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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03. 2024

보이는 것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세상

도미니크 앵그르의 <파포스의 비너스>

내가 살았던 신혼집은 신축 빌라임에도 2~3주가 멀다 하고 타일의 줄눈 사이에 누런 물때가 끼기 일쑤였다. 빳빳한 작은 솔로 타일 사이사이를 닦아 주어야만 줄눈의 원래 색을 볼 수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 하는 욕실 청소는 생각보다 자주였고, 딸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시간 동안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노동이었다. 어느 날 친정집에서 엄마와 밥을 먹다가 "엄마, 엄마 집 욕실은 물 때가 잘 안 끼는데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자주 끼나 몰라"라고 말하자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때가 안 끼기는! 엄마가 얼마나 자주 닦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친정집 욕실이 늘 깨끗하고 보송보송했던 이유가 엄마의 청소 덕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직장생활 하랴 친구들 만나랴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탓에 엄마가 청소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둔탁한 것이 뒤통수를 한 대 때린 것 같았다. 안개속에 쌓여있던 결계가 풀리며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들의 뒤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 깨끗한 욕실의 모습 뒤로 쭈그리고 앉아 구석구석 솔질하는 엄마의 모습이 플래시백으로 보였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부끄럽게도 나이 서른이 되어서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그림자가 붙어있듯 보이는 것 뒤에 붙어있는 보이지 않는 세상은 흥미진진한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전엔 액자 속 그림을 보며 즐거움을 느꼈다면, 이제는 그 그림 뒤에 숨어있는 거대한 세상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림의 표면에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화려함, 정교함의 뒤에는 고뇌와 갈등, 비난과 치열함이 뒤섞여 있었다. 어떤 그림에는 화가가 거친 수많은 시행착오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고스란히 남아있기도 하고, 또 어떤 그림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행된 엑스레이나 적외선 촬영 등의 분석을 통해 표면 아래 숨어있는 다른 이야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작품 <파포스의 비너스 Venus at Paphos, 1852>는 화가의 고민이 그림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앵그르가 활동할 당시 프랑스 왕립미술아카데미는 엄격한 진급 단계를 모두 통과한 견습화가들을 대상으로 매해 공모전을 열어 최고로 뽑힌 사람에게 로마대상을 수여했고, 최대 5년간 로마에서 유학할 기회를 주었다. 앞발을 높이 쳐들고 있는 말에 올라탄 나폴레옹의 초상화로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가 앵그르의 스승이었다. 다비드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스물여섯의 나이에 로마대상을 탔지만 앵그르는 스물한 살의 나이로 로마대상을 탔다. 스승인 다비드가 엄격하고 균형 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 입체적인 형태의 이상적이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신고전주의 양식의 화가로 강하고 남성적인 그림을 그렸다면 앵그르는 거기에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더해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의 여성적인 그림을 그렸다. 특히 하렘의 여인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한 오리엔탈리즘 사조를 기반으로 한 백인 남성들의 망상과 관음증적 본능에 부합하는 에로틱한 주제로 적합하였다. 게다가 어찌나 여체 표현에 탁월했는지 붓이 지나간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매끄러운 여인의 피부표현은 보는 것 만으로 만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 


앵그르는 인체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해부학적인 구조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앵그르의 대표작 <그랜드 오달리스크>를 본 비평가들은 그림 속 여인이 일반인보다 척추뼈를 세 개나 더 가지고 있다고 비아냥거렸을까. 그러나 앵그르의 그림 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인체의 구조적인 결함은 그의 뛰어난 구성과 묘사 능력 덕분에 오히려 아름다운 생명력을 가진다. 그런 앵그르가 특히 좋아하던 여인의 포즈가 있었는데, 관람객을 향해 등을 돌리고 앉아 귀와 이마가 조금 드러나도록 고개를 살짝 돌린 모습이다. 28세 때 그린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1808> 속 여인은 20년 후 <소욕녀-하렘의 내부, 1828>에 그대로 재등장하고, 83세의 노화가가 되어 그린 <터키탕, 1862>에서도 류트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과 <소욕녀-하렘의 내부>에 그려진 여인의 오른쪽 다리를 자세히 보면 역시나 구조상 불가능한 자세다. 물론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일 테지만.


