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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06. 2024

요런 깨알 재미! 놓치면 아쉽지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브뤼헐의 <바벨탑>

유럽의 미술관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많다.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의 원본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느끼는 일, 알고 있던 화가가 아닌 낯선 화가의 보석 같은 작품을 발견하는 일, 같은 주제의 그림을 여러 화가들이 색다르게 연출하고 표현한 것을 비교해 보는 일, 그리고 화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군데군데 숨겨놓은 유머를 발견하는 일이다. 물론 그 유머란 화가의 의도일 수 도 있고, 나만의 해석일 수도 있다. 짓궂은 장난일 수도 있고, 우아하게 풍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를 웃게 만든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꼬마 천사와 빈 미술사박물관의 한 작품 안에서 은밀한 일을 하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나보자.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캔버스에 누드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은 신에 국한되었다. 그중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누드를 표현하고 싶은 화가나 보고 싶어 하는 관람자들에게 완벽한 명분을 주는 존재였다.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대지의 신 크로노스에 의해 잘린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에 떨어져서 생긴 거품에서 탄생했다.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1825~1905), 오딜롱 르동(1840~1916), 프랑수와 부셰(1703~1770) 등 많은 화가들이 완벽한 아름다움의 여체로 탄생하고 있는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묘사했다. 


특히 알렉상드르 카바넬(1823~1889)의 작품 속 아프로디테는 어떤 다른 작품보다 관능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전통적으로 아프로디테는 바다나 파도 위, 커다란 조가비 위에 서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던데 반해 카바넬의 그림 속 아프로디테는 일렁이는 파도 위에 누운 채 온몸을 S자 형태로 만들어 유혹적인 눈빛으로 자신의 미를 뽐내고 있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이 그림을 향해 전례 없는 찬사를 보내며 거금을 주고 구입한다. 덕분에 카바넬은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는 신고전주의라는 주류 사조를 비집고 인상주의라는 혁신적인 미술사조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 혁신층을 지지하던 작가 에밀 졸라는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을 미학적인 규칙 없이 단순히 아름답고 관능적으로 묘사만으로 여성을 욕망을 대상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라 비판했다. 


아무튼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난 이 그림은 아름다웠다. 미술사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 것이다. 이 그림의 대척점에 있는 그림이 마네의 <올랭피아>다. 당시엔 카바넬의 작품엔 찬사가, 마네의 작품엔 비난이 쏟아졌지만, 전체적인 미술사의 관점으로 본다면 마네의 <올랭피아>가 승자다. 우리 눈에 익숙한 <올랭피아>는 인상주의로의 대변혁 과정에서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품으로 기록된 반면 카바넬의 작품은 아주 잘 그려진 대다수의 작품 중 하나일 뿐이다. 


밝게 빛나고 있는 아프로디테의 피부, 탐스러운 금빛 머리칼, 한껏 관능적으로 연출한 자세, 오른손을 이마에 올린 채 관람객을 향해 보내는 묘한 시선, 그러나 정작 내게 말을 건넨 건 아프로디테가 아니었다. 그녀의 바로 위 두 팔을 들고 있는 꼬마 천사였다. 

"휴… 천사도 직업이 되니 힘드네" 

꼬마 천사의 표정을 보니 힘들고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작은 몸이지만 그 작은 몸을 들어 올리기도 벅차 보이는 작은 날개의 퍼덕임이 애틋해 보였고,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축하를 하는 자세는 형식적 포즈로 보였다. 마치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 같았다. 


'아! 얼른 일 마치고 얼른 들어가 뜨거운 물에 날개 잘 닦고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한 잔 쭈욱 마시고

푹 자야겠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꼬마천사 앞에서 나는 한참을 빙긋이 웃고 서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빈 미술사 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역대 황제들이 드넓은 영토에서 수 세기에 걸쳐 수집해 온 보물과도 같은 예술 작품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이 본래는 왕궁이거나 정부 청사였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 반해 빈 미술사 박물관은 처음부터 미술작품을 소장,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구스타프 클림트가 초창기에 그린 벽화를 비롯해 수많은 명화들을 소장한 빈 미술사 박물관은 미술관, 이곳에서 꼭 확인해야 할 것은 16세기 플랑드르의 최고 화가였던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5-1569)의 작품 속 한 남자였다. 


미술사엔 브뤼헐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화가가 네 명이나 되는데 모두 한 식구다. 아버지 대(大) 피터르 브뤼헐, 큰아들 소(小) 피터르 브뤼헐, 둘째 아들 대(大) 얀 브뤼헐, 그리고 얀 브뤼헐의 아들 소(小) 얀 브뤼헐. 이 중 아버지 대(大) 피터르 브뤼헐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이나 풍경화등을 주로 그려 농민 브뤼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500년대 중반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일대인 플랑드르는 조선업과 무역, 금융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다. 강압적인 통치권을 행사하던 스페인과 전쟁을 하고 있었고,  종교개혁에 의한 구교와 신교의 대립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상류층과 빈곤층간의 사회적 갈등이 심해지며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었다. 브뤼헐은 이런 사회적 심각성을 어떻게 경고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가 선택한 메타포는 바벨탑이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신의 영역에까지 도달하기 위해 쌓았던 바벨탑. 그 오만함은 신의 분노를 야기하고 결국 인간에게 하나였던 언어는 수많은 언어로 갈라지게 된다. 브리 헌 이 바벨탑을 그림으로 세상을 향해 경고하고 있다. 



그림 속에는 한창 건설 중인 바벨탑이 있다. 우뚝 솟은 바벨탑은 얼핏 육중해 보이지만 왼쪽으로 기울어져있다. 게다가 아래층이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벽돌로 위층을 쌓아 올리고 있다. 이 그림의 백미는 탑을 건설하고 있는 수백 명의 작업자들과 건설 장비등 세밀한 묘사다. 



브뤼헐은 기울어진 바벨탑을 통해 이미 균형을 잃은 사회를 표현했고 체계없이 중구난방으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통해 사회의 불통을 꼬집었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브뤼헐이 세상을 향해 빅엿을 먹이고자 남겼으리라 생각한 상징은 탑의 아래쪽 빈 공간에 있는 남자였다. 알지 못한다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출연자다. 이 남자가 은밀하게 하고 있는 일이란 바로 뻥 뚫린 공간에서 엉덩이를 보이며 용변을 보고 있는 것이다. 브뤼헐이 굳이 이렇게 까지 디테일하게 이 남자를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사회의 무질서함과 수치심이 없는 인간들을 표현한 것일 테고, 또한 엉덩이를 보이는 행위는 타인을 향한 조롱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더불어 타락한 세상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펴서 흔들고 싶었던 것이리라.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 브뤼헐의 바벨탑을 찾고, 그 그림 속에 손톱보다도 작은 한 남자를 찾아서 떠났던 오스트리아 빈미술관 관람은 꽤나 흥분되고 기대되는 여행이었다. 명화를 직관하는 일은 사진이나 인쇄물에서 느낄 수 없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기에 그 감동이 남다르다. 그런 작품 안에서 자칫 스쳐 지나칠 수 있는 이런 작은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 또한 미술 애호가만이 즐길 수 있는 색다른 기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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