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희망뉴스] 모든 일에는,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는 시행착오가 있다.
어릴 때 나는 ‘프로 중단러’였다. 대학 새내기가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학방송국에 들어간 것이었다. 꽤 많은 인원이 방송국 수습사원으로 뽑혀 교육을 받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아침 8시까지 방송국 출근 아니 등교하는 게 수습교육 중 하나였다. 그게 큰 난관이었다. 집부터 학교까지는 지하철역으로만 29개역을 지나야 할 만큼 같은 수도권이라도 꽤 먼 거리였다. 고3 수험생이 끝났으니 새벽 기상 같은 건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수험생처럼 새벽 일찍 일어났다. 수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 방송국에 출석 도장을 찍기 위해서.
방송국의 교육방식에 토를 달거나 불만을 표하는 동기는 없었다.(누가 그럴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싶기도?) 다만 모두가 제때 도착하진 못했다. 집이 멀어서, 지하철이 연착해서, 늦게 일어나서 등등의 이유로 8시에 오지 못한 동기들이 늘 있었다. 그러면 호랑이 같은 선배들의 구령에 따라 제 시간에 이미 도착한 동기들이 학교 본관 분수대를 뛰었다. 도착하지 못한 동기가 올 때까지. 일종의 연대책임이었다. 방송은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다는 것, 시간엄수가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방법이었을 테지만 나는 내가 꿈꿔온 스무 살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잔뜩 실망하며 힘겹게 한 학기를 보냈다. 방송국 생활도, 방송국을 그만두는 동기들이 계속 느는 것도 힘겨웠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방송국의 기강을 잡기 위한 군대식 조직 문화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런 빡센 문화를 견뎌 3년간의 대학방송국 생활을 마치면 이 생활을 발판(스펙)삼아 내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언론인이 되는 걸까? 방송국을 계속 하는 게 맞나 고민하면서 혼자 자주 묻던 질문이었다. 그래 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다독였지만, 전날의 과음을 이기지 못해(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방송국에서 잠든 고학번 선배들을 볼 때면 내 미래도 그럴 것만 같아 딴 생각이 들었다. 이미 딴 생각을 품고 나니 점점 더 방송국 생활이 하기 싫어졌다. 그만두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하다 만 방송국생활 하나로만 대학생활을 끝내는 게 싫어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영화동아리에 들어갔다가 왠지 모를 어두운 포스와 분위기에 기가 빨려(지금 생각하면 영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재빨리 손절하고, 찾아본 곳은 토론스피치 동아리였다. 뒤늦게 대학신문사에 객원기자로도 들어갔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제대로 적을 두지 못하고 빙빙 돌았다. 어느 곳을 가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없는 완벽한 곳이 있을 리 없지만 당시의 나는 어리석게도 그런 곳이 있으리라 믿었다. 학교 안에서는 어떤 곳에도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스펙쌓기하듯 학교 밖 활동을 찾아 헤맸다.
어느 단체나 조직이든 여러 사람이 모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반대로 기대 이상의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부유하는 유부는 “안할 이유가 없으니까 계속 한다”고 했는데(2024년 4월 26일 뉴스레터 참고), 나는 늘 짧은 경험으로, 단편적인 상황들만 살펴보면서 성급하게 판단 내리고 그만 둘 이유를 찾는 데만 매몰됐던 것은 아니었을지. 어쩌면 문제는 단체나 조직에 있던 게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와 방식에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꽤 오래된 일을 떠올리게 된 건 동네 도서관 독서동아리에 참여하면서다. 작년 4월, 집에서 10분 거리에 생긴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독서동아리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평일 오전 ‘여행’ 관련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 회원을 찾는다는 글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동안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주저 없이 신청했다. 이것은 표면적 이유였고, 동네에서 책방을 내고 싶은데 도서관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은 잠재고객이 될 수도 있으니, 그들을 관찰하고 알아봐야겠다는 게 더 솔직한 이유였다.
