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매이 Feb 28. 2023

미움 받을 용기(직장인ver.)

요즘 신경쓰이는 전화가 있다. 며칠 전부터 어떤 분이 내가 담당하는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화를 한다. 그분이 화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일단 나에게 온 전화이기에 그분의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있다. "선생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지침상으로는…" 조직 안에서는 내 마음대로 그분에게 책임질 수 없는 약속을 해선 안된다. 특히, 나같이 새로운 직무를 받아든 지 얼마안 된 쪼무래기 신입이면 더더욱. 쪼무래기인 나는 내가 뱉은 말을 책임질 수 없는 위치다. 그렇기에 지침과 매뉴얼대로만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어렸을 적 본 뉴스에서 공무원들이 인터뷰할 때 규정, 지침에만 초점을 두고 얘기하는 게 이해가 안되었는데, 어느덧 나는 자라서 그들이 되었다.




그분이 불만을 제기하면, 나는 지침으로 응수했다. 일단 냅다 휘두르고 보는 창과 상처날까 두려워 계속 얼굴 앞에 들고 있는 방패의 싸움이었다. (대충 알맹이 없는 대화라는 얘기.) 다행인건지, 애초에 그분이 공격하고 싶은 대상이 내가 아니어서 타격감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의 전화가 계속되고, 말이 자꾸 돌고 돌자 그분은 내가 쪼무래기인 걸 눈치챘는지 그렇게 응대하면 안된다며 날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분은 내가 본인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수요 없는 가르침을 받으며 그렇게 몇 분이 지났다. 나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회사 동기들과 점심을 먹는데, 자꾸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으으.." 나도 모르게 현실 분노가 터져나왔다. 그러다가 뜨거운 것이 조금 가라앉으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비빔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러곤 멋쩍은 듯이 웃었다. 언제쯤 멘탈이 강해질까?라는 나의 질문에, 동기가 어쩌면 지금도 많이 무뎌진 걸 수도 있어, 라고 대답했다. 나는 맞아 맞아, 하며 차돌박이된장찌개에 있는 두부를 입에 넣었다. 옛날 같았으면 이렇게 밥도 잘 먹지 못했을 거야. 




그런데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는 어떤 점에서 화가 났을까. 죄 없는 나에게 쓴소리를 퍼부었던 그분? 아니면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는 조직 안에서의 나의 위치? 아니면 민원을 논리정연하게 응수하지 못한 채 쪼무래기인 걸 들켜버린 내 모습? 생각해보니 셋 다 인 것 같다. 오늘 나의 모습은 의연했지만 비겁했고, 충분히 이해되지만 내가 바라던 어른의 모습은 아니었다.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하다고 하는 미움받을 용기는 타인에게 미움받을 용기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게 미움받을 용기도 포함되나보다. 마음 한쪽이 종이에 베인 것 같다. 모르고 살땐 괜찮았는데, 괜히 들여다 볼수록 더 쓰라린 이 느낌. 이 날선 감정도 언젠가는 무뎌지겠지. 

작가의 이전글 일상의 밸런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