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회 의장단 업무추진비 취재 기록과 구체적인 회고를 남기다
업무추진비 내역을 보다가 화가 났다. 작년 여름이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입사 전, 국가 지원금을 받아서 워크샵을 준비하다가 '3구 멀티탭'이 필요했다. 편의점에서 지원금으로 결제하려다 결국 내 카드로 계산했다. 어떤 예산 항목으로 사야 하는지 애매하기도 했고 이거 하나 산다고 몇 장의 지출품의서를 만들자니 무슨 짓인가 싶었다. 지원금을 잘못 쓰면 나중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 이처럼 프로젝트에 필요하지만 깐깐한 행정 절차로 구매를 미루거나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금이 들어간 예산을 쓴다는 건 일반인에겐 100원 조차 엄격했다.
그런데 기초의회 의원에게 그 잣대는 너무도 달랐다. 술집, 면세점, 유명 주얼리샵, 골프웨어 등 업무와 관련 없는 곳에서 세금은 아무도 모르게 쓰이고 있음에도 감시하는 이가 없다.
업무추진비는 사각지대...
카드깡과 같이 잘못된 업무추진비 사용 사례는 종종 보도됐다. 특히 지역 언론에서 해당 시군구의회의 잘못된 관행을 많이 꼬집었지만 특정 지역만의 뉴스라서 전국적인 이슈가 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의원들의 잘못된 관행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방자치가 시행됨에 따라 구체적인 사용 내역 감시는 중앙정부의 통제 밖에 있었다. 그들의 공개된 사생활이 궁금했고 전국 226개 기초의회에 '기초의회 의장단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모든 의회에서 받은 데이터를 최종적으로 정리하니깐 37만2441건이었다. (3년 6개월 치)
중앙일보 디지털콘텐트랩 우리 동네 의회 살림 업무추진비 분석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글은 지난 두 달간 분석과정의 기록이자 회고다. 부족했던 점과 앞으로 유의해야 될 것들을 정리했다. 자세한 설명을 붙인다고 길어져서 두 편으로 나눴습니다. 첫 편은 데이터 수집 과정을 뒤돌아봤다.
제각기 다른 형태로 받은 정보공개청구 데이터
정보공개청구에서 가공에 대한 해석
공개한 파일 형식의 문제 (PDF, HWP, JPEG)
불성실하게 공개한 사례
제각기 다른 데이터 입력 방식
데이터 수집에 관한 내용이다. 226개 기초의회에 정보공개 청구하는 건 쉽다. 다만, 226개 의회에 청구서를 한 번에 보내기 때문에 청구 내용이 명확하지 못하거나 혼동을 줘선 안 된다. 그래서 사전에 몇몇 의회 관계자에게 확인사항들을 유선으로 체크한 후, 구체적인 청구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구체적인 분석을 위해 집행일자(시간 포함), 인원, 금액, 집행내역(목적), 사용장소, 사용자, 결제방법은 필히 공개를 요구했다.
226개 의회에서 청구서를 접수하면 10일 이내에 공개 여부를 알려줘야 한다. 몇몇 의회에서는 시간이 없다며 연장 신청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비공개 없이 20일 이내에 공개했다. 그런데 결정통지문을 열고 첨부파일을 다운로드하다가 아차 싶었다. 각 의회에서 관리하는 파일의 형식은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엑셀로 공개한 건 좋은데 공개 형식이 문제다. 아래 이미지처럼 한 의회는 2014, 2015, 2016, 2017년도 4개의 파일을 공개했고 의장, 부의장, 의회운영위원장, 총무위원장, 산업건설위원장 등 5명의 의장단 사용 내역을 시트별로 구분했다. 구체적인 건 좋지만 이런 경우 하나의 시트로 합쳐줘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복수의 기관에 동일한 내용을 청구할 땐 이런 부분까지 명시하면 정제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부분은 예전에 다른 청구건 때문에 담당 공무원과 통화한 적이 있었는데 청구자가 원하는 형식으로 맞춰주는 게 가공(취합 및 추출)일까 궁금했다. 여기서 가공은 기관에서 가지고 있는 데이터들 중에 내가 원하는 칼럼만 추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이게 가공이면 공무원은 그걸 해줄 의무가 없다.
하지만 전자적 형태의 데이터를 간단한 프로그램(엑셀 등)으로 편집하는 건 가공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번 경우에는 내가 청구한 대로 주는 게 맞다. 하지만 취합을 비롯한 가공에 대한 해석은 여러 기관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어서 다소 아쉽다. 가공에 대한 부분을 별도로 언급한 건 정보공개 청구를 자주 하는 곳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자주 고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에도 이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꽤 많은 전화통화를 했다. 아래는 관련 부분에 대한 대법원 판례이다.
정보공개제도는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그 상태대로 공개하는 제도이지만 전자적 형태로 보유·관리되는 정보의 경우에는 그 정보가 청구인이 구하는 대로는 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공개 청구를 받은 공공기관이 공개 청구대상정보의 기초자료를 전자적 형태로 보유·관리하고 있고, 당해 기관에서 통상 사용되는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와 기술적 전문 지식을 사용하여 그 기초자료를 검색하여 청구인이 구하는 대로 편집할 수 있으며, 그러한 작업이 당해 기관의 컴퓨터 시스템 운용에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 아니한다면, 그 공공기관이 공개청구대상 정보를 보유·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 기초자료를 검색·편집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의 생산 또는 가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음(대법원 2010. 2. 11. 2009두6001)
첫 번째 이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나름 꼼꼼하게 청구서를 만들지만 그건 하나의 기관에 청구할 때 유효하다. 다수의 기관에 보낼 때 조심해야 하는 게 있다. 사건의 발단은 1개의 청구서가 226개 의회에 접수됐지만 그들이 내놓은 업무추진비 내역은 제각각이었다.
