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없는 경외를 위하여
고통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않지만,
누구도 비켜 가지 않는다.
고난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오고, 해석보다 오래 머문다.
그리하여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입에 물고, 오래도록 삶을 견딘다.
그러나 욥기는 말한다.
해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이 글은 욥기를 1장부터 42장까지, 한 장 한 장 묵상하며 이어가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성경 속 한 인물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욥의 고난은 오늘 우리의 고난과 맞닿아 있고,
욥의 침묵과 항변, 절규와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를 되묻게 한다.
욥기는 대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나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그 믿음은 진심인가, 아니면 계산인가?"
"나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신앙의 핵심을 찌른다.
그리고 고통은 그 질문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욥은 그 질문 앞에서 울고, 침묵하고, 결국 말하기 시작한다.
그가 하나님께 던지는 물음은
무례하고, 날이 서 있고, 때로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물음은 결코 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영혼의 끈질긴 몸부림이다.
엘리 위젤은
"욥의 기도는 정중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영혼의 고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글은 특정 종교의 신학을 위한 글이 아니라,
무너진 삶의 자리에서 삶을 기어이 살아고자하는 이들을 위한 글이다.
리처드 로어는 말한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 우리 삶에 반드시 찾아와야 한다.”
욥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그 자리에 선다.
이 연재는 위로를 가장한 설명을 거절하고, 해석을 가장한 폭력을 거부한다.
대신,
고통의 자리에 말없이 앉아 주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말보다 침묵이 더 큰 기도임을 믿고,
말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이 신앙의 행위임을 믿는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침묵하던 욥이 입을 연다.
그의 말은 탄식이고, 기도이며, 증언이다.
이 42개의 장을 따라가는 여정은 바로 그 탄식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각자의 삶의 무게 속에서 마주하게 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기도도
탄식이 되고,
항변이 되고,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는 고백이 되기를 바라는 여정이다.
“나는 지금 이해할 수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한 마디가, 신앙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