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총량의 법칙도 있다던데, 메스(mess) 총량의 법칙도 존재할까? 있으면 좋겠다. 이런 법칙이 있다면 위안이 될 것 같아서다. 고2 아들의 방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지금 아들의 방은 너무 엉망(mess)이다.
눅진한 수건, 벗어놓은 팬티가 방구석에 모여있다. 책상 위엔 뒤처리를 한 휴지와 학교에서 내준 안내문이 뒤섞여 있다. 침대 위엔 아이패드가 베개처럼 놓여져 있고. 초코칩쿠키를 먹었나보다. 봉지가 얌전히 놓여있다. 어떤 날은, 숨겨놓은 맥주캔을 보게 될 때도 있다.
아들이 나간 방문을 열 때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 이런 걸까?' 상상하게 된다. 두렵고 뭐가 나올지 몰라서 문을 열고 싶지 않은 기분. 내가 뭘 잘못 가르쳤나, 엄마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나? 어디서부터 잘못한 거지? 와 같은 자책이 아들 방에서 흘러나와 나에게 철썩 달라붙는 것 같다. 판도라의 상자는, 뚜껑 닫고 안 보면 그만이지만, 아들의 방문은 닫아두고 영원히 안 볼 수는 없다.
메스(mess)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희망이다.
차라리 부모와 함께 살고 있을 때, 사춘기란 핑계를 댈 수 있는 지금, 엉망(mess)인 게 나을 테니까. 아들의 미래에 있을 엉망을 지금 다 부리고 있는 거라 생각할 수 있으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엉망(mess)'을 실컷 부리고 있는 거려니~ 생각하면 희망이 느껴진다. 부모인 나만 견뎌주면 되니까. 나 또한 아들 방 정도는 아니어도, 정리 못 할 때가 있었지~하며 돌아볼 수도 있으니까. 엄마도 10대 때의 내 방을 보면서 이런 마음이었겠거니 헤아려 볼 수 있으니까. 그나마 편해질 것 같다.
메스(mess)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위안이다.
아들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 독립할 때쯤, 혹은 그 이후부터라도 덜 mess할 거란 기대가 생긴다. 필요한 물건이 잘 정리된 방에서, 자기 몸도 마음도 잘 정리하고 시간관리도 밀도있게 하면서 살아갈 일만 남았을 테니까. 자기에게 맞게 잘 정돈된 삶만 남았을 거라 생각하면, 지금의 엉망(mess)을 봐줄만할 것 같다. 위안이 된다. 희망 고문 같은 거겠지만 그래도. 비록 지금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이지만 그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