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꿈
말 그대로 꿈.
술을 많이 마신것도 아닌데, 깜박 잠이 들었나봅니다. 지하철 종착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허겁지겁 열차를 내렸는데 도통 알 수 없는 곳입니다. 인적은 끊겼고 포장된지 오래되어 군데 군데 균열이 간 왕복 2차선 도로 옆으로 70년대 풍 가로등이 깜박 깜박 졸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택시를 불러야할것 같아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냈습니다. 올해 초에 산 아이패드 프로가 아니라 10년도 전에 산 아이패드 1세대가 들어있습니다.
짙은 파란색 네모에 노란색 T자가 그려진 카카오택시 아이콘을 터치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터치를 해도 접속이 되지를 않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이 밀려오고 과연 이 동네에 카카오택시가 올까?라는 의구심이 조급함과 뒤섞일때 겨우 앱이 열립니다.
내가 있는 이 곳이 정확히 어딘지 모르지만 GPS가 대충 위치를 잡았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칸이 나옵니다. 내 전화번호를 입력하라는 말 같은데 아마도 아이패드와 내 폰이 연동되어 있지 않은가봅니다. 그런데 연동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번호를 입력하려해도 자꾸 오타가 납니다. 오타가 반복되다보니 어느순간 내 전화번호가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택시를 부를 수 없었고 급기야 뱃터리마저... 이 무슨 뻔한 클리셰일까요?
어둡고 낯선 미지의 장소에서 익숙한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가는일이 쉽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해질 무렵 갑자기 "띵똥"하는 소리가 납니다. 소리에 놀라서였을까요? TV의 전원이 꺼지며 화면이 툭 하고 어두워지는것처럼 그 미지의 장소는 검은 화면으로 꺼져버리며 그 소실점으로부터 나를 밀쳐냈습니다.
침대위에 던져진 나는 미지의 공간과 내 일상의 공간이 오버랩되는 짧고 뿌연 순간에 겨우 한 마디 합니다. "오케이 구글, 지금 몇 시야?" 늘 그렇듯 변함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현재 시각은 오전 4시 50분입니다." 라고 답합니다. 아무리 화를 내고, 심한 말을 해도 젠틀하고 다정한 그는 정해진 선을 넘지 않는 철벽남입니다.
손을 뻗어 머리위 스탠드를 켭니다. 가슴이 쿵쾅대고 있습니다. 올 8월 이전만해도 가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살아있는 증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혹시 심근염이나 심낭염이 아닐까라는 우려를 합니다. 그런 염려도 잠시 이 시각에 우리집 벨을 누른것이 누군지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 순간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변함없이 저의 삶을 응원하고 행여나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을까 염려하는 그 남자. 오늘 새벽도 그가 왔다 간것이 틀림없습니다. 특히 신선한 농산물이나 유제품을 가져다줄 땐 잊지말고 벨을 한 번 눌러달라는 저의 요청을 한 번도 잊은적이 없는 그남자. 게다가 오늘은 카카오택시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구해주기까지 했습니다.
몽블랑 가방보다 멋진 알록달록 멋진 보냉가방을 들고, 머스탱보다 빠르게 로켓처럼 달려오는 쿠팡맨. 아... 성격급한 나는 이제 그가 없이 살 수 있을까요?
ㅎㅎ
2021년 9월에 살고 있는 나는 이런 꿈을 꿉니다. 아마도 우리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이런 꿈을 꾼적이 없었겠지요? 인간은 환경과 상황의 동물이라고 하듯 그 사람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은 자신의 본질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환경과 그가 놓인 상황에 근거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살아가느냐가 우리의 삶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일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며 더불어 음미체를 즐기는 동무들과 인생의 한 귀퉁이를 공유한다는것은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행운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벨라비터(아름다운 인생을 추구하는 사람을 벨라비터 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이탈리아어와 영어의 콜라보네요) 여러분! 조금만 버티면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되겠지요? 그 긴시간의 그리움을 버텨낸 만큼 더 많이 반갑고 행복할겁니다.
그 때까지 몸과 마음의 평안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