먼저 공개한 파일 형식이 문제였다. 청구서에 분명히 엑셀(EXCEL) 혹은 CSV로 공개해달라고 공손하게 말했건만 이미지가 올려진 PDF, HWP, JPEG등 엉뚱한 형식으로 공개한 기초의회가 많았다. 이러한 형식은 데이터가 구조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석 측면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우리 의회는 공개했어요!'라고 생색내는 형태일 뿐이다. 다시 전화해서 "전 분명히 엑셀이나 CSV로 말씀드렸는데요"라고 하면 미안하다며 다시 정보공개 청구하라고 한다. 청구서 분명히 공개 형식이 명시되어 있는데 그쪽에서 잘못 준 거 아니냐고 하면 어쩔 수 없으니 다시 절차를 밟으란 황당한 답변을 하거나 원본을 찾는데 시간이 걸릴 거 같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다시 10-20일 정도가 낭비된다.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청구내용은 무시되고 제각기 보유하고 있는 양식으로 제출할 뿐이다. 결국 끝까지 주지 않다가 <우리 동네 의회 살림>을 보고 격분한 시민이 의회 사무실로 항의하는 바람에 다시 전화 와서 우리 꺼 반영해달라고 사정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는 결정통지문에 홈페이지에서 참고하라며 파일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다. (이런 경우가 꽤 많았다) 아래 왼쪽 이미지가 결정통지문 공개 내용이다. 파일은 첨부하지 않고 시의회 홈페이지에서 직접 찾아서 다운로드하세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접수하고 10일 뒤에 겨우 받은 답변이다. 이 답변이 왜 10일이 걸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어쨌든 해당 의회 홈페이지 가서 다운로드해보면 아래 오른쪽 이미지와 같다. 청구내용과 달리 사용시간, 사용장소, 사용자 등이 빠졌다. 다시 통화를 하면 시간이나 장소는 원래 관리를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걸 왜 우리가 공개해야 하냐고 화내는 분도 계셨고 뭐하는 사람인데 이런 거 궁금하냐고 되묻는 담당자도 계셨다. 아무튼 카드 회사에 내역을 청구해서 받으면 되지 않냐고 다시 설명해주면 그 뒤론 함흥차사다. 다시 청구하기엔 언론사는 시간이 없다. 청구는 쉬웠지만 그 뒤에 변수는 너무 많았고 이게 끝도 아니다.
마지막은 데이터 입력 형식이다. 전국 기초의회를 분석하기 위해 9개의 변수를 가진 동일한 포맷을 만들어서 코드로 합치려 했었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대로 9개의 변수를 모두 청구했지만 날짜, 숫자 포맷은 상이했다. 이보단 시간과 장소는 공개 안 하는 곳이 70%였기 때문에 더 골치 아팠고 칼럼 명도 제멋대로 공개했다. 예를 들어보자 2014-07-01, 2014년 7월 1일, 14년 7월 1일, 14년-7월-1일, 2014.7.1, 20140701 등 사람은 이게 똑같은 날짜인 줄 안다. 하지만 기계는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형식을 올바르게 맞춰줘야 한다. 결국 예외처리가 너무 많아서 각 시의회 파일을 하나씩 정제해줄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할애했다. 연도별 파일을 합친다 -> 시트도 합친다 -> 데이터 형식을 정제해준다 -> 중간중간 소계와 합계 부분을 제거한다 등등 골치 아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제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가까운 미래에는 꼭 데이터 공개율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데이터 입력 형식에 대한 스타일북도 국가에서 정하고 맞추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통계만 받고 있었다. 개별 데이터에 대한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형식을 통일한 뒤 API로 분기마다 공개해주면 좋겠지만 (이건 그저 저의 희망일 뿐) 각 의회 홈페이지에라도 전국 공통 양식으로 공개한다면 훨씬 감시의 벽은 낮아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익한 경험이었고 많이 배웠다. 기초의회 업무추진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점에선 긍정적이었다. 한계도 있었다. 수집 단계에서 놓쳤던 미숙한 부분으로 인해 분석에 활용할 변수를 모든 의회에서 획득하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끝까지 청구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던 의회는 이의신청까지 가서라도 데이터를 받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특정 식당에서 많이 쓴 경우 인원과 방문 횟수까지 변수로 넣어 계산하고 싶었지만 듬성듬성 받은 인원수는 끝내 넣지 못했다. 업무추진비의 시간과 사용처는 행정안전부에서 말하는 사전공표대상이기 때문에 의회에서 안 줄 이유가 전혀 없다. 완벽하게 준비하려면 미리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어느 정도 안다고 자만했던 정보공개청구서 작성 방법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접수하는 담당자 입장에서 더욱 생각해보게 됐고 더 치밀하게 청구서 탬플릿을 고도화시켰다. 타의회에서 동일한 데이터를 받았다는 사례를 말해도 효과적이었다. 한 가지 팁을 전달한다면 다수의 기관에 청구할 때는 몇 개 기관에 샘플링을 해보는 것이 좋다. 혹은 전화통화를 오래 한다던가. 덕분에 나도 놓치는 부분을 미리 발견할 수 있었고 피드백을 반영해서 전국 단위로 청구할 때 번거롭게 두 번 할 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업무추진비를 넘어 관련 데이터까지 붙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예를 들면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회는 전후반기(2년마다) 교체된다. 의장단 DB(정당, 재선 여부 등)를 가지고 있었다면 전후반기 의장단의 사용 내역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 아쉬움과 이번 경험은 다음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다음 글은 정제와 분석 과정에 대한 회고다.
다음글 : 업무추진비, 지난 두 달간의 기록 ②
아래 관련 기사는 이번 지방선거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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