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for 빛 from TATE_ 03. 윌리엄 블레이크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특별전> 관람을 위한 사전 학습 03/4.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드디어 윌리엄 블레이크에 대해 말하게 되었네. 하!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이 양반이 참 특이한 사람이거든. 일단 그의 작품 두 점을 보자고
1757년생인 윌리엄 블레이크에 대해 알아보자고 해놓고선 갑자기 너무 현대적인 느낌의 일러스트가 나와서 좀 의아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
왼쪽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의 한 장면을 그린 일종의 삽화인데 "연민은 갓난아기처럼, 하늘의 천사가 바람의 말을 타듯이..."라는 구절에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해.
오른쪽의 그림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사탄의 모습을 그린 거야. 요한계시록에서는 사탄 즉, 붉은 용은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요, 그 여러 개의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다고 묘사되어 있고, 그 붉은 용 가랑이 사이로 머리가 일곱 개 달린 짐승이 있는데, 이 짐승은 표범의 모습에 곰의 발, 사자의 입을 가졌다고 묘사되어 있지. 이 붉은 용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에 아주 자주 등장해. 일곱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7대 죄악인 교만, 질투, 탐욕, 식탐, 분노, 나태, 색욕을 상징한다는 것은 영화 <세븐>을 보았다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듯.
이 두 작품만 보아도 윌리엄 블레이크는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전통적인 구성과 원근법을 무시했고, 형태는 정교하게 묘사하되 상상과 현실이 일체를 이루는 신비로운 시각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화가라는 생각이 들지?
동시대 화가였던 조셉 라이트가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과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한여름 밤의 꿈; 오베론과 티타니아, 요정과 춤추는 퍽>을 비교해보면 그의 화풍이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상상력이 가득한지 알 수 있을 거야.
이번엔 윌리엄 블레이크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작품 두 점을 볼게.
두 작품의 공통점을 찾아볼까? 눈썰미 있는 너니까 아마도 이렇게 말할 거야. 나체의 근육질 남자가 등장한다. 허리를 숙인 자세가 똑같다. 그리고... 그래 맞아 가장 중요한 나침반을 들고 있다는 점!
그럼 이번엔 다른 점을 찾아볼까?
왼쪽 그림의 주인공은 뭔가 거창한 일을 하는 것 같지? 마치 무한의 공간에 거대한 컴퍼스로 위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듯 우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반면 오른쪽 그림의 주인공은 자신의 머리쯤에서 내려온듯한 두루마리 위에 작은 컴퍼스로 동그라미와 세모를 그리고 있어. 주변에는 관심이 없는 듯 구부정한 자세로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네.
고대의 나날들(The Ancient of Days, 1794)이란 제목의 왼쪽 작품은 컴퍼스를 쥐고 우주를 가르는 천상의 존재, 즉 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고, 오른쪽 작품은 제목은 이성을 잣대로 삼는 계몽주의의 심벌로서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795)의 모습을 그린 거야.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성이나 합리성보다는 인간의 감성과 영성으로부터 나온 상상력이 갖는 힘이 더 위대하다고 믿었던 사람이었어. 그랬기에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뉴턴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작은 컴퍼스로 끄적끄적하는 아싸처럼 그려서 그를 은근히 돌려 까기 하고 있는 거지. 그냥 비호감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극혐 했다고 해.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잠깐 이야기해볼게. 우리가 이 학습을 시작하며 맨 처음 알아봤던 화가 조셉 라이트 생각나지? 다른 건 다 잊었다 해도 산업혁명 정신을 기록한 화가라는 것. 그가 lunar society 멤버들과 교류하며 과학적이고 이성적 사고가 팽배해지는 사회상을 표현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 정도는 기억할 거야. 영국의 지폐(구권)에 산업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고 말했었잖아. 매튜 볼튼과 제임스 와트(혹시 기억이 안 난다면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306). 이 둘은 1775년 볼턴 앤드 와트(Boulton & Watt)라는 증기기관 제조기업을 만들고 방적, 제분, 제철공장 등 근대적 제조공장을 세우며 영국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었어.
그들이 1786년 런던 템스 강 주변에 세운 최초의 밀가루 공장이 앨비언 제분소(Albion Mill)인데, 5층짜리 건물에 모든 기계가 증기기관으로 작동되었으니 그 이전의 방앗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했겠지. 앨비언 제분소는 런던의 명물이 되었고 영국인들은 자국 산업의 기념비와도 같은 이 제분소를 자랑스러워했어.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이자, 루나 소사이어티의 멤버였던 에라스뮈스 다윈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계"라며 제분소의 기계 시스템을 추앙했지만 거대 자본은 주변의 모든 영세업자들을 압도해버렸고 노동자들은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겼으니 결코 모두에게 환영받지는 못했을 거야. 공교롭게도 1791 화재로 전소해버리게 되는데, 자영업 제분업자들의 방화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기계 과열로 발생했다는 게 한참 후에 밝혀졌어.
1790년 앨비언 제분소 근처로 이사한 윌리엄 블레이크는 계몽주의를 발판으로 한 산업사회가 노동자를 노예처럼 착취하고 있으며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노동자들이 비참하고 빈곤해지는 폐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어.
<밀턴, milton, 1804-1810>이라는 자신의 시집 서문에 <그리고 먼 옛날에 그들의 발길은>이란 시를 싣는데 그는 앨비언 제분소를 빗대어 <악마의 맷돌>이라고 표현해. (아! 윌리엄 블레이크는 그림뿐 아니라 시를 쓰기도 했어. 그의 프로필에는 화가이자 시인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이 시는 아리마데 요셉이 예수와 함께 옛 잉글랜드 땅을 밟았다는 전설을 기반으로 하는데(물론 많은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부인하고) 예수가 재림하여 새로운 예루살렘 즉, 천국을 세울 것이라는 것과 그 새로운 천국이 바로 잉글랜드라는 곳에 세워지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리고 먼 옛날에 그들의 발길은
잉글랜드의 푸른 산 위를 거닐었는가?
