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경제, 새벽배송의 시초인 종이신문이 필요한 이유 5가지
'리디셀렉트', '퍼블리', '폴인'. 제가 유료로 구독하고 있는 플랫폼입니다. 매월 구독료를 지불하면서 내돈내읽(내 돈 주고 내가 읽는)하고 있죠. 뿐만 아니라 메일함을 열면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들이 한가득 와있습니다.
주말 아침이면 일어나서 먼저 현관문을 엽니다. 먹거리들을 포함한 필요한 물건들이 문 앞에 배송되어 있습니다. 아이 이유식 재료나 주말에 먹을 음식을 사기 위해 굳이 마트나 시장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과 같이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특별히 더욱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시스템이죠.
어느새 구독경제와 새벽배송은 제 삶에서 일상이 되어버렸고, 없어진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외국계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구독경제 시장 규모가 약 6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2016년 469조 원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매우 큰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 시장에 비해 국내 시장의 구독경제 규모는 아직 영세한 편이지만 구독경제를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삼은 스타트업 또한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9년 5월을 기준으로 300여 곳 정도 된다고 하네요. 구독경제 아이템은 제가 즐겨 찾는 플랫폼이나 콘텐츠뿐 아니라 생필품, 디지털 스트리밍에서부터 고급 패션 상품과 자동차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새벽배송 또한 전날 밤에 집에서 엄지손가락을 몇 번 까딱하는 과정만 거치면 집 앞으로 원하는 물건을 배송해주는 서비스입니다. 2019년 9월 기준으로 새벽배송 건수는 하루 1만 건 정도 된다고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아마 그 시장이 더 커졌겠죠? 올해 새벽배송 시장규모는 약 8,000억 원으로 추정한다고 하네요. 작년은 4,000억 원이었는데 2배나 늘었습니다.
구독경제와 새벽배송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생활과 함께하고 있던 서비스입니다. 바로, 매일 아침 문을 열면 와있던 종이 신문이 바로 구독경제와 새벽배송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문과 함께 우유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어느새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을 배달해주던 배달 기사님이 다니던 골목엔 배달 트럭이 훨씬 많이 보이고, 우유 배달 주머니가 달려있던 현관은 택배 박스가 놓여 있게 되었습니다.
신문이 죽어가고 있다
2008년에 <뉴요커>에 실렸던 한 줄의 문장입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신문은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지만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폐지를 모으는 날이면 양손 가득 무거운 신문지를 들고 학교에 가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신문지를 억지로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든 현실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진행한 <2019 언론수용자 조사>에서 '지난 한 주 동안 종이신문을 읽었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12.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종이신문 열독률의 감소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호주에서 종이신문 판매율을 높이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호주에서 화장지 품귀 현상이 발생하자 호주의 한 신문사에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신문지를 화장지로 활용하라고 제안한 거죠. 일간지 1면 상단에 "화장실 화장지가 없으시다고요?"라는 질문과 함께 지면 8장을 화장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빈 공간으로 놔둔 한정판 신문 구매를 유도했다고 합니다.
신문이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화장지의 대체품이 되었다니.. 기사를 보고 참 웃프더군요.
디지털 플랫폼, 영상, SNS 등 종이신문을 대체하는 저비용 고효율의 채널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신문을 버릴 수 없는 이유 몇 가지를 꼽아봅니다.
보통 디지털 매체로 뉴스를 보게 되면 내가 관심 있거나, 사람들이 많이 보거나, 이슈가 되는 일부분의 뉴스만 보게 됩니다. 전체적인 맥락이나 순서 없이 이벤트 형식으로 기사를 접하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종합적이고 입체적이며 복합적인 사고를 하기 어려워지게 됩니다. 반면, 종이신문은 1면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면까지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며 뉴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주요 이슈는 무엇인지, 최근 주요 현안은 무엇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죠. 물론, 필요한 정보만 골라 볼 수도 있습니다.
최근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플랫폼을 보면 네이버,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뉴스를 맞춤형으로 추천해주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죠. 소비자들은 플랫폼 사업자들의 일방적인 뉴스 선택, 배치, 추천에 알게 모르게 지배받고 있습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반면에 종이신문에는 알고리즘도 없고, 댓글도 없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질감, 종이의 느낌, 신문에서 나는 고유의 냄새 등 종이신문으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에서 스크린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텍스트를 '훑어보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는 글을 자신이 이해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이해한 줄로 알고 넘기는 식의 읽기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종이책으로 읽었을 때 전체적인 줄거리 파악을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연구자료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종이신문은 많은 내용을 구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매일 아침 지면에 실을 콘텐츠 회의를 하고, 편집 기자는 기사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구독자가 효과적으로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세밀하게 콘텐츠를 편집합니다. 콘텐츠의 구성뿐 아니라 기사의 헤드라인과 소제목을 통해 핵심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팁도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문지를 구하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신문지를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많습니다. 과일이나 채소를 보관할 때 신선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으며, 습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매우 도움이 됩니다. 습기 제거는 물론 탈취 효과도 볼 수 있고요. 칼날이 무뎌졌을 때 세제를 묻혀 돌돌 말아 적신 신문지에 갈아주면 아주 날카롭게 갈리기도 합니다. 또한 신문지는 더러워진 방충망을 닦을 때에도 매우 도움이 되는데요, 방충망에 세제를 뿌린 후 신문지를 붙이고 그 위에 세제를 한번 더 뿌려주면 신문지가 먼지를 다 흡수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놀잇감으로도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고요.
구독경제와 새벽배송이라는 선진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종이신문은 생존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이대로 없어져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존재입니다.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스> CEO 마크톰슨(Mark Thompson)의 말을 옮겨봅니다.
우리는 건전한 구독 사업을 구축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는데, 그건 바로 독자들과의 관계 구축입니다. 그러려면 독자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야 하죠.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리는 구독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업체입니다. 우리가 구독자에게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에서 우리를 다른 수많은 미디어 조직과 차별화시킵니다. 우리는 클릭률을 극대화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구독자들을 상대로 별로 이윤이 많지 않은 광고를 판매하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페이지 뷰를 놓고 벌이는 각축전에서 이기려고 하지도 않죠. <뉴욕타임스>에 어울리는 건전한 비즈니스 전략은 전 세계 수백 명의 독자가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저널리즘을 제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 티엔추오, 게이브 와이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