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하루만 Apr 05. 2024

메스(mess) 총량의 법칙이 존재할까?

지랄 총량의 법칙도 있다던데, 메스(mess) 총량의 법칙도 존재할까? 있으면 좋겠다. 이런 법칙이 있다면 위안이 될 것 같아서다. 고2 아들의 방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지금 아들의 방은 너무 엉망(mess)이다.

눅진한 수건, 벗어놓은 팬티가 방구석에 모여있다. 책상 위엔 뒤처리를 한 휴지와 학교에서 내준 안내문이 뒤섞여 있다. 침대 위엔 아이패드가 베개처럼 놓여져 있고. 초코칩쿠키를 먹었나보다. 봉지가 얌전히 놓여있다. 어떤 날은, 숨겨놓은 맥주캔을 보게 때도 있다. 


아들이 나간 방문을 열 때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 이런 걸까?' 상상하게 된다. 두렵고 뭐가 나올지 몰라서 문을 열고 싶지 않은 기분. 내가 뭘 잘못 가르쳤나, 엄마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나? 어디서부터 잘못한 거지? 와 같은 자책이 아들 방에서 흘러나와 나에게 철썩 달라붙는 것 같다. 판도라의 상자는, 뚜껑 닫고 안 보면 그만이지만, 아들의 방문은 닫아두고 영원히 안 볼 수는 없다. 


메스(mess)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희망이다. 

차라리 부모와 함께 살고 있을 때, 사춘기란 핑계를 댈 수 있는 지금, 엉망(mess)인 게 나을 테니까. 아들의 미래에 있을 엉망을 지금 다 부리고 있는 거라 생각할 수 있으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엉망(mess)'을 실컷 부리고 있는 거려니~ 생각하면 희망이 느껴진다. 부모인 나만 견뎌주면 되니까. 나 또한 아들 방 정도는 아니어도, 정리 못 할 때가 있었지~하며 돌아볼 수도 있으니까. 엄마도 10대 때의 내 방을 보면서 이런 마음이었겠거니 헤아려 볼 수 있으니까. 그나마 편해질 것 같다.


메스(mess)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위안이다. 

아들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 독립할 때쯤, 혹은 그 이후부터라도 덜 mess할 거란 기대가 생긴다. 필요한 물건이 잘 정리된 방에서, 자기 몸도 마음도 잘 정리하고 시간관리도 밀도있게 하면서 살아갈 일만 남았을 테니까. 자기에게 맞게 잘 정돈된 삶만 남았을 거라 생각하면, 지금의 엉망(mess)을 봐줄만할 것 같다. 위안이 된다. 희망 고문 같은 거겠지만 그래도. 비록 지금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이지만 그나마.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딱딱하고 건조하게 말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