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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Nov 13. 2024

나는 왜 글을 쓰다가 말았는가

24. 10. 12 브런치 팝업스토어

2년 전,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매주 20시간은 글에 쓰겠다고 다짐했다. 20시간인 이유는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의 절반 정도는 써야 하지 않나 싶어서. 드라마 2 시즌을 보는 대신 매주 글을 쓰고 1년 간 단련해 왔던 글쓰기 근육이 풀어지지 않기 위한 루틴이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택한 것도 글과 책으로 돈을 버는 몇 없는 회사라서,라는 이유로 답해왔던 나다.


글을 꾸준히 써야 한다,라는 다짐이 무뎌지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핑계는 많았다. 새로운 동네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한다는 명분이 있었고 기껏 취직한 회사는 2개월 만에 비상경영이라는 걸 해서 T/O가 반토막이 났다. 덕분에 일은 두 배되었다. 글을 쓰지는 않으면서 써야겠다는 의무만 상기하니 글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갔다. 작년 11월을 끝으로 꾸준하게 쓰던 일기마저 그만두었다.


1년이 지났다. 흘러간 시간이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나는 글을 쓰는 대신 유튜브를 하루에 세 시간쯤 봤다. 그렇다고 매번 폰을 뚫어져라 본 건 아니고 유튜브 프리미엄 덕분에 폰을 주머니에 넣거나 차에서 내비를 킨 채로 귀로 듣기도 했다. 익히 듣던 정치 유튜브와 핑계고, 채널 십오야 같은 수다 위주의 채널을 매일매일 빼먹지 않고 들었다. 다 보고 볼만한 게 없으면 봤던 걸 또 봤다. 음악 역시 머리에 잘 안 들어왔다. 매주 한 번은 의무감에 갔던 극장도 2시간 동안 한 공간에 있는 게 답답하게 느껴져서 자주 안 가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게 되었을까? 영화대신 보게 된 건 유튜브에서 해주는 영화 요약본이었다. 덕분에 영화를 제일 적게 본 해였음에도 가장 많은 영화 내용을 '알게 되었다'.


글을 꾸준히 쓰던 걸 그만둔 뒤 얻은 건 해방감이 아닌 허탈함이었다. 회사를 쉬고 글에 몰입했던 1년의 의미는 퇴색했고, 내가 평생 꾸준하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건 글쓰기라는 생각을 글 없이 쌓이는 일상의 나날로 반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글을 써야 한다라는 과업은 잊히지 않고 머릿속을 맴돌았기에 무력감이 쌓여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상기해야 했던 건 다짐이 아니었다. 글을 쓸 때의 즐거움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춥지만 10분 정도만 걸으면 금세 몸에 열이 도는 가을 무렵, 브런치 팝업을 갔다. 마감인 13일의 하루 전인 12일, 일 때문에 갔던 서울숲역에서 20분 정도 따릉이를 타고 갔다. 네이버 지도가 문젠지 내 폰이 문제인지  골목 한 블럭 남기고 헤매다가 마지막 입장 10분 전에 겨우 입구를 찾았다. 주말이라 줄이 길면 어쩌지 싶었지만 오는 길에 봤던 랄프로렌 팝업과는 대조적으로 줄 같은 건 없었다. 미리 예약을 안 한 터라 입뺀을 당하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브런치 작가는 예약 없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진을 찍고 작가증 같은 걸 받고, 작가 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었다. 누군가의 육성으로 작가 님이라고 불린 건 처음이었다.


내부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움직이기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작가들 코너를 둘러보다가 어느 벽에 적힌 문구 앞에 섰다.


생각과 의견이 명확해지는 경험,
같은 것도 다르게 보는 시선,
... 나의 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경험



'계속 쓰면 힘이 된다'라는 두 번째 챕터 칸에서 본 문구, 머리가 띵해졌다. 쌉T나 TT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감정이 무뎠던 나는 글을 쓸 때 비로소 나의 감정을 세분화하고 명확해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 나의 삶이 유난히 무뎠던 건 그 감각을 다듬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책을 내지는 않았지만 작가와 같은 일상을 살면서 꾸준히 글을 쓰다가 소설을 출판한 황보름 작가의 코너에서도 유독 오래 머물렀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소설을 위한 것이 아닌 다양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의 에세이 위주라는 생각에 끝내 동력을 잃어버린 나와 달리 그녀는 꾸준히 써왔고 결실을 맺었다.


내가 쓴 소설을 한 명이라도 읽어주길 바라며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했어요.
연재할 때만 해도 반응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2019년 8월에 연재하기 시작한 글을 2021년 10월에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나는 여기까지 쓰고 이 글의 첫 단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다. 나는 왜 글을 쓰다 말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놓지 못 하고 있는가. 자문을 하면서 글을 쓰지 않으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 동안 나는 창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고, 골목길에서 마주친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들려주는 본인의 내밀한 얘기를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었고 생각과 감정의 구분이 모호해져 갔다. 정리가 안 되는 생각의 파편들은 디스크 조각 모음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컴퓨터처럼 버퍼링이 온 듯 머리가 굴러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한창 글을 쓸  돌리던 습작을 읽어주었던 분들이 요즘에도 글을 쓰냐고 물어보면 횡설수설하며 화제를 돌렸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지금까지 쓴 글과 앞으로 쓸 글만이 답해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제껏 목적지를 정해두고 글을 쓰지 않았다. 쓰면서 길을 찾는다. 그러니 다시 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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