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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Sep 29. 2022

멀리서 와주신 분들

크리에이터 클럽의 추억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이 방문해주시는 건데요,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진행하는 영화모임에 천안이나 아산 지역 외에 계시는 분이 참여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지금까지 당진, 대전, 세종, 홍성, 안성에서 저희 모임을 방문해주셨는데요, 차로 이동하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소박한 모임에 방문해주시는 열정에 감사함을 느끼고, 멀리서 오셨는데 실망시켜드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느낍니다. 다행히 모임이 성공적이어서 기분 좋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저 역시도 한 때 서울까지 모임을 위해 갔던 경험이 있어서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크리에이터 클럽이라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사실 '있었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은데 지금도 있긴 합니다. 다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실질적으로 운영을 중단한 상황이라 과거형으로 표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고, 회사 생활로 피폐해진 내면을 글쓰기로 회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운영을 중단한 작금의 상황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크리에이터 클럽의 모임은 서울 망원동에서 열렸어요. 망원동이라 하면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한 번 더 타야 가는 곳으로 서울 안에서도 외곽에 있죠. 천안에서 가기에는 쉽지 않은 곳입니다. 천안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서울까지는 1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저희 집에서 터미널까지 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 터미널에서 망원동까지 가는 시간을 더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 합치면 저희 집에서 모임 공간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20분쯤 소요되었던 것 같습니다. 왕복으로 하면 5시간에 가까운 거리죠. 생각해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가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였군요.


모임이 진행되는 공간은 '거실'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영화모임 이름을 거실영화관으로 하면서 '거실'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잘 불리지는 않지만 모임을 운영하는 저의 호칭을 거실지기로 했는데 크리에이터 클럽의 운영진 역시 '거실지기'였습니다. 나이와 직업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점과 같은 운영적인 요소 역시 크리에이터 클럽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팀제로 운영하여 2주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하고 그 외에도 다른 정기모임에 게스트로 참여할 수 있는 '놀러가기'가 가능해서 한창 재미 들렸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 가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실리적인 이유 없이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2년 동안 4팀을 거쳐가면서 만난 인연들은 시즌이 끝나면 같이 끝나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뜻밖의 계기로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직업군이 달라 크리에이터 클럽이 아니면 이어지지 못했을 인연이죠.


모임에서 만난 인연들을 자만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로를 직업과 나이를 모르는 채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공통점을 찾고 인연을 이어갑니다. 누군가와는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에서, 누군가와는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아니면 딱히 공통점도 없는데 이상하게 대화가 잘 통하는 분이 있는 거죠.


물론 그곳에서 항상 좋은 기억들만 남은 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인 이상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에 한 번 있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투자하는 왕복으로 5시간은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가는 길에는 오늘은 누구와 함께할지 기대하고, 오는 길에는 재밌었던 기억을 반추할 수 있었어요.


그리운 망원동의 '거실'


어쩌면 그때의 좋은 기억이 이어져 지금의 거실영화관이라는 모임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멀리서 와주시는 분들을 보면 좀 더 즐겁게 보내다 가셨음 해서 평소보다 노력하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과 교류하고 싶다는 마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제가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 열었던 모임에는 크리에이터 클럽에서 친해진 지인 분이 방문해주셨습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오셨어요. 작년 11월 정식 모임 오픈 전 방문하셔서 같이 영화를 보고 의견을 주셨던 분인데 올해 8월이 되어서야 일정이 맞아 방문해주셨습니다. 저는 신나서 터미널로 마중 나가 제가 아는 천안 원픽 라멘집에서 미리 점심 식사를 하고 모임이 끝나고 직접 터미널까지 배웅했습니다. 즐거웠다고 해주신 말에 가슴이 무언가로 가득 찬 듯했습니다.


멀리서 온 만큼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P.S. 업로드 직전 반가운 소식을 들었네요. 크리에이터 클럽이 연남동에 다시 부활했답니다. 10월부터 시작한다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신청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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