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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Sep 09. 2022

집을 영화관으로 바꿨을 때의 애매한 상황들

거실영화관과 거실 사이

 요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라는 유튜브 예능을 즐겨봅니다. 급호감인 이영지 님의 선을 넘나드는 진행과 실제 술자리 같은 찐텐을 여과 없이 드러내 게 매력인데요,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영지 님의 실제 집을 촬영 장소로 활하는 점입니다. 화장실 문짝이 고장 나서 닫지 못 하게 하는 장면에서는 혼자서 묘한 내적 공감을 하곤 합니다.



 거실영화관 역시 친구들 세 명이 사는 공간을 영화모임 공간으로 개조한 것이기에 나름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청소가 우선 문제죠. 꿍꿍이와 돌돌이, 두 마리의 고양이가 동거하는 공간이기도 한 저희 집은 모임 날이면 최소 2시간은 청소에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현관부터 거실, 부엌에 걸쳐 살랑거리며 날아다니는 털 뭉치들을 청소기로 빨아들이죠. 오늘 청소도 내일이면 바로 털 뭉치가 날아다니기에 미리 청소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만일 모임 공간을 외부에 별도로 마련했으면 없었을 단점이죠. 그렇지만 이렇게 부지런히 청소하는 덕분에 모임을 하고 나면 며칠간은 깔끔한 거실과 부엌을 영위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단점 외에도 집에서 모임을 진행하면 애매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모임 종료되었음을 알립니다, 집으로 가세요

 다이닝이나 별도의 활동이 포함된 모임이 아닌 경우에는 모임 종료 후 1-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뒤 종료하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모임 종료를 알리는 게 제법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서 대화가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을 때, 을 끊고 모임 종료 선언을 하면 방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일 아침 각자 출근하는 하메들을 위해서라도 모임공간이었던 집을 생활공간으로 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지만 늦게 긴장이 풀려서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 싶은 분들 입장에서는 아쉽거나 더러는 서운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능하면 아파트 입구까지 배웅하거나 평일 모임이 끝나는 23시 전후에는 지하주추장 이중 주차로 막혀 있어서 자가용을 가져오신 분들을 위해 차를 대신 밀어주기도 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신 분들은 가끔씩 제 차로 데려다 드리기도 합니다. 차 안에서 나누는 후 토크도 즐겁고 그때 주시는 피드백이 꽤나 도움이 되거든요. 이영지 님은 쿨하게 '이제 집에 가'라고 말하면서 방종하는데 이런 게 MZ세대의 솔직함인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모임 공간 vs 활 공간

 지난번에 쓴 '어찌 되었든 첫 번째 모임'에서는 모임 공간에서 생활감을 지우기 위한 노력을 언급했었죠. 이는 첫 번째 모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구해왔던 방향성입니다. 오시는 분들은 영화 모임 공간 '거실영화관'에 방문한 것이지, 저희 집에 오는 게 아니니까요. 이를 위해 청소를 꼼꼼히 하고(특히 화장실), 거실, 소파, 부엌 쪽에 무드 등을 설치해놓고  영화 시작 전까지 캔들라이트를 켜 놓습니다. 여기에 거실과 복도를 구분하는 커튼 도어와 네온사인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공간 자체는 구오빠가 초기에 꼼꼼히 세팅해 놓아서 오시는 분들의 감탄과 칭찬을 들을 때마다 제가 괜히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거실영화관과 우리 집 거실


 하지만 모임 시간 동안 진행하는 저를 제외한 두 명의 하우스메이트의 존재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영화 상영시간을 포함해 4-5시간이 소요되는 모임 시간 동안 화장실을 가거나 부엌에서 먹을 걸 챙겨가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오신 분들이 생활공간임을 자각하게 하니까요. 저는 적어도 모임 활동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방문하신 분들이 그 공간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지만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 공간은 누군가의 거주 공간이라는 걸 의식하게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하메들에게 영화 모임을 진행하는 시간 동안은 최대한 거실, 부엌으로의 이동을 자제해달라고 했습니다. 특히나 영화 상영 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요청했습니다. 같이 기획하고 준비한 만큼 협조를 구한 거죠. 다행히 잘 협조해주고 있지만 영화 상영 중 방 안에서 발생하는 소리라던지 전혀 배제할 수 있는 생활감은 여전히 있습니다. 이는 집에서 모임을 진행할 때의 한계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거실영화관은 미리 언급했듯 평범한 아파트의 거실에서 진행하는 모임입니다. 그러니 소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항의성 방문을 받은 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뮤지컬 영화 모임이라 평소보다 볼륨을 크게 틀었을 때입니다. 윗 집에서 방문하셨는데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려서 깜짝 놀랐죠. 현관문 앞에서 사과드린 후 돌아왔을 때는 모임을 진행하면서도 민망했어요. 이후 영화 상영 시 최대 볼륨한계선을 지정하고 스피커와 벽의 이격 거리를 늘렸습니다. 이후 또 방문하신 적은 없지만 모임을 진행할 때마다 항상 신경 쓰고 있습니다. 평일 저녁보다 주말 낮에 하는 모임 비중을 늘린 것도 이때부터 입니다. 아래층의 경우에는  년 전 친구들이 놀러 와서 술 한 잔 할 때 말소리 음향보다는 발 소리가 더 신경쓰인다 하셔서 방문하신 분들께는 반드시 슬리퍼를 착용하게끔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모임과 관련해 항의성 방문은 없었어요.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공동거주공간인 만큼 이웃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 건 기본 요건입니다. 딱 한 번 있었던 항의성 방문 외에도 이웃들의 말 못 할 애로 사항이 없는지는 계속해서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저희의 즐거움이 누군가의 불편함이 되어선 안 되니까요.


 



 예전에 모임 진행을 하다가 급성 위장염이 온 적이 있습니다. 다들 집중해서 괴수 영화(콰이어트 플레이스2)를 보던 와중에 혼자 화장실에서 계속 토를 하고 있었죠. 당연히 영화 내용은 기억도 안 나고 무엇보다 모임을 진행할 수 없는 몸 상태였습니다. 그때 마침 운동을 끝내고 온 구오빠가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어서 이후의 모임 진행을 맡길 수 있었죠. 영화 감상 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뒤늦게 온 친구가 합석하듯 다른 하메들이 테이블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눌 때 호스트의 책임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대화에 합류할 때는 함께 모임을 즐기는 것 같아 즐겁습니다. 이는 집에서 모임을 진행하기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겠죠.


 거실영화관을 저희 집 거실 밖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기에 품고 있는 문제점들은 계속해서 개선해나가려 합니다. 여러 번 오시는 분들은 소파베드에서 편히 누우시면서 보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진짜 본인의 거실에 오신 듯 편해보여서 혼자서 괜히 뿌듯합니다.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이 거실 같은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게 어쩌면 거실지기인 저의 과제일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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