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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Feb 19. 2022

건강하다


건강하다 -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하다.


언제부터인가 “건강해 보여요”라는 말이 예뻐요라는 말보다 더 듣기가 좋았다. (예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외모가 뛰어나지 않지만) 요가를 꾸준히 하며 몸도 마음고 부쩍 건강해지는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뿌듯듯했다. 더 건강하고, 또 더 건강해 보이기 위해 꽤 노력을 했다.


요가가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때쯤 발리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발리 여행을 통해 건강에 대한 믿음이 한층 더 강해졌고 내 삶에 가장 큰 가치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단단해졌다.


그런데 작년 그 믿음과 자부심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작년 여름쯤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냉방병인가 싶어 감기약을 먹었다가 그래도 재채기가 지속되어 동네 작은 내과를 찾았더니 알레르기인 것 같다해서 알레르기약을 처방받았다.


알레르기약을 먹고도 쉽사리 재채기가 그치지 않아 회사와 가까운 B대학병원 호흡기 내과에 갔다. 흉부 엑스레이와 CT촬영을 했는데, 폐에 하얗게 염증 같은 것들이 보였고 의사 선생님은 결핵이 의심된다며 조직검사와 기관지 내시경을 하자 하셨다. 그때부터 몇 개월간 악몽이 시작되었다.


입원 전 제주도로 며칠간 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 중 잘 먹고 잘 쉬어서인지 재채기는 멈추었다. 폐조직검사는 기흉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입원 검사를 요했고, 코로나로 방문객도 제한되어 혼자서 이박삼일 간 입원검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검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처음 해보는 조직검사와 마약성 진통제에 알레르기 반응이 심해 호흡곤란이 오고 검사날 밤 공황이 심해 산소호흡기를 달기도 했다. 처음 겪어보는 공포의 이박삼일 입원검사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다행히도 조직검사는 일반 염증으로 나와 3개월 뒤 재검을 해보자며 일단락되는듯했다.


그 후 회사에서 하는 건강검진에서는 폐렴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고, 3개월 뒤 겨울이 되어 진행한 재검 CT에서는 염증이 커진 것 같다며 여전히 결핵이 의심된다고 하셨다. 답답할 노릇이었다. 조직검사도 했고, CT도 여러 차례 찍었고, 결핵검사도 했는데 계속해서 원인이 불분명하다고 하니 말이다. 결국 다른 병원에 가서 2차 소견을 받아보기로 했다.


호흡기 및 폐관련 가장 권위가 있으신 서울대학교 병원 교수님을 찾아가 재검을 진행했다. 결과를 받기로 하기 며칠 전부터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고, 다른 일에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만약에, 만약에'라며 최악의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라며 하루에도 몇 번을 마음속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검사 결과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일종의 기형이었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하셨다. 다만 주기적으로 흉부엑스레이촬영을 통해 경과를 보자 하셨다. 장장 8개월간 알 수 없는 원인에 대해 속 시원하게 얘기를 듣고 나니 묵은 체증이 다 가라앉는 듯 마음이 가뿐해졌다.


교수님이 써주신 내 폐 진단


결과를 받아 들고 지난날들을 다시 복기하며 진정한 건강한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내가 건강하다는 말은 사실 아주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내가 건강하다는 것은 신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일,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 등 많은 것들을 아우른다.


최근 흥미롭게 읽었던 칼럼비아 의대 켈리 하딩 교수의 인터뷰에서 건강은 “신체, 정신, 사회적 안녕의 통합적 상태”라고 표현을 했었다. 결국 건강하다는 이야기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잘 밸런스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재채기를 시작해 병원에 가게 된 작년 여름쯤에도 여전히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했지만 일과 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아 삶의 밸런스가 무너졌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과도한 호르몬 작용으로 신체에 마모가 일어나고 염증이 촉진돼서 늙어 보이고 생활 습관이 나빠지게 되니,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이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신체적인 운동과 식습관만큼이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안전한 환경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것이 건강한 삶을 꾸리는데 가장 큰 열쇠일 것이다.


하딩 교수는 추가로 매일 포옹하면 감기 걸릴 위험 32% 낮아지고, 매일매일 15분만 글을 써도 주관적 고통이 줄어들고 면역기능의 혈청 지표가 개선이 된다고 했다. 사람의 건강에는 타인과의 신뢰와 애정, 스스로 인생에서 느끼는 의미마저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다정함이 건강을 구한다.


건강은 이처럼 수많은 요인의 날실과 씨실로 촘촘하게 엮은 그물과 같은 것이고, 그중 어떤 하나의 요인의 실오라기가 풀리면 우리의 건강에 구멍이 나고 밸런스가 급격히 무너지게 된다. 매 순간이 쉬울순 없지만 항상 균형점을 찾고 실이 풀리지 않는 탄탄한 건강의 그물로 살아 넘치는 삶을 낚으며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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