왼쪽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1808>, 가운데 <소욕녀-하렘의 내부, 1828>, 오른쪽 <터키탕, 1862>


이쯤에서 앞서 언급한 <파포스의 비너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 작품이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앵그르의 미완성작이라는  점과 그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였다. 비너스의 뒤편엔 무성한 초목이 있고, 초목 너머로 고대 사원의 지붕이 보인다. 어린 큐피드와 손에 쥐어진 사과, 그리고 제목에 명시했듯 그림 속 주인공은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다. 역시나 등과 어깨, 가슴의 구조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녀의 왼손을 보면 마치 투명 인간의 팔인 듯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팔의 궤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습작 스케치에서는 왼손이 오른손을 바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습작과 같이 왼 손이 오른손을 바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가 다시 오른쪽 허벅지 위에 살짝 올려놓는 모습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이 자세도 최종 자세는 아니었나 보다. 그 앞의 어린 큐피드도 역시나 미완성인 상태로 뿌연 표정을 한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림이라면 눈감고도 그릴 73세의 노화가는 왜 비너스의 팔을 그리는데 고민했을까? 이 그림 이후로도 많은 그림들을 그렸는데 이 그림만큼은 왜 완성하지 못했을까? 이 작품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이 그림 뒤에 숨은 이야기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점의 스케치를 먼저 보아야 한다. 가운데 작품은 초상화를 의뢰받았을 당시 앵그르가 그렸던 스케치 <파포스의 비너스; 연구, 1852>고 오른쪽은 그의 제자인 폴 장 플랑드랭(Paul Jean Fladrin, 1811~1902)이 그린 <안토니 발라이 부인, 1852>의 스케치다. 



두 개의 스케치와 왼쪽의 <파포스의 비너스>를 비교해 보자. 재미있게도 앵그르의 스케치 속(가운데) 비너스의 몸에, 폴 장 플랑드랭이 그린 스케치(오른쪽) 속 여인의 얼굴이 조합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는가? 안토니 발라이는(Antonie Balay, 1833~1901)는 실존 인물로 프랑스 리옹지역 국회의원의 딸로 상류층 여성이었다. 아무리 앵그르가 거장이었다고 해도 누구나 알만한 상류층 여성이 자신의 누드를 의뢰했을 리 없다. 이 작품을 소장한 오르세 미술관의 짤막한 설명에 따르면 초상화 작업이 진행 중에 의뢰가 취소되었고, 앵그르는 그 초상화를 신화적인 장면으로 변형시켰을 거라 추측한다. 결론적으로 실존 인물의 얼굴에 전문 모델의 누드가 결합된 이종 결합의 작품인 <파포스의 비너스는> 처음엔 의뢰인이 있었던 초상화로 시작했지만 결국 갈 곳이 없어지게 되었고 앵그르는 이런 상황을 활용해 독창적인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혹시 모를 스캔들을 피하고자 화가가 소장하고 있다가 그의 사후엔 제자인 폴 플랑드랭이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도에 대해 안토니 발라이의 허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누가 봐도 알만한 고귀한 상류층 여성의 얼굴을 한 비너스의 누드는 묘한 에로티시즘을 자극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 같으면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이미 수많은 여인의 초상화를 완벽하게 그렸던 앵그르에게 이 비너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사실 초상화를 그릴 때 손의 위치를 잡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모델이 편안하게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손의 위치를 잘 잡아야 하고, 손의 위치에 의해서 모델의 성격과 감정 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앵그르는 무엇 때문에 팔의 위치를 결정하지 못했을까? 그의 고민이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하던 어느 날, 나의 머리 위로 전구가 반짝하고 켜졌다. 이 자세는 앵그르가 20대 때부터 80대 때까지 지속적으로 그렸던 목욕하는 여인의 앞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시그니처인 목욕하는 여인의 뒷모습은 앵그르라는 한 남자의 가슴속에 간직된 영원한 이상향이자 그가 추구한 미의 완결형 아니던가. 보이는 것들의 뒤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관심을 가졌던 나처럼 앵그르 또한 뒷모습으로 점철되어 온 여인의 보이지 않는 세상인 앞모습을 이제는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신화 속 비너스의 탄생지인 파포스, 그곳에 있는 비너스는 더 이상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는 미의 본질 그 자체일 것이다. 조금 더 완벽한 아름다움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비너스의 손은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을까? 어쩜 완성되지 않은 이 그림이야말로 열린 결말의 영화처럼 보는 이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하기 위한 완벽한 장치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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