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관람 후기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 들어 가장 흥미롭게 본 영화다. 영화는 일련의 사건을 세 가지 관점으로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는 물론 끝나고 나서도 ‘누가 괴물인가’ 혹은 ‘무엇이 괴물인가’하는 생각이 눅진하게 남았다. 처음엔 이 사람인가 싶고, 그다음엔 이 사람인가 싶고, 나중엔 진짜 괴물은 숨겨져 있고 절대 드러나지 않고 존재도 경계도 불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관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달라지고 ‘괴물’이 달라진다. 결국 앞의 관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방적으로 나쁜, 누가 봐도 나쁜 그런 괴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는 아픔이나 결핍으로 인해 괴물이 되고 또 누군가의 생각 없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일상에서 그저 아무런 생각이 없이 내뱉는, 너무 가볍게 내뱉는 순간의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 몰라서 혹은 의도가 없으면 죄가 아닌가에 정답은 없지만 각자의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가장 일차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 중 하나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혹은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혹은 누군가의 피가 마를 때까지 관찰자로서의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때에 따라선 성급하게 여겨지더라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손을 붙잡아 주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그러니까 어떤 때 기다림이 필요하고, 어떤 때 빠른 판단과 행동이 필요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모호한 단어이지만 가장 정확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적당한‘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차리려 노력할 뿐이다. 어떤 때는 알아차릴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잘못 알아차려 크게 실수할 때도 있으리라. 그렇더라도 우리는 실천하고 수정하고 보완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나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고, 무엇보다 비뚤어지지 않은 건강한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일뿐이다.
상대방이 나를 아프게 했다고 해서 나도 상대방을 아프게 해선 안 되며, 내가 아프다고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모른 채 혹은 자신이 아프다고 해서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한다. 내 삶의 부정적인 원인을 자신이 아닌 환경이나 특정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주변에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일 경우 그 사람이 아파서 그렇다고 넘기지만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거나 피할 수 없는 사람은 맞고 푸는 수밖에 없다. 아픈 사람에겐 진정 필요한 건 관심과 사랑이나 우리에겐 진정 사랑하는 이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생각의 꼬리가 길어져도 너무 길어졌다. 영화를 보고 나선 그저 흥미롭다고만 생각했는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안에 숨겨진 깊은 맛이 나는 영화다. 역시는 역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카모토 유지, 류이치 사카모토 세계적인 거장들의 협업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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