첫 만남에 5명이 모였다.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는데 내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모임 서기를 맡게 되었다. 시작하는 동아리인 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마음은 두 번째 만남부터 조금씩 어긋났다. 책을 아예 읽지 않고 오셔서 본인의 다른 활동을 늘어놓으시는 분이 계셨다.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능한 분이셨고, 다른 분들의 말을 자주 잘라먹었다. 모임이 계속될수록 분위기는 안 좋았지만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의 의견이 고르게 자리에 펼쳐질 수 있도록 중재자가 되기 위해 애썼다. 어떻게든 그 자리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만둘까’의 카드를 수시로 만지작거렸다. 이 시간이 유익한지 물을 때면 ‘하지 말까’의 마음 속 점유율이 높아졌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건 나뿐만 아니었던 걸까. 참석자보다 결석자가 많은 날이 많았다. 모두 바빠 단둘이 책모임을 했던 날도 있었다. 물론 나도 잦은 결석자 중 하나였다. 아이가 아팠고, 가족이 방문했고, 병원을 가야하는 등 결석의 이유는 참석해야 할 이유보다 늘 많았다. 그럼에도 어쩐지 나는 ‘프로 중단러’ 답지 않게 ‘다음 모임까지만 한 번만 더 나가보자’, ‘가을까지만 해보자’, ‘올해까지는 일단 있자’는 식의 이유를 만들며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미루고 계속 했다. 그러는 사이 그만두는 회원들이 생겼고, 신규 회원들이 들어왔다.
독서 내공이 상당한 분, 독서 모임 날을 휴무일로 정해 꼬박꼬박 출석하는 워킹맘, 에세이를 좋아하신다는 분을 비롯해 새로운 회원들이 오면서 점차 모임이 안정화됐고, 나도 점점 모임 참석률이 높아졌다. 그즈음 사서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독서동아리 성과 공유회가 있는데 발표자를 맡아달라는 것. 발표 자료는 만들어 드릴 테니 발표만 해달라는 부탁을 왠지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발표 시간은 (고작) 5분이었고, 설사 망해도 행사장에 나를 아는 사람은 사서 선생님밖에 없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과 공유회는 무척 재미있었다. 세상에 책 읽는 어른이, 아니 책 읽는 어린이들이 이렇게 많다고? 착시현상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놀라면서 다른 도서관 독서 동아리의 사례 발표를 들었다. 14년 동안 모임을 이어오고 있는 엄청난 내공의 모임장 발표를 통해 독서 리스트 외에도 모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운영 노하우를 얻었고, 신문과 책을 연계해 사회와 세상 읽기를 이어가는 어린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 대한 힌트도 찾았다. 나는 나대로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부터 나만의 이야기를 편하게 전하고 내려왔다.
책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진입장벽이 더욱 낮아져 동네의 다양한 사람들이 손쉽게 책을 선택하고 교류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제가 기여하는 부분이 생겼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좌우명처럼 붙들고 다니는 말을 전하며 내려가고자 합니다. 박민규 소설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책을 아시나요? 작가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기를”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주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책과 함께요! 감사합니다.
_독서동아리 성과 공유회 발표 중에서
단상에 섰던 순간, 내려와 자리에 앉았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무척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서 선생님의 부탁에 거절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니 망하더라도 내가 나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나만의 작은 기쁨과 성취가 분명히 있었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다음에 분명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기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물론 독서동아리도 계속 잘 해봐야겠다는 마음도 먹게 되었다.
‘그만두겠다’는 결론이 아니라 ‘계속 해보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 건 결국 지난 계절 겪은 여러 시행착오 덕분인 것 같다. 마음 안에 고민들이 충돌하고, 무용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닌지 자꾸 되물으면서도 어떻게든 그곳에서 해보려 애쓴 시간들 말이다. 중도하차했음 결코 얻지 못했을 값진 기회와 깨달음까지.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모임이나 단체를 만나더라도 한번은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모든 일에는,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는 시행착오가 있다.’고. ‘시행착오와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해결방법을 찾다 보면 생각지 못한 기회와 값진 보상이 우연히 찾아올 수 있다.’고 말이다.
* 오늘 글의 대학방송국에 대한 생각은 20년 전 당시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었다는 점을 한번 더 말씀 드립니다. 또한 당시에 열심히, 열정적으로 학내 방송국 생활을 마친 선후배 동기들이 이미 많은 언론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또한 밝혀둡니다.
위 내용은 메일리 뉴스레터 '일류여성'으로 발행된 내용입니다. 여자 셋이 돌아가면서 매주 금요일 편지를 보내고 있고, 저는 3주에 한 번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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