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기분이 팍팍 나는 주말이다. 어제 고등학교 동창 아부지가 돌아가셨다. 72세. 우리 엄마랑 동갑이다. 최근에 떠난 김수미 배우는 76세. 우리 아빠랑 동갑이다. 예전에 남일만 같던 일들이 이제 피부로 와닿는다. 무섭고 두렵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랑 사는 얘기 나누다 나는 이런 얘길 했다. 10년쯤 되면 척하면 척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될 줄 알았는데 막상 10년을 넘어 11년이 되고 12년이 되어가는 데도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라고. 예전에 어렸을 땐 어른 되면 사는 게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사는 것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일도 살아가는 일처럼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구나 싶다. 물론 노력한 시간만큼 예전보다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지만 이게 막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아무리 해도 끝이 안 나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참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이 바뀌는 것도 맞지만, 생활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는 것도 맞다.
어쨌거나 어제 소식 듣자마자 가고 싶었는데 공주에서 보다 보니 시간도 늦고, 엄마빠랑 스케줄도 있고, 오늘 결혼식이 있어 오늘 결혼식장 갔다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친구 마음이 얼마나 황망할까, 뭐라 위로의 말을 해주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과 심난한 마음으로 향했는데.
다른 친구들이랑 오래 앉아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니 많이 웃었다. 막 깔깔대며 웃은 건 아니지만 이가 보일 정도로 크게. 물론 장례식장에서 잘 먹고, 잘 놀다 가야 한다지만. 심정적으로 어떻게 그럴까 했는데. 그러고 있는 나를 마주하니, 다른 친구들의 웃음이 크게 불편하지 않고, 입관을 마친 친구도 이야기를 하다 웃고 마주하니 찐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친척 동생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결혼 이야기에 상처받지도 기분 상하지도 않고 잔소리 값 내시라며 손을 벌렸다. 웬만한 이야기나 일들은 크게 대수롭지 않다. 이게 어른이 된 건가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평소 만나지 않던 사람들이 만나 이런저런 얘기하고 보니 격세지감이랄까. 뭔가 내가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했다.
한편으론 오랜만에 고딩 친구들 만나니 그때의 내가 나왔는데 그 상황이 뭔가 신기하고 반가웠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구나. 사람과의 만남은 시간을 재생하는 힘이 있구나 참 대단한 거구나. 그러니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