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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Dec 17. 2023

보닛이 열렸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운전 중이었다. 출근길이었고. 

신호대기에 걸렸다. 빨간색 신호등을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바뀌는 건 아니다. 다만, 초록불로 바뀐 것도 모르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가 출발을 못하면 누군가의 급한 30초를 내가 빼앗을 것 같아서다. 그래서 신호대기 차량 중 첫 번째가 됐을 땐, 눈 싸움하듯 신호등만 본다. 신호가 바뀌고 출발했다.


한 30m쯤 갔는데 왼쪽에서 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왼쪽 차선에 있는 차가 나랑 속도를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서였다. 느낌은 맞지 않을 때도 많다며 애써 그 직관을 누른 채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별 신경 쓸 일도 아니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냥 앞만 보며 엑셀을 밟았다. 그. 런. 데, 그 생각이 스치는 동안 클랙션 소리를 들었다. 클랙션 소리를 들으면 괜히 '내가 뭐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나한테 내는 소리가 아닐 때도 살짝 신경 쓰인다. 그럴 땐 습관적으로 '운전중 자가점검'을 한다. 주행차선은 지키고 있는지, 속도가 너무 느린 건 아닌지, 차내 경고등이 켜져 있는지. 자가점검해보니 별 이상 없었다. 그래서 그 클랙션 소리는 나를 향한 게 아니라며 외면했다. 나 때문에 누른 클랙션 소리일 리가 없다며 왼쪽 차를 한번 흘깃 보고는 엑셀을 더 밟았다.


아까 그 차는 여전히 나와 속도를 맞추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고 한번 더 울린 그 클랙션 소리는 정확히 나에게 꽂혔다. 그건 딱 나를 향한 소리였다. 살짝 경계하며 '뭐지?'라는 표정으로 그 차 운전하는 사람을 봤다. 어둑한 창문으로 얼굴이 명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 사람이 내 차 앞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은 선명하게 보였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너 잘못했어'가 아닌 '나를 도와주려는 신호'가 명징했다. 손 끝이 든든했고 따뜻했다. 내가 인지한 걸 알아차린 그 차는 무심히 가던 길을 갔고, 나는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세웠다.


멀어져 가는 그 차를 잠시 바라보면서 '아, 고개 숙여 인사라도 드릴 걸' 하는 아쉬움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차 앞쪽으로 갔다. 출근길인데 카서비스를 부를 정도면 늦을텐데 싶어서. 반면 살짝 안심도 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나한테 클랙션을 누르며 따라온 게 아니라는 사실 덕분에.


라디에이터 그릴에 뭐가 끼었나?

아까 그분이 가리킨 앞쪽으로 갔다. 처음엔 바퀴 쪽인 줄 알고 살펴봤지만 아니었다. 뭐 때문에 그랬을까 생각하며 그분의 손높이를 떠올려봤다. 바퀴를 가리키는 건 아닌 듯했다. 바퀴 말고 차 앞쪽으로 가서 보니 보닛이 열려 있었다!! 이런! 흠.. 머릿속에 저장된 사진을 돌려보니 나는 보닛을 연 적이 없었고, 어제 남편이 세차를 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때 제대로 닫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고, 큰 문제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보닛을 닫고 차에 올라타서 비상등을 끄고 출발했다. 엑셀을 밟는 순간 울컥다. 나에게 보닛이 열렸다고 알려준 그분 마음이 고마워서! 너무 고마웠다.


조심스럽게 내 차와 속도를 맞추며 운전했을 정성과 그분의 클랙션을 소리를 두 번이나 무시했는데도 보닛이 열렸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차릴 때까지 끝까지, 알려준 그분의 성의가 정말 감사했다. 이렇게 '작지만 큰 순간'이 느껴지면 눈주위가 빨개진다. 그분은 앞으로도 죽 그렇게 살아가겠지 싶다. 그렇게 주변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며 여유있는 마음으로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나는 한 번도 운전하면서 누군가의 차에 보닛이 열렸는지 본 적이 없다. 내가 얼마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지 저절로 마음이 숙여졌다. 그분 차번호라도 기억해 둘 걸 하는 아쉬움은, 나는 과연 그분처럼 보닛이 열렸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차의 속도를 맞추며 끝까지 알려줄 용기가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그럴 수 있나? 그것도 바쁜 출근시간에? '에이, 뭐 별일 있겠어? 다른 사람이 알려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지나쳤을 가능성이 7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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