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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Jan 29. 2023

Crying in H mart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라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어느 딸, 그리고 어느 아티스트의 이야기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꽤 유명한 재즈뮤지션이기도하다.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가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혼혈인으로서 정체성, 엄마의 사랑과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그것을 음식이라는 매개로 스토리를 풀어간다.


나에게도 엄청난 엄마가 있다. 엄마가 그렇게 대단한지 몰랐는데, 내가 아이를 가질 나이쯤이 되고보니 엄마는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여느 한국 가족 처럼 우리 집도 먹는 것이 너무 중요한 가족이었다. 작가의 엄마처럼, ‘먹는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신념으로 제철에 난 가장 신선한 것들로 밥상을 채웠다. 어렸을 때는 그런 음식들이 그렇게 귀한지 몰랐었지만, 지금은 계절이 바뀌면 몸이 먼저 엄마가 매번 해주던 음식들을 찾는다. 봄이 되면 꼭 먹어야 했던 미나리, 돌나물 비빔밥, 냉이와 달래를 넣은 된장찌개. 지겹도록 밥상에 올라오던 각종 봄나물들. 그리고 초여름이 되면 꼭 먹던 호박잎쌈, 가을 내내 꼭 먹어야만 했던 추어탕 등등.


나는 사랑이 너무나도 많은 엄마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사춘기를 보냈고, 16살쯤 엄마 품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집을 떠나 먼 곳에 고등학교 진학을 한 이후 부터 엄마와 떨어져 살기 시작했다. 나중에가서 들은 얘기지만, 고등학교 입학실 날 학교에 나를 내려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를 세워두고 몇시간을 울었다고 했다. 품을 떠난 딸이 다시는 본인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후로 엄마는 음식 택배 상자를 서울로, 런던으로, 베를린으로 내가 있는 곳 어디든 매달 몇번씩을 보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H마트에만 운다'는 작가를 따라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생각이나서 명치끝이, 눈시울이 뜨거웠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음식을 꼭 헤먹이려는 엄마,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엄마가 내게 줄 수 있는 사랑의 형태를 그대로 음식으로 내어주던 엄마.


서른중반이 되어도 여전히 나는 엄마가 보내주는 음식택배, 친구들이 맘스컬리라고 부르는 그 음식들을 먹으며 살고있다. 글을쓰고 있는 지금도 엄마에게 전화가와서 마른 미역이 다 떨어지진 않았는지, 참기름은 다 떨어지지 않았는지 묻고있다. 나는 아직 자식이 없지만, 단언컨대 우리 엄마같은 엄마는 절대로 될 수 없을것 같다. 행여 딸이 새로신은 가죽부츠 때문에 발이 아플까봐, 미리 가죽부츠를 신고 길을 들인 작가의 엄마같은 엄마 말이다.


‘H마트에서 울다’에서 공감이 갔던 부분은 비단 엄마와 음식 이야기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미국인과 결혼 했기에,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가 겪게 될 정체성이슈에 관심이 많고 항상 생각하는 부분인데, 혼혈로 미국사회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공교롭게도 작가가 20대를 보낸 필라델피아는 남편이 자란 도시이기도 해서, 더 많은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남편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선물을 했다.


미국에서도 오랜시간 베스트셀러였는데, 미국인들은 과연 어떤 부분을 공감하며 읽을까 궁금했었는데 남편은 작가가 아티스트로 성장해가며 겪는 사춘기시절에 대해 크게 공감을 하는 것 같았다.


읽은 지 한달여가 지났는데도 이 책을 떠올리고 엄마가 보내준 음식을 먹으면 울컥하곤한다. 오늘은 잣죽을 끓여먹어야 할것 같다.



그 앞에서 나는 엄마의 계란장조림과 동치미 맛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다가, 엄마와 둘이서 식탁에 앉아 얇은 만두피에 다진 돼지고기와 부추 소를 넣고 만두를 빚으며 보낸 그 모든 시간을 떠올리면서 만두피 한 덩이를 집어 든다. 그러다가 건조식품 코너에서 훌쩍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p10
솔직히 말하면 나는 부아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생판 알지도 못하는 이 한국 노인에게 짜증이 난다. 이 여인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단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마치 생면부지의 이 여인이 살아남은 것이 내가 엄마를 잃은 것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 엄마 나이에도 자기 엄마를 곁에 둘 수 있다는 사실에 골이 난다. -p14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p.9~10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 내 입맛에 꼭 맞춰 점심 도시락을 싸주거나 밥상을 차려줄 때만큼은 엄마가 나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p.11
나는 지난 5년 사이 이모와 엄마를 모두 암으로 잃었다. 그러니 내가 H마트에 가는 것은 갑오징어나 세 단에 1달러짜리 파를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두 분에 대한 추억을 찾으려고 가는 것이기도 하다. 두 분이 돌아가셨어도, 내 정체성의 절반인 한국인이 죽어버린 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려는 것이다. -p.22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손바닥을 쫙 펴서 거기에 상추 한 장을 올려놓고 내 식대로 음식을 착착 쌓았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비 한 조각, 따끈한 밥 한 숟가락, 쌈장 약간, 얇게 저민 생마늘 한 조각을 차례차례로. 그런 다음 그걸 얌전하게 오므려 입에 쏙 집어넣고는 눈을 감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몇 달 동안 집밥에 굶주린 내 혀와 위는 그제야 깊은 만족감을 되찾았다. 밥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재회였다.-p.123
한때 어떻게든 미국 교외의 또래 사이에 섞이려 안간힘을 쓰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내 소속을 증명해야 할 무언가로 느끼면서 성인이 되었다. 내가 어느 편에 설지, 누구에게 동조할지 결정하는 일은 번번이 남의 손에 맡겨졌지 내 스스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다. 노상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p185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 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p.203
눈부시게 화창한 날, 쌀쌀한 가을 공기는 아직 저만치 떨어져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누군가 죽은 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을 향해 달려든 햇살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꼭 약을 한 기분이었다. 방금 일어난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혹시 내 얼굴에 다 쓰여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을 땐 어쩐지 그 역시 잘못된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다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미소를 짓고 웃고 먹는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인 것 같았다. -p266
이것이 내가 원한 전부였다. 몇 날 며칠을 화려하고 값비싼 고기 요리와 갑각류 요리 그리고 버터와 치즈와 크림 배합을 달리한 갖가지 감자 요리를 만든 끝에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진짜로 원한 요리는 바로 이것이란 걸. 이 담백한 죽은 난생처음으로 내게 깊은 만족감을 준 요리였다. (…) 나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는, 보드라운 죽이 엄마의 갈라진 혀를 살포시 감싸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리고 따뜻한 액체가 천천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뒷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p.319~320
무대에 올랐을 때 나는 잠깐 서서 홀을 둘러보았다. 내 야심이 정점에 달했을 때조차 엄마의 모국, 내가 태어난 도시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엄마가 이런 내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란 여자, 내가 쌓은 커리어, 내가 절대로 이루지 못할 거라고 엄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걱정한 일을 이렇게 떡하니 이루어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을까. 우리가 맛본 성공이 엄마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고, 내가 부르는 노래가 죄다 엄마를 추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완전히 모순이긴 해도 엄마가 공연장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간절했다. -p.386~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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