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01장 신의 침묵을 받아들이는 침묵
우스 땅,
한적하고 평화로운 광야의 변두리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욥.
이스라엘인도 아니고, 히브리인도 아닌 인물.
경계에 선 이방의 의인이자, 어느 민족에도 속하지 않은 보편 인간.
바로 여기서 욥기의 서사는 시작된다.
신학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욥은 흠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다.
이 네 가지 표현은 고대 히브리 지혜문학에서 의인의 전형적 성격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들이다. 하지만 욥은 단지 전형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삶’으로 이 전형을 구현해낸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는 자녀를 사랑했고, 그들의 영혼까지 염려했다. 혹시라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잔칫날이 지나고 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녀를 위한 번제를 드렸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거래가 아니었다. 복을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내면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염려하는 깊은 경외의 몸짓이었다.
그는 ‘잘 믿었고’, ‘잘 살았고’, ‘잘 되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고통이 시작된다.
하늘의 장면이 열린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여 여호와 앞에 서고, 그 가운데에 사탄도 함께 있었다.
여기서의 ‘사탄’은 우리가 흔히 아는 ‘악마’가 아니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하-사탄”(הַשָּׂטָן), 즉 ‘고발자’, ‘검사’, ‘신의 법정에서 인간을 시험하는 존재’다.
그는 하나님께 욥을 향해 묻는다.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이 질문은 욥기를 관통하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며, 신앙의 본질에 대한 치명적인 해체 시도다. 그것은 단지 욥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신앙인 모두의 심장을 향한 비수 같은 질문이다.
“나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나의 믿음은 진심인가, 아니면 계산인가?”
“나는 형통하기 때문에 믿는 척하는 건 아닌가?”
“나는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시험을 허락하신다.
욥의 신앙이 조건 없는 것임을, 하나님 스스로 신뢰하셨기에.
그러나 이 순간, 하늘과 땅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하늘의 믿음과 땅의 고통이 충돌하면서, 고난이 현실이 된다.
재앙은 한순간에 닥친다.
소 떼와 나귀, 종들이 죽고, 불이 내려 양 떼가 타 죽고, 갈대아 사람들이 약탈하고, 마지막에는 자녀들이 먹고 마시던 집이 무너진다. 네 번의 재앙은 소유에서 존재의 중심인 자녀로 이어지는 파국의 점층적 구조를 이룬다.
놀라운 것은 욥의 반응이다.
그는 옷을 찢고, 머리를 밀고, 땅에 엎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제가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왔다가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셨다가 여호와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받으시기를”(1:21)
그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는 허튼소리도 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성급하고 경솔하게 해석함으로 하나님을 욕되지 않게 했다.
이 말은 단순히 ‘말조심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함부로 해석하거나,
자신의 고통을 이유로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욥은 아직 질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비겁한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침묵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영혼의 떨림이었다.
신학자들은 이 침묵을
믿음의 정점,
절망의 전주곡,
폭풍 전의 고요,
신이 침묵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침묵,
무너진 존재의 경계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자의 고백이라고 했다.
욥기의 1장은 아무 대답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질문을 안긴다.
“너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너의 믿음은 까닭 없이 가능한가?”
“너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가?”
“너는 형통하기 때문에 믿는 척하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그래서 욥기는 대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하려는 책이다.
칠레 시인 파브로 레누나(Pablo Neruda,1904-1973)의 <침묵 속에서>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른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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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열둘을 세리니 그대는 침묵하라.
그러면 나는 떠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