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기에 집을 구했다. 작년 10월에 서울에 있는 지금 회사에 입사하면서 다시 상경하고, 일 하는 주간에는 전 직장선배가 사는 하남 집에 신세를 지고, 휴일에는 천안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이 생활이 얼마나 갈까 싶었지만 어느새 반년이 훌쩍 지나 두 집을 오가는 삶이 어설퍼진 게 느껴졌다. 천안과 하남, 그리고 간간이 다녀오는 본가인 청주. 도로에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순전히 매몰 자원이 되어버린 돈과 시간.가계부 어플을 냉정히 살펴본 뒤, (거기다 어머니의 치아 임플란트 비용이 생각보다 컸다) 천안집을 정리하고 서울, 혹은 수도권에 내 집을 찾아야겠다는결론을 내었다.
집을 계약한 뒤 찾은 여유, 새로운 동네가 될 공원의 카페에서
게으른 나의 성미를 알기에 집을 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우선 천안 집을 뺐다. 셰어하우스 메이트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한 달 뒤에 집을 빼겠다고 했다. 그것이 5월 중순, 천안 집은 6월 말까지 있기로 했다. 하지만 이 후 집을 계약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 나는 여전히 게으름을 피우고, 미루고, 그러나 온전한 내 공간이 없는 불편함을 느끼고, 그렇게 늦장 부리며 민폐를 끼치는 못난 후배에게 아쉬운 소리 한 마디 안 하는 선배에게 탄복하고, 더 이상 폐를 더 끼치면 안 된다는 마음에 부동산 어플(직방, 네이버 부동산을 같이 보는 게 제일 괜찮았다)을 뒤지다 적당한 지역을 찾았다. 그러다 임시로 지내던 하남이라는 곳이 생각보다 강남 출퇴근하기 꽤 좋고, IC 빠지는 길도 바로 옆이라 지방으로 가기 좋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 사는 임시 거처에서 두 역이 떨어진 미사역 근처에 적당한 가격의 오피스텔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지역을 찾았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의 매물은 항상 귀했다. 당연했다, 전세 대출의 한도는 명확했고, 괜찮다고 생각한 집은 항상 내 예상보다 보증금이 일이 천 정도 비쌌으니 말이다. 그렇게 발품을 팔기를 서너 주가 되었나, (그 사이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엎어진 게 두 건이 되었다) 마침내 내가 원하는 집을 찾았다.
그때쯤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원하는 집을 점수화할 수 있는 구글 시트를 폰에 켠 후 냉정히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그렇게 찾은 집은 100점 만점의 83점. 추석을 앞둔 9월 26일, 나는 도장을 찍었다. 입주일은 조금 텀이 있는 11월 15일(감점의 제일 큰 이유였다), 여름 직전에 집을 구하기 시작해 날이 서늘해지는 계절에 마침내 온전히 몸을 뉘일 곳을 찾은게다.
물론 아직 은행 대출 심사라는 과정이 남아 있으니 무사히 잔금 처리를 하고 입주하기를 바라며 남은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 새 보금자리를 위한 한 스텝씩 나아가려 한다.
요가 좀 하네?
재작년에 수영이라는 운동을 새로 시작한 게 의미가 있었듯, 올해 7월에 시작한 요가라는 운동은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 후회스러울 정도로 나에게 맞는 운동이었다. 체형 교정을 진지하게 생각한 건 올해 4월,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서 브레이크 타이밍을 놓친 모닝 덕분에 4중 추돌 사고 선두에 있던 나는 사흘간 입원하며 다양한 검사를 받았고, 단순 염좌였지만 엑스레이와 진단을 통해 본래 나의 목과 허리가 많이 틀어졌다는 (스마트폰과 장시간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거북목과 라운드 숄더) 진단을 받고 체형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전에도 3-4년 전쯤에 필라테스를 도전했지만 난이도가 높았고 남자들이 가기 어려운 분위기 덕분에 4개월 남짓하고 남아 있는 횟수를 다 채우지 못 하고 그만둔 적 있었다.
그래서 도전한 게 요가였다. 그치만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는 나는 어디 요가원이 나에게 맞을지 전혀 몰랐으나 그럴 때 좋은 방법이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거다. 그러다 보면 한 명쯤 여기가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는데 강남역 15분 거리에 있는 '활선요가'라는 곳이었다. 제일 멋진 점은 서초등 12층 빌딩이라는 위치였는데 요가원 사방에 훤히 뚫린 창문 사이의 푸른빛 하늘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방문한 그곳은 깔끔한 남자 탈의실과 샤워실을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의 고객이 여성인 요가원/필라테스 짐의 남자 탈의실은 탈의실이라고 쓰고 창고로 읽을 만한 곳이었다) 회사에서 내어주는 건강비를 조금 상회하는 비용은 부담스러웠지만 1회 클래스를 수강한 뒤 바로 3개월 정기권을 끊었다.
테스트 클래스로 들었던 클래스에서 안 쓰던 목 근육, 어깨, 고관절을 비틀고 펴는 동작을 수행했고 처음엔 아프지만 하고 나면 시원해지는 개운함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55분이 클래스가 끝나고 누워 호흡에 집중하는 휴식 시간.
잔잔한 음악과 통창 유리벽에 확 뚷린 시야, 명상을 유도하는 요가원 선생님의 속삭임에 맞춰 의식과 수면의 중간쯤에서 숨소리 세기와 볼에 닿는 공기의 밀도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비명을 지르는 고관절과 어깨는 안 쓰던 근육을 이완한 덕분에 20년간 막혔던 새로운 숨통을 튼 듯 서서히 시원해졌다. 그렇다, 나는 그 5분이 좋아서 요가를 시작하고 3개월 동안 바지런히 출석 도장을 찍었다. 물론 특유의 게으름으로 초반에는 많이 빠졌지만 마지막 한 달 동안 쌓인 횟수를 쓰기 위해 매주 2-3회씩 부지런히 방문했고 출근길에 클래스 시간이 맞으면 몸을 풀고 출근했다. 여전히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속에서 눈에 확 띌 정도의 열등생이지만(다리가 90도도 안 찢어진다) 그럼에도 조금씩 몸이 이완되는 걸 느낀다. 서른다섯, 내 몸은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 주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삶을 사는 한 친구(ㅎㅈㅎ)는 할까 말까 고민하던 것들을 '그냥 한 번 해 보면' 엔간하면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진리에 가까운 말이라 생각한다. 마음을 비우고 요가의 정신에 몸을 가능한 만큼 이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