하나님의 어린양이
잉글랜드의 기쁨의 들판 위에 보였는가?
그리고 신의 얼굴이
우리의 구름 낀 언덕 위에 빛났을까?
그리고 예루살렘이 이 땅 위에
이 어두운 악마의 맷돌들 사이에 세워졌단 말인가?
금빛으로 불타는 나의 활을 가져오라,
내 소망의 화살을 가져오라,
내 창을 가져오라, 오, 구름아 걷혀라!
내 불의 전차를 가져오라!
나는 싸움을 멈추지 않으리
내 칼은 내 손에서 잠자지 않으리,
우리가 예루살렘을 세울 때까지,
푸르고 쾌적한 이 땅 영국 위에.
'악마의 맷돌'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황폐해진 자연과 도시화, 기계화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관용어로 쓰이게 되었는데, 블레이크의 이 시에 "예루살렘"이라는 제목을 붙여 휴버트 패리(Hubert Parry)가 곡을 붙이고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하면서 이 시는, 아니 이 곡은 영국의 애국가보다도 더 영국을 대표하는 노래로 각종 행사에 사용되고 있다고 하네.
자 다시 시로 돌아가 보자. 악마의 맷돌에 분노하는 블레이크는 악을 타파하고 잉글랜드에 천국을 세우기 위해 금빛으로 불타는 활, 소망의 화살, 창, 불의전차와 같은 천상의 무기로 투쟁하겠다고 말하고 있잖아. 여기서 불의 전차는 신의 힘을 상징하는 관용어로 1981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불의 전차'가 이 시에서 제목을 차용한 것이야. 영화의 마지막엔 "예루살렘"이란 곡이 삽입되어 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을 연출한 대니 보일(슬럼독 밀리어네어 감독)은 블레이크의 시를 토대로 하여 개막식의 2부를 '대혼란'이란 주제 아래 악마의 맷돌을 연출했어. 그만큼 영국인들에게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사상이 자국 문화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그는 생전에 아나키스트에 가까웠는데 하늘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 허허하고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불의 전차" 주제곡(Vangelis 원곡)을 연주할 때였어. 반젤리스의 원곡이 워낙 유명하니 들어보면 다 알 텐데, 여기에 로완 앳킨슨(미스터 빈)이 연주자로 깜짝 출연해. 와와! 진짜 너무 재미있는 연출이어서 아직도 웃음이 나오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미스터 빈 퍼포먼스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CwzjlmBLfrQ)
태생이 반항적이었던 그는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어. 15살에 판화가이자 조각가인 제임스 바자이어(James Basire)의 도제가 되어 페르시안 신전이나 그리스 조각, 이집트 건축 등의 드로잉과 조판을 도우며 기술을 습득했어. 21살에는 당시 막 설립된 왕립 미술아카데미에 들어가는데, 초대 원장이 바로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1792)였어. 미술사에서는 조슈아 레이놀즈를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초상화가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에겐 매우 생소한 이름이지. 하지만 아마 그의 그림 중 <어린 사무엘>이라는 작품은 그의 이름에 비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림이라 아하! 하고 무릎을 칠지도 몰라.
이 그림 제목은 <오늘도 무사히>가 아니라 <어린 사무엘>이라고!
아무튼 당시 주류화가였던 조슈아 레이놀즈는 보편적 진리와 보편적 미의 추구를 주장했지만 그런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바보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윌리엄 블레이크는 그때부터 마이웨이를 외치며 화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했지.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환영이 보인다고 이야기했고 그것을 토대로 그림으로 그렸으며 평생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살았던 사람이었어. 충동과 감각, 느낌과 인상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그를 당대 사람들은 미친 X이라고 평가했기에 평생 번듯하게 발법이를 하지 못하다가 가난한 생을 마감할 수 밖어 없었지.
사실 윌리엄 블레이크가 한국인들에게 조금 더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마도 스티브 잡스 때문일 거야. 아이폰이 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스티브 잡스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에서 영감을 얻어 아이폰을 만들었다고 보도했고, 우리나라 포털에도 윌리엄 블레이크를 검색하면 스티브 잡스가 연관된 포스팅이 많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라.
<순수의 전조 中>
<순수의 전조>라는 시의 처음 4행을 읽어보면 딱 아이폰의 세계관이 직관적으로 매칭 되는 듯 해. 그런데, 잡스가 어디 이 시 하나에서만 영감을 얻었겠어? 아무튼 스티브 잡스가 그러했듯 후대는 그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어. 비평가 조나단 존스(Jonathan Jones)는 그를 "영국이 만든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했고 헝가리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윌리엄 블레이크의 비유를 빌려 '악마의 맷돌'이라고 정의했으며 2002년 BBC가 선정한 '위대한 영국인 100위' 중 38위에 등극했어.
당시엔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평가받던 그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상상력과 열정을 거침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인정받으며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고 있으니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그의 삶이 조금은 보상받는 것일까?
이번 테이트 특별전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착한 천사와 악한 천사>, <아담을 심판하는 하느님>을 보면 그가 흠모했던 미켈란젤로의 인체 표현이 설핏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 나는 아마도 이 그림들 앞에 서면 더할나위 없이 안전하고 평안한 나의 삶을 많이 반성하게 될것 같아. 너는 어떨까?
그럼 다음 글도 기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