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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l 05. 2020

종이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1일 1글 시즌4[episode 99]필사노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70년대 초반, 여성의 언어에 대한 논문 하나가 발표되었다. 그 논문은 나에게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겼고, 결과적으로 글쓰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 내용 중 하나는 여성들이 자신이 했던 말에 인증이나 확인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예를들면 "베트남 전쟁은 끔직해. 그렇지 않아?" 라거나 "난 이게 좋은데, 넌 싫으니?" 이런 말 속에는 항상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의견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지적된 것은 '어쩌면, 아마도, 아무튼'같은 부정형의 수식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래, 갈게'와 '어쩌면 갈지도 몰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선명한가?


세상이란 언제나 흑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쎄, 웃기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 그것이 푸른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글은 골란하다. "이것은 푸른 말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라.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 논물을 읽은 후 나는 집에 돌아가서 가장 최근에 썼던 시를 꺼내 읽었다. 그러고나서 내가 쓴 모호하거나 분명치 않은 단어와 구절을 모두 골라냈다. 마치 샤워를 마친 후 알몸으로 서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무섭고 겁이 났지만, 기분은 좋았다. 분명치 않은 부분을 걸러 내는 작업이 시를 한결 좋게 만들어준 것이다.


비록 우리 인생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명확하게 인생을 표현해 보는 것이 좋다. "이것도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순간의 나다." 이렇게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당신은 훗날 그만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 훈련 단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설령 이러한 부정형 언어들을 자주 사용하고 있더라도 너무 염려하지 말라. 정확하지 않은 진술을 쓴다고 자신을 비난하거나 비하하지 말라. 그저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된다. 글은 계속 써 내려가라. 그런 다음 자신의 쓴 글을 전체적으로 다시 읽을 때 선명하지 못한 부분을 잘라 내도 늦지 않다.


 하나, 스스로 경계할 부분은 바로 질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도   있어야 한다. 글을 스고 있는 동안 질문 하나를 만들  있다면 아주 잘된 일이다. 하지만 즉시  깊은 단계로 내려가 바로  다음 줄에서  질문에 답을 주어야 한다.


"내가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은 무어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건포도 빵 세개를 먹고, 하늘색을 기억하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왜 어젯밤 그렇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을까?" 왜냐하면 저녁에 비둘기 요리를 먹고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불행했기 때문이다. "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저 바람은 크로와 강 개척자들의 추억에서부터 불어온다. 사하라 사막처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만든 질문에 답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떨쳐 버려라.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다. 이런 훈련은, 문장을 훨씬 힘차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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