주관대로 사는 듯 보인다.


자신은 평생 바르게 살았고, 누가 봐도 손가락질하지 않을 곧은 신념을 가지고 있으니까 매사 맞는 말을 내뱉지만, 그 말을 듣고 '아, 그렇군요! 존경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교장선생님 연설처럼 맞는 말이지만 피곤하고 허튼소리는 아니지만 듣기 싫고, 교과서에 나올법한 말이지만 딴지 걸고 싶어 진다.


사람들은 군더더기 없이 곧게 뻗은 직선 같은 말에 상처받고 마음을 닫는다. 부모가 내뱉는 교훈적인 충고에 자식은 마음의 문을 닫고, 친구의 딱 부러지는 조언을 들으면 거리를 두게 된다. 더 이상 그런 사람 주변엔 사람이 모이지 않을 거다. 너무 맑은 사해엔 물고기가 살지 않듯이. 자기가 가진 신념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으로 남을 대하고 있다는 건, 자기 자신한테도 똑같이 대하고 있다는 건데, 그 또한 매우 피곤할 것 같다. 아니 피곤하다.




마음에 직선이 너무 많아도 문제, 아예 없어도 탈이 난다. 쓰레기와 사용할 물건을 구분해서 정리하듯 상식적인 선은 필요하다. 너무 많아도 자신을 사해처럼 만들어 '함께 잘 사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사는 동안 그 누구와도 함께 잘 살아가려면, 마음에 직선보단 부드러운 곡선을 갖는 편이 낫겠지.


직선인 이쑤시개가 하나만 있을 땐 부러뜨리기 쉽지만 10개만 넘어가도 한 번에 부러뜨리긴 어렵다. 상식적인 선은 지키되, 불필요한 마음의 직선은 매일 하나씩 찾아서 부러뜨리고 구부려서 마음의 곡선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면, 1년 후쯤엔 지금보다 좀 다정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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