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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Jul 16. 2024

희귀병이 알려준 '인지적 공감'

공감과 연민에의 구분이 필요하다

2008년,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3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간 유지되면서, 경기도 인근의 많은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도산을 겪고 있었습니다. 2008년 초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950원대에서 연말에는 1,500원대까지 치솟으며 약 58%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100% 해외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금속 원자재의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른 반면, 대기업 중심의 연간 납품 계약을 통한 수익은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무리한 고환율정책 유지의 여파를 확인하는 인터뷰 촬영을 위해 성남, 수원 인근의 텅 빈 공장들을 다니며 상황을 듣던 중, 천안에서 사장님과 외국인 노동자 한 명, 아내 총 3명이 완전 가동 중인 한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매달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왜 공장 운영을 유지하시냐는 질문에, 사장님은 '희귀병에 걸린 중학생 아들'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하셨습니다.

‘로렌조 오일’이라는 할리우드 영화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부신백질이영양증(ALD)은 성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는 희귀 유전병입니다. 주로 10세 이하 남아에게 발생하며, 긴사슬형 지방산이 분해되지 않고 뇌신경을 파괴하여 첫 증상 발현 후 6개월 내 시력과 청력을 잃고 많은 경우 2년 내 식물인간 상태로 사망에 이릅니다. 환자는 이 병의 진행을 늦추는 유일한 대체제로서의 오일을 한 달간 약 12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5병을 복용해야 하며, 해당 업체의 사장님이자 아버지는 두 배로 뛰어오른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공장 운영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질적 경험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관찰자가 인터뷰 대상자나 관찰 대상자가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의 이야기나 상황에 더 잘 공감할수록, 이후 상대의 관점을 더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고, 그 관점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밝힐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반영적이고 일관성 있는지를 설명하고, 그 사람의 다른 문제에 대한 관점을 예측하며, 그들이 이해되었다고 확신시킬 수 있습니다.

단, 이 '다른 사람이 이해하는 것을 이해했다'를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공감이라고 믿어버리는 연민 또는 동정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사례에서 저는 사장님의 댁에 초대받아 가족들의 저녁 식사 장면까지 촬영했고, 식사 후 몸이 자꾸 굳어가는 아들을 눕힌 채 1시간 가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신 마사지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꼈습니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상황 속에서 그들이 이해된다는 감각인 반면, 연민은 상대의 문제에 대한 슬픔의 감정입니다. 그 사장님이 희귀병에 걸린 아들의 생명 연장을 위해 어려운 외부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공장을 무리하게 운영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의 개인적 사연에 너무 몰입한 추가 취재는 본래의 목적, 즉 고환율 정책이 각 산업에 미친 영향에 대한 자료로는 다소 연관성이 적은 사례에의 과한 관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연민은 공감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널리스트, 마케팅 전문가, 상담사 등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해 보다 '인지적'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황에 대한 이해는 하되 현장에서 관련된 개인적인 연민이나 관심을 보이는 데에는 냉정해지거나 스스로의 관심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자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는 그들의 입장에 연대를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그쳐 전반적인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이나 사회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인지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그들이 행동의 배후로 소개하는 동기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들이 보는 것, 말하는 것, 행하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는 바로 이 '인지적 공감'에 대한 우리 자신의 명확한 기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은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공감과 연민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는 개인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대상자의 진정한 관점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며, 궁극적으로 더 